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46% “직장 내 괴롭힘 직접 겪었다”···피해자 33% "아무 대응도 안 했다" [여론 속의 여론]
근로자의 인권과 노동권 보호를 위해 2019년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4년이 지났으나 직장 내 괴롭힘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사단법인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상담 신청 건수가 2022년 한 해에만 1,719건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이 1,901시간에 달하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5위를 차지한 상황에서, 직장에서 장시간을 보내는 근로자가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존중받는 근무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지 추가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 및 대응 방안 모색을 위해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팀은 지난 11월 24일~12월 1일 전국 만 18세 이상 59세 이하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직장인 87%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알고 있다"...사각지대는 절반 몰라
지난 2019년 7월 16일부터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해 알고 있다는 응답은 87%로, 직장인 대다수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5인 미만 사업장, 프리랜서나 특수고용 노동자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과반(57%)이 모르고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알더라도 법의 상세 적용 범위까지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당사자인 프리랜서와 특수고용,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조차도 각각 58%가 자신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직장 내에서 괴롭힘으로 나타날 수 있는 8가지 상황(신체적인 공격, 정신적인 공격, 인간관계 분리, 과대한 요구, 과소한 요구, 사적 침해, 경제적인 공격, 성적 공격)과 주요 예시를 보여주고 최근 4년 이내에 본인이 당한 경험이 있거나 다른 사람이 당하는 것을 목격한 경험이 있는지 물었다. 8가지 항목 중 어느 하나라도 4년 내에 직접 당해본 적이 있다고 답한 직장인은 46%로, 5명 중 2명 이상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직·간접 경험 모두 있음 39%, 직접 경험만 있음 6%). 자신이 직접 당하지는 않았으나 다른 사람이 당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13%)까지 포함하면 직장인 10명 중 6명(59%)은 직장 내 괴롭힘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으로 확인됐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33%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직장 내 괴롭힘을 직접 경험한 응답자 3명 중 1명(33%)은 괴롭힘 상황에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응답했고, 31%는 해당 직장에서 퇴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람은 25%, 가해자에게 시정을 요구했다는 사람은 22%였으며 직장 내·외부 조직에 상담이나 신고하였다는 적극적인 대응은 10% 혹은 그 이하에 머물렀다.
한편 주변 동료의 지지와 도움은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사람 중 주변에 자신의 괴롭힘을 인지하고 도움을 주는 동료가 있었던 사람은 35%가 가해자에게 시정을 요구했다. 이는 전체 평균(22%)보다도 높은 것이다. 또한 21%는 직장 내부 조직에 상담을 했다고 답했는데 이 또한 전체 평균(14%)보다 높았다. 반면 괴롭힘을 당할 당시 주변에 자신의 괴롭힘을 인지하는 동료가 없었던 사람 중에서는 50%, 직장 내 다른 구성원이 없었다는 사람 중에서는 63%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답해 모두 전체 평균(33%)보다 높았다.
"사각지대 노동자에게도 법 적용해야" 96%
직장인의 66%는 노동조합의 존재가 직장 내 괴롭힘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직장인 10명 중 7명은 가입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 없거나(55%) 가입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 있는지 모른다(16%)고 답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적용 대상이 아닌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경우 95%가 가입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 없거나 있는지 모른다고 답했고 특수고용 노동자나 프리랜서 또한 96%에 달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사각지대인 5인 미만 사업장과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의 경우 직장 내 괴롭힘 해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노동조합에서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개정을 통한 적용 범위 확대가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적용도, 노동조합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프리랜서나 특수고용 노동자는 노동 환경의 특성상 괴롭힘을 인식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동료나 직장 내 구성원 또한 많지 않다. 따라서 이들이 주변인, 직장 내·외부의 조직의 도움을 얻거나 괴롭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직장 내 괴롭힘에 몹시 취약하다.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에게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응답은 전체 응답자의 96%로, 직장인 10명 중 9명이 5인 미만 사업장, 특수고용이나 프리랜서 노동자의 괴롭힘 취약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다.
간접 경험자 10명 중 9명, 분노·불만·불안을 느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적용과 확대가 피해자 개인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의 87%가 분노나 불만, 불안 등을 느꼈다고 답했고, 상급자와 회사에 대한 신뢰가 감소했다는 응답이 82%, 일에 대해 의욕이 떨어졌다는 응답이 81%로 높았다. 직장에서의 퇴직을 고민했다는 응답 또한 75%에 달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 피해자의 심리적 요인, 업무 의욕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을 간접적으로 목격한 경험자에게서도 부정적 영향이 크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특히 분노나 불만, 불안을 느꼈다(91%)는 부분에 대해서는 직접 경험자(87%) 이상으로 심리적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간접 경험자 10명 중 6명이 직장에서의 퇴직을 고민했다고 응답했다.
즉, 직장 내 괴롭힘을 방치하는 것은 기업의 차원에서도 근로자의 생산성과 효율성 저하로 인한 성장 둔화, 근로자의 조직에 대한 신뢰도와 충성도의 저하로 인한 인력의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 건강한 기업과 근로자를 위해 기업과 근로자 모두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확대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직장 내 괴롭힘을 해결하고 예방하고자 하는 사내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할 때이다.
이은별 한국리서치 연구원 안주을 한국리서치 인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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