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린성 북한 노동자 폭동, 현대판 노예 반란인가?
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18회>
대체 김일성과 김정일이 무슨 노력을 했는가?
지난 19일 대한민국 제1 야당의 대표는 군사 도발을 이어가는 북한 김정은을 향해서 적대 행위를 중단하라며 “선대들, 우리 북한의 김정일, 또 김일성 주석의 노력들이 폄훼되지 않도록, 훼손되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이라 말했다. 부랑아의 행패를 막기 위해 그 할아비와 아비는 안 그랬다고 타이르는 화법인데, 대를 이은 김씨 왕조의 패악질을 상기한다면 어불성설의 궤변이고 언어도단의 망언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대체 무엇을 위해 무슨 노력을 어떻게 했다는 말인가?
김일성은 스탈린의 허락을 받아 소련제 무기로 중무장하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특급 전범이며, 전 인민을 노예적 삶으로 내몰며 죽을 그날까지 거의 50년간 병적인 전체주의 유일 지배 아래 묶어 둔 시대착오적 파시스트 독재자였다. 권력을 세습한 김정일은 250만에서 350만명을 굶겨 죽이면서도 국가의 모든 재원을 총동원하여 핵무기 개발에만 전념했던 반인류적 정치범죄와 군사 테러의 주범이었다.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전 세계의 일반적 평가가 그러함에도 한국 정치판에선 제1야당의 대표가 “우리 김정일, 김일성 주석의 노력들” 운운하는 부조리극이 벌어지고 있다. 대중 정치인이 그런 발언을 할 땐 정치적 계산속이 없었을 리 없다. 지금도 대한민국에선 김씨 왕조를 “우리 민족”이라 여겨 동정하고 옹호하는 반미·친북의 정서가 널리 퍼져 있기에 제1 야당 대표는 그러한 비상식적 발언을 하고도 큰 탈 없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중국 지린성 북한 노동자들의 파업과 폭동
제1야당 대표가 “우리 김정일, 김일성 주석의 노력들”을 운운하던 바로 그날이다. 지난 19일 일본 산케이 신문(産經新聞)은 중국의 북한 노동자 관련 특종 보도를 내보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중국 지린성의 여러 공장에서 강제노역과 노예 노동에 내몰려 온 수천 명 북한 노동자들이 임금 체불(滯拂)에 항의하여 대규모 파업을 벌이고, 폭동을 일으켰다.
산케이 신문에 이 소식을 제보한 탈북 외교관 제1호인 고영환 통일부 장관 특보는 중국 동북 3성에 나와 있는 북한 관리들과의 직접 교신을 통해서 이 사실을 알아냈다. 필자와의 교신에 따르면, 고 특보는 2개 이상의 소식통을 직접 대조·검토했다고 한다.
코비드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2020년 이래 2년 넘게 북·중 왕래가 끊기었다. 그 기간 북한 국방성 산하의 복수 회사들은 중국 측에서 지급한 노동자 임금 거의 전액을 본국에 상납하고 있었다. 회사 측은 북한 노동자들이 귀국할 때 일괄적으로 임금을 돌려주겠다고 해명해 왔지만, 작년부터 북·중 간 국경 왕래가 서서히 재개되면서 북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벌어들인 임금을 김씨 정권이 착복하고 있는 현실에 눈뜨게 되었다.
격분한 북한 노동자들은 1월 11일 조업 거부에 들어갔다. 머잖아 파업은 지린성 내의 의류 생산, 수산물 가공 공장으로 퍼져나갔다. 공장을 점거한 후 북한 노동자들은 북한 간부를 인질로 잡고서 공장의 기기를 파괴하는 명실공히 폭동을 일으켰다. 이 소동을 “특대형 사건”으로 규정한 김정은 정권은 선양에 주재하는 북한 영사관 비밀경찰 국가보위성의 요원을 현장에 급파하여 체불 임금을 즉각 주겠다고 약속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지금은 임금의 일부를 주어서 성난 노동자들을 일단 진정시켰지만, 가혹한 노예 노동이 지속되는 한 파업과 폭동이 언제든 쉽게 재개될 수 있어 보인다.
노동자의 시위인가? 노예들의 반란인가?
1980년대부터 북한은 외화벌이를 위해서 전 세계에 노동자들을 파견해 왔다. 김정은 정권도 외화벌이를 위해서 수만 명의 노동자들을 전 세계 40여 개 국가들에 내보냈다. 북한 노동자들은 러시아 시베리아의 벌목장에서, 중국 둥베이(東北)의 공장 지대에서, 중동의 건설 현장과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북한 정권의 삼엄한 감시를 받으며 가혹한 노동에 시달려 왔다.
해외에 파견되어 북한 노동자들은 주말도 없이 거의 매일 14~16시간 중노동에 내몰린다. 그들이 쉴 수 있는 날은 한 달에 고작 하루 정도에 불과하다. 위험천만의 작업 환경에서 기초적 의료 혜택도 없이 강제 노역에 시달리지만, 그 임금의 90% 이상은 북한 정부의 몫이다. 바로 그 점에서 국제 인권 단체의 여러 보고서는 그들의 노역을 노예 노동으로, 그들의 신분을 국가의 노예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한 인권유린의 실태를 조사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2017년 채택한 결의에서 중국을 포함한 회원국에 대해서 2019년 말까지 북한 노동자를 북한으로 돌려보내라 요구했다. 중국은 유엔의 결의에 동조하지 않았다. 2020년 팬데믹이 터지면서 중국과 러시아엔 여전히 많은 북한 노동자가 그대로 억류되어 있었다.
2022년 11월 21일 미국 의회의 초당적 협력체인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는 연례 보고서를 통해서 미국 정부에 중국을 ‘최하위 인신매매국’으로 지정할 것을 권고했다. 그 주요 이유로 중국이 강제 노역과 가혹한 노동조건에 처해 있는 2만~10만 명의 북한 노동자의 본국 송환을 거부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급기야 최근 지린성의 북한 노동자 수천 명이 파업에 동참하고 폭동을 일으켰다. 그 정도면 현대판 노예 반란이다. 물론 그들의 역량은 전체주의 북한 정권에 맞서기엔 미약하지만, 그 자체로 북한식 국가 노예제의 균열을 보여주는 사건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북한의 실패가 미국 책임이라는 반미 선동
북한은 대체 어떻게 21세기 현실에서 세계 최악의 국가 노예제 국가가 되었는가? 이 활달한 정보 혁명의 시대에 대체 왜 한반도의 “우리 민족” 절반은 노예의 멍에를 지고서 살아가야만 하는가? 대체 무슨 역사적 과오, 그 어떤 제도적 모순이 휴전선 이북을 오늘날의 북한으로 만들었는가? 북한은 왜 지금도 병영 국가(garrison state)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 북한과 달리 어떻게 남한은 최첨단의 기술력과 문화 역량을 갖춘 세계 10대의 부국으로 웅비할 수 있었는가?
이상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가장 중대한 질문들이지만, 정작 한국의 역사학자나 사회과학자들은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북한의 국가 노예제의 실태를 조사한 연구도 흔치 않으며, 그 역사적 기원을 탐구한 논문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반면 한국 밖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에게 위의 질문들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핵심적 물음이다.
지난 40년의 세월 미국 한국학을 대표해 온 시카고 대학의 브루스 커밍스(Bruce Cummings) 교수는 북한이 오늘날의 북한이 된 책임이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펼쳐 왔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북한 전역을 석기시대로 돌리는 무자비한 폭격을 가했기 때문에 오늘날 북한이 저 모양 저 꼴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주장한다.
“북한은 왜 병영 국가인가? 그 주된 원인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이 경험한 홀로코스트에 있다. [Why is it a garrison state? Primarily because of the holocaust that the North experienced during the Korean War].” (Bruce Cummings, North Korea, New Press, 2011)”
커밍스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북한에 대해 홀로코스트를 자행했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홀로코스트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의 나치 정권이 독일 점령지의 유럽에서 6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사건을 가리킨다. 중국군이 인해전술로 한반도를 뒤덮을 때 폭격을 가한 유엔군의 군사작전이 홀로코스트인가? 그런 식이라면, 독일 드레스덴을 타격한 2차 대전 유엔군의 공습도 홀로코스트라 해야 한다. 커밍스의 발언은 학문적 엄밀성도 없을뿐더러 문학적 비유로서도 타당하지 않다.
커밍스의 주장대로 미국의 폭격 때문에 북한이 병영 국가로 남았다면, 원폭 당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주민들은 지금도 땅굴을 파고 들어가서 반미의 깃발을 들고 살아가야 하지 않나? 연합국 폭격으로 박살 났던 독일은 지금도 나치 치하의 병영 국가이어야 하지 않나? 수십 년 전쟁을 겪은 베트남은 왜 북한과 달리 개혁개방에 성공했나? 역사를 돌아보면, 전후 신속한 복구작업을 통해서 경제를 일으키고, 문화를 창달하고, 인권을 신장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멀리 볼 것 없이 대한민국의 성공 사례가 그 점을 웅변한다.
북한을 감싸고도는 커밍스의 주장은 비딱하고도 섣부른 구세대 미국인 반미주의자의 궤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한국전쟁에 관한 커밍스의 수정주의 이론은 1980년대 한국 역사학계를 휩쓸었다. 1980~90년대 한국 대학가에 커밍스류의 수정주의 이론이 판을 쳤기에 결국 김일성을 숭배하는 주사파 세력이 학원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한반도 모든 모순의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는 극단적인 삼류 반미주의가 한국 지식인 사회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한국의 지식계에서 커밍스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우상처럼 군림했다. ‘반미·구국 투쟁’을 외치던 운동권은 전쟁의 책임을 온전히 미국과 이승만 정권에 전가한 그를 존경하고 추종했다. 덕분에 1990년대 구소련의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수정주의가 무너진 후에도 그는 2007년 제1회 김대중 학술상을 받는 영예를 누릴 수 있었다.” (송재윤, 조선 칼럼, 2023. 4. 14)
북한식 국가 노예제는 역사적 기원
북한이 오늘날 북한이 된 책임은 미국이 아니라 김씨 왕조가 져야 한다. 김씨 왕조의 엉터리 국가 이념과 폭압적 전제 통치와 잘못된 사회·경제적 제도가 오늘날의 북한을 저 모양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38선 이북의 북한을 점령한 후 스탈린은 소비에트 연방 붉은 군대에 입대하여 육군 대위의 계급장을 달고 있던 서른세 살의 김일성을 북한의 수령으로 낙점했다. 스탈린의 아바타로서 북한을 장악한 김일성은 1940년대 30대의 나이로 북한에서 스탈린식 전체주의를 그대로 흉내 내었다. 김일성의 신격화·우상화는 이미 1940년대 이뤄졌다. 625전쟁 이전 북한 황해도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한 재미교포 할머니는 당시 날마다 학교에서 불렀던 노래를 지금도 기억한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오늘도 자유 조선 꽃다발 우에
력력히 비쳐 주는 거룩한 자욱
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
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장군”
서른여덟 살 김일성은 스탈린의 지원을 받아 38선을 넘어 남침하는 도박을 감행했고, 유엔군의 개입으로 파멸의 위기에 섰을 때, 마오쩌둥의 군사개입으로 그는 가까스로 연명했다. 전쟁을 겪고 나서 권력투쟁을 겪는 과정에서 김일성은 우상화의 고삐를 더욱 강하게 당겼지만, 위의 노랫말이 증명하듯 625전쟁 이전 북한에선 이미 김일성 우상화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중국에서 마오쩌둥 인격 숭배가 시작되기도 전이었다.
오늘날 북한이 노예제 국가로 전락한 가장 근본적 이유는 전쟁 당시 미국의 폭격 때문이 아니라 스탈린식 전체주의로 전 인민을 장악하려 했던 김일성이라는 시대착오적 파시스트 독재자와 그를 인민의 우상으로 만들어 부귀영화를 누렸던 소수 북한 엘리트 집단의 정신병적 권력욕에서 찾아야 한다.
아울러 수백 년 지속됐던 조선조 노비제의 유습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조선은 양천(良賤) 구분의 신분 차별이 제도화된 엄격한 계급 사회(classed society)였다. 오늘날의 북한 또한 인민의 성분(成分)을 “핵심 계급,” “동요 계급,” “적대계급”으로 분류하고, 신분 차별을 법제화한 가혹한 신분제 사회이다. 과연 조선에서 북한으로 이어지는 차별적 신분제의 연속성이 부정될 수 있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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