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日 괴물 투수가 ‘밉상’이 됐다… 물러선 사사키 연봉 계약, 오타니 인성까지 재등장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시대의 괴물이라는 별명은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건 아니다. 뛰어난 선수들이 수없이 배출된 일본프로야구에서도 마찬가지다. 헤이세이 시대의 괴물은 일본을 평정함은 물론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자신의 진가를 과시한 마쓰자카 다이스케였다. 그리고 레이와 시대의 괴뮬로 극찬받는 선수가 바로 일본 대표팀의 차세대 에이스 사사키 로키(23‧지바 롯데)다.
사사키는 데뷔 당시부터 큰 화제를 모은 대형 유망주로 지바 롯데가 애지중지한 선수다. 고교 시절부터 시속 160㎞가 넘는 강속구를 던지며 일본 전역을 흥분케 했다. 치열한 스카우트 전쟁 속에 결국 2020년 지바 롯데 유니폼을 입었고, 계약금만 1억 엔을 받았다. 첫 시즌에는 아예 철저한 관리 프로그램을 거쳤다. 실전 등판보다는 2군에서부터 몸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당장 1군에서 활용할 수 있는 즉시 전력감이었지만, 장기적인 미래를 내다보고 인내한 것이다. 그런 사사키는 2020년 실전 등판 없이 담금질만 거쳤다. 이례적인 일이라 일본 언론의 관심을 한몸에 모았다.
2021년부터 관리 속에 본격적으로 마운드에 서기 시작한 사사카는 2021년 후반기 좋은 활약을 펼치며 앞으로를 기대케 했다. 2022년에는 왜 지바 롯데가 사사키를 그렇게 애지중지했는지에 대한 답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세계 프로야구 역사상 최연소 퍼펙트 게임 달성이 2022년 나왔고 13타자 연속 탈삼진, 한 경기 19탈삼진 등 일본프로야구 역사를 새로 쓰는 기록들을 한 번에 달성하며 일약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 대표팀에도 참가해 동경했던 선배들과 함께 뛴 사사키는 지난해 15경기에서 91이닝을 던지며 7승4패 평균자책점 1.78의 호성적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165㎞를 찍으며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의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포심패스트볼과 포크볼의 조합으로 리그를 평정했다. 단순히 구속만 놓고 봤을 때는 아시아 역사상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사키는 지바 롯데 팬들뿐만 아니라 일본프로야구계 전체가 아끼는 ‘우리 마을의 아이’로 성장했다. 그런데 그런 사사키에 대한 여론은 2023년 시즌이 끝난 뒤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다. 사생활적으로 사고를 친 것은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메이저리그 진출 카드를 들고 나오며 많은 이들을 의아하게 했다. 그 과정에서 연봉 협상이 늘어졌다. 26일 합의했으나 올해 일본프로야구 선수 중 가장 늦은 계약이었다.
메이저리그 진출 자격이 없는 건 아니다. 해외 FA 자격을 얻을 때까지의 시간은 많이 남아 있지만, 포스팅시스템(비공개경쟁입찰)이라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포스팅은 구단의 허가가 필요하다. 사사키가 아무리 고집을 부려도 구단이 거부하면 이뤄질 수 없다. 그럼에도 사사키는 구단과 조율이 되지 않은 ‘메이저리그 진출’을 고집하면서 오프시즌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바 롯데가 난감한 상황이었다.
지바 롯데는 공식적으로 사사키가 팀에 더 공헌한 뒤 메이저리그 진출을 돕겠다고 했다. 하지만 사사키는 이 발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사실상 ‘잠수’를 탔다. 사사키가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11월 19일 홈구장인 조조 마린스타디움에서 열린 팬 감사 행사였다. 이후 메이저리그 도전을 노린다는 보도가 나왔고, 사사키는 이후 한 차례도 공식 석상이나 언론에 직접적으로 등장한 적이 없다. 표면적으로는 연봉 협상이 늦어진 것이지만, 알고 보면 메이저리그 도전 문제가 걸려 있었다는 게 일본 언론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설상가상으로 선수회를 탈퇴했다는 보도가 사실로 확인되면서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 사이 여론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사사키가 떼를 쓴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가뜩이나 보수적인 일본 원로 야구 인사들은 당연히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은혜를 모른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나왔다. 팬들의 시선도 따가웠다. 사사키가 뛰어난 재능임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팀에서 뛴 기간이 4년이었다. 그리고 아직 규정이닝을 한 번도 소화한 적이 없다. 지난해에도 부상 탓에 100이닝 소화에 실패했다. “아직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만한 자격을 증명하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4년 만에 메이저리그 도전에 나선다는 것은 구단과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사사키는 지명 당시부터 지바 롯데를 싫어했다”는 불평들이 쏟아지면서 오히려 사사키가 궁지에 몰린 셈이 됐다.
스스로도 뉴욕 메츠 등에서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요시이 마사토 지바 롯데 감독 또한 “구단에 은혜를 갚고 나서 해야 할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아직은 진출 시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타니 쇼헤이와 비교하며 사사키의 인성까지 걸고넘어지는 일부 매체들도 나왔다. 오타니 역시 입단 당시부터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가지고 있었고, 구단도 지명 당시 메이저리그 진출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으며, 사사키보다 오히려 더 빨리 진출 자격을 증명했지만 다섯 시즌을 뛴 뒤 구단과 차분한 논의를 해 메이저리그에 갔다는 것이다.
현지 언론에서 분석하는 지바 롯데의 불가 속내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당연히 전력적인 부분에서 마이너스다. 올해 첫 풀타임 선발이 기대되는 사사키다. 건강하기만 하면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 에이스로 클 수 있다. 그런 선수를 갑자기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선수에 너무 끌려 다닌다는 이미지를 주는 것도 문제다. 일본프로야구 포스팅 역사상 네 시즌만 뛴 선수를 허락한 사례는 없었다.
세 번째는 돈이다. 미일 선수협정에 따라 만 25세 이전에 메이저리그 진출을 하는 일본 선수들은 국제 아마추어 선수 대접을 받는다. 메이저리그 계약을 못하고, 아마추어 보너스 풀 내에서 영입을 해야 한다. 구단이 1년에 받는 보너스 풀은 기껏해야 500~600만 달러다. 즉, 지바 롯데가 받을 수 있는 포스팅 비용도 확 줄어든다. 실익이 없다. 오타니의 경우는 니혼햄이 약속한 것도 있기에 전향적으로 보낸 케이스다.
반대로 사사키는 빨리 가면 빨리 갈수록 얻는 이점이 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메이저리그에 나가 경험을 쌓고, 동경했던 최고 무대에 도전할 수 있다. 당장은 메이저리그 최소 연봉을 받겠지만 연봉 조정이 시작되는 4년 차부터는 자신의 기량에 따라 연봉이 더 올라간다. 그리고 6년을 채우면 바로 FA다. 그래도 20대 후반에 FA가 된다. 오타니가 딱 그런 절차를 거쳤다.
반론도 있다. 야마모토 요시노부(LA 다저스)의 사례다. 일본을 대표하는 투수로 이름을 날린 야마모토는 총 7시즌을 뛴 뒤 포스팅 절차에 나섰다. 25세 이상 기준을 충족시키자마자 포스팅에 나가 12년 총액 3억2500만 달러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쓰며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사사키가 앞으로 3년 정도 더 뛰며 이런 야마모토의 절차를 밟는 게 팀으로나 사사키로나 모두 금전적으로 이득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지바 롯데도 거액의 포스팅비를 받을 수 있어 사사키의 진출을 허락할 것이 확실시된다.
어쨌든 이런 사사키 논란은 26일 연봉에 합의했다는 지바 롯데의 발표 속에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구체적인 연봉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사사키가 2024년에도 지바 롯데에서 뛴다는 이야기다. 사사키는 조만간 기자회견을 열어 그간의 일들을 상세하게 풀어놓을 전망이다. 현지에서는 “사사키가 심상치 않은 여론을 감지했다”, “어떤 식으로든 해명을 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는다. 또 일부에서는 “메이저리그 진출 시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시 밝힐 수도 있다”고 본다.
당장 논란은 잠잠해질 것으로 보이지만 사사키가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의지를 불태울 경우 이 문제는 매년 오프시즌을 달굴 뜨거운 감자가 될 수밖에 없다. 기자회견에서 사사키가 어떤 말을 할지, 지바 롯데와 사사키 사이의 어떠한 약속이 만들어질지 일본프로야구계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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