매춘부의 ‘필수템’이라는 이것…근대 과학의 촉매제가 되다 [역사를 바꾼 사물들]
시간이 ‘중세의 가을’에 머물러 있는 듯한 도시, 스위스 베른 한 가운데에는 고딕식 건물의 시계탑이 우뚝 솟아 있다. 베른의 어디에서도 뾰족한 시계탑을 볼 수 있다. 치트글로게(Zytglogge) 시계탑이다.
시계탑 근처에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살던 집과 일했던 특허국이 있어서 그 역시 이 시계탑을 늘 보고 지냈다. 매일 집을 나서서 왼쪽으로 돌아 특허국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한 친구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비상하게 다양하고 생각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매우 즐겁다.”
어느날 아인슈타인이 기차를 타고 베른역에 도착하는데 그의 눈에 시계탑이 들어왔다. 그날따라 왠지 시계바늘이 다른 박자로 움직이는 듯했다. 아인슈타인은 그런 느낌을 그냥 흘러보내지 않았다.
시간이 왜 어느 때는 빨리 지나가고, 어느 때는 천천히 흘러가지? 이 궁금증에 매달렸다.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천재란 보통 사람들이 ‘아주 어렸을 때에만’ 물어볼 수 있는 성격의 질문을 ‘다 자라고 난’ 후에도 여전히 물어보는 존재인 것이 분명하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그 결과가 바로 과학의 역사를 바꾼 ‘상대성 이론’이었다.
인류가 이렇게 시간에 표시를 하기 시작한 것은 생존을 위해서 였다. 언제 먹을 수 있는 과일을 딸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물고기와 짐승을 잡을 수 있는지 알려면 시간을 확인해야 했다. 인류가 수렵채집에서 유목과 농경 사회로 진입하면서 시간을 더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었다. 언제 씨를 뿌려야 하고 언제 이동해야 하는지에 집단의 생존이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사와 종교를 위한 목적이 더해졌다. 신이 정해준 시간에 기도를 하고 의례를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시간을 측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인류는 해의 위치에 따라 그림자의 위치와 길이가 달라지는 것을 알고 해시계를 처음 만들었다.
가장 오래된 해시계는 기원전 1500년 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와 왕국에서 사용된 것이다. 증국에는 기원전 1000년대에 사용한 해시계가 보존되어 있고 그리스인들은 해시계 원리를 이집트인들한테서 배워 로마 최초의 해시계를 기원전 164년에 세웠다. 이집트인들은 해가 떠 있는 시간을 12개의 조각으로 나누어서 표시했는데 이것이 로마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하루 24시간 체제의 바탕이 되었다.
특히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같은 천문학자들은 천체를 구 형태로 만들어서 이 구의 경도 360도의 1도를 60등분하고, 이를 분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분을 60등분한 것을 초라고 불렀다. 시간을 세는 단위가 만들어진 것이다.
해시계 형태는 중국이나 유럽 뿐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폴리네시아의 섬지역에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시간을 측정하려는 욕망은 문화권과 상관없이 인류가 보편적으로 갖고 있던 욕망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물시계와 모래시계다. 두 시계 모두 작은 구멍으로 일정한 속도로 물이나 모래가 빠져나가는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물시계는 이집트에서 기원전 15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집트 라르나크 사원에서 발견됐다.
그리스에서는 ‘물 도둑’이라는 뜻의 ‘클렙시드라(clepsydra)’라는 물시계가 쓰였다. 클렙시드라는 아테네의 법정에서 피고와 원고에게 모두 공정한 시간을 주기 위해 사용됐다. 또 매춘부들이 고객과 보낸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고 중세 교회에서는 수도사들에게 기도시간을 알리기 위해 사용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4000년경부터 물시계가 사용됐다고 전해지지만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기원전 6세기 정도였다.
역사상 가장 정교한 물시계는 1090년 중국에서 만들어졌다. 송나라의 소송(蘇頌)이라는 발명가가 황제의 명령을 받고 정교한 물시계를 제작한 것이다. 물레방아의 물받이에 물이 일정한 속도로 떨어지도록 설계됐는데 물받이가 차면 그 무게로 걸쇠가 풀려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이것과 연결된 물레가 돌아가도록 설계됐다.
이 장치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바탕으로 모형이 제작되어 한 대는 중국에, 한 대는 리버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지금 보아도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다. 동력으로 물을 사용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내부의 장치는 그 후에 서양에서 발명된 기계식 시계의 장치를 빼닮았다. 이 천문 물시계를 발전시켰다면 중국에서도 독자적인 기계식 시계가 발전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소송의 물시계는 황제의 명령으로 바로 폐기처분됐다.
시작도 끝도 모두 황제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하긴 황제가 물시계를 만들라고 명령한 이유 자체가 ‘행성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황제의 첩이 흐린 날에 출산하게 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으니 자발적인 발전의 동기가 있을 리 만무할 뿐이다.
소송의 기계식 물시계는 정화 함대의 원정과도 닮아 있다. 서양의 대항해 시대에 앞서 중국 명나라 영락제 때 대도독 정화가 이끄는 함대는 1405년부터 1431년까지 총 일곱 차례에 걸쳐 대원정을 떠나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까지 진출했다. 정화의 원정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탐험보다 70여 년이나 앞섰고 함선의 크기도 콜럼버스의 배보다 30배나 컸다. 하지만 황제가 바뀌고 쇄국정책으로 돌아선 뒤 정화의 함대는 물론 정화가 남긴 기록까지 모두 폐기됐다.
반면 콜럼버스는 포르투갈 왕을 설득하는데 실패하자 스페인 왕을 설득해 대항해에 나설 수 있었다.
원정의 목적도 차이가 있었다. 정화 원정의 목적이 명나라 황제의 권위를 만방에 알리는 것이었다면 서양 대항해시대의 목적은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 다음에 활용한 것은 태엽이었다. 얇은 금속판을 감았다가 그것이 풀리는 속도를 이용한 것이 태엽시계의 원리였다. 스프링 태엽을 사용한 시계는 1430년경 개발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설계 덕택에 회중 시계 같은 작은 시계도 나올 수 있었고, 정확도도 향상되었다. 최초의 회중시계는 16세기 초 독일 뉘른베르그의 시계 제작자이자 열쇠공이었던 페터 헨라인이 만든 것이었다. 목에 걸고 다닐 수 있는 줄이 달린 동그란 모양이 흡사 달걀처럼 생겨 ‘뉘른베르크의 달걀’이라 불린다.
하지만 추의 낙하 운동이나 태엽이 풀리는 힘을 이용한 시계는 일정한 시간을 재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진자시계였다.
이탈리아 피사의 대성당에는 ‘갈릴레이의 등’이라는 이름의 샹들리에가 있다. 1583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열아홉살 때 일이다. 갈랄레이는 피사 성당의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일정한 리듬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언뜻 생각하면 움직인 거리가 길면(진폭이 크면) 한번 왕복하는데 더 긴 시간이 걸리고 움직인 거리가 짧으면(진폭이 작으면) 더 짧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진폭과 상관없이 왕복에 걸린 시간은 같았다.
갈릴레이는 진폭이나 추의 종류, 무게와 관계없이 왕복 시간은 같고 오직 끈의 길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것은 훗날 ‘진자의 등시성’이라는 원리로 자리잡았는데 시계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발견이었다.
갈릴레이는 진자의 등시성을 확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진자의 왕복운동을 톱니바퀴의 회전 운동으로 바꾸는 탈진기도 고안해 냈다. 시계를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는 마친 셈이다. 하지만 갈릴레이는 기계식 시계를 완성하지 못하고 설계도만 남긴 채 생을 마감했다.
하위언스의 공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동시대 영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훅(Robert Hooke)이 고안한 헤어 스프링(시계의 등시성 유지에 핵심이 되는 부품)을 실제 시계에 적용해 1675년 실용적인 기계식 시계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 시계는 하루 오차가 1분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정확했다.
그때까지 시계산업의 중심지는 프랑스 리옹이었다. 많은 시계공들이 길드를 조직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문자 해독률이 높았던 시계공들 중에는 신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노동을 신성하게 생각하고 성실을 강조하는 종교적 가르침이 시계공들의 생활과 잘 맞았다.
1562년 위그노전쟁으로 불리는 신구교간 종교전쟁이 프랑스에서 일어났다. 신교를 믿던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스위스 제네바로 넘어왔다. 그 중에 시계공들도 많았다. 더구나 신교의 종교적 지도자인 장 칼뱅까지 제네바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특히 프랑스가 성 바르톨로뮤의 대학살(1572년 8월 24일)을 시작으로 종교의 자유가 부여된 낭트칙령 반포(1598년), 그리고 루이 14세의 낭트칙령 폐지(1685년)까지 격동의 세월을 지나면서 시계공들의 제네바 이주는 계속 이어졌다.
위그노전쟁 전에는 시계수리공 하나 없던 제네바에 1601년 시계공들의 조직이 만들어졌고 17세기 후반에는 6000명의 시계공이 한해 5만 개 이상의 시계를 생산할 정도로 유럽 시계 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특히 지금도 남아 있는 대부분의 명품 시계들이 모두 스위스 제네바에서 탄생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글로벌 명품시계 브랜드인 바쉐론 콘스탄틴이 1755년 스위스 제네바의 심장부 릴 지역에 워크숍을 열었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근대 산업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리듬으로 생활하는 것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같은 공장에 일하는 사람들은 같은 시간에 출근해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같은 시간에 퇴근한다.
“규칙적인 종소리는 직공과 상인의 삶에 새로운 규칙성을 부여했다. 시계탑의 종은 도시의 생활양식을 규정하다시피 했다. 단순한 시간 기록은 점차 시간 엄수, 시간 계산, 시간 분배로 발전했다. 한때 인간 활동의 잣대이자 초점이었던 영원성은 그 역할을 서서히 그만두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앞서 말한 스위스 베른의 시계탑과 아인슈타인에서 시작됐다. 마침 아인슈타인이 살던 당시 베른에서는 시간의 표준화를 위한 거대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다. 스위스 시계산업에도 일관된 영점 조정의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에 시계 제작자들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당시 이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시계사업가 알베르트 파바르제는 이렇게 주장했다.
“여러분이 파리를 통과하며 일을 처리할 때, 공공 시계든 개인 시계든 수많은 시계들이 제대로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채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어느 시계가 가장 큰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 단 하나의 시계만 거짓말을 해도 그 전체의 진실성이 의심받게 마련입니다. 모든 시계 하나하나가 같은 순간 같은 시간에 일치해야만 대중이 안정을 얻을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결론은 절대시간은 없다는 것이다. 관찰자와 관측체의 위치 변화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아인슈타인은 알아냈다. 아인슈타인은 절대시간의 자리에 단순하고 실제적인 절차, 즉 빛의 교환을 이용하여 시계를 동기화할 것을 제안했다.
이 이론이 현실화된 것이 GPS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관찰자에 대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인공위성내의 시간은 정지된 관찰자의 시간에 비해 천천히 흐른다. 반면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지구 중력의 영향을 관찰자보다 덜 받는 궤도를 도는 인공 위성내 시간은 관찰자보다 빠르게 흐른다. 정확히는 인공위성내 시간은 ‘특수 상대성 이론’ 효과 때문에 하루 7 마이크로초(100만분의 1초) 느리게 가고 ‘일반 상대성 이론’ 효과 때문에 하루 45 마이크로초 빠르게 간다.
GPS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20나노초(10억분의 1초) 이상 오차가 나서는 안된다. 이를 방치하면 하루 6마일 이상 오차가 발생해 GPS는 무용지물이 된다. 따라서 GPS 위성의 시계는 38마이크로초(45-7) 늦게 가게 설계돼 있다.
베른에 스위스의 시계업자들이 좌표화된 시계를 설치하지 않았다면, 아인슈타인이 그 거기를 걸어 특허국으로 출퇴근 하지 않았다면, 특허국에 시계와 관련된 특허 신청이 쏟아지지 않았다면 20세기의 과학은 어쩌면 더 느린 속도로 발전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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