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하지도, 고여있지도 않은 박서준
“이런 이야기도 해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경성 크리처’(극본 강은경) 공개와 맞물려 이달 중순 인터뷰에 나선 배우 박서준의 이 한 마디에는 어느덧 14년차에 접어든 그의 고민과 무게감이 동시에 담겼다. 이는 최근 그의 행보와도 맞물린다. 지난해 박서준은 할리우드 데뷔작 ‘더 마블스’를 비롯해 영화 ‘드림’과 ‘콘크리트 유토피아’, tvN 예능 ‘서진이네’ 등을 연이어 공개하며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경성 크리처’로 2023년을 닫는 동시에 2024년을 열었다.
많은 톱스타들이 안주한다. 자신의 위상에 기대 그 자리를 지키기 급급하다. 작품 수도 턱없이 부족하다. 혹시 모를 작품의 실패와 이미지 변신이 지금의 위상에 조금이라도 생채기를 낼까 걱정한다. 하지만 박서준은 달랐다. 최근 1년간 선보인 작품만 5편이다. 이렇듯 그는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구축하고 또 넓혀가는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성 크리처’는 박서준의 배우 인생에 또 하나의 인정표가 될 법하다. 우선 제작비 700억 원이 주는 중압감이 대단하다. 이 정도의 자본을 맡길 만한 배우라는 사실에 뿌듯해 할 만하다. 하지만 그 결과에 따른 책임 또한 ‘700억 원 어치’다. 박서준은 그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경성 크리처’는 일제강점기, 경성이 배경이다. 일제의 만행이 담긴 팩션(팩트+픽션)이다. ‘이태원 클라쓰’를 비롯해 유수의 작품으로 일본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박서준으로서는 적잖은 부담이 될 법하다. 그에게 이로 인한 ‘두려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의연하다.
“두려움이요? 그런 두려움은 아닐 겁니다. 제가 느끼는 두려움은 ‘촬영 중 얼마나 험난한 과정이 있을 지’였어요. 오히려 이런 이야기도 해볼 수 있음에 감사했죠. 여태 인기를 좇아서 살아온 사람도 아니고, 그저 제가 하는 일을 좋게 봐주시는 분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난 더 반등을 할 거야’라는 마음은 없어요. 그러니 그런(일본의 반응) 두려움도 없죠.”
‘경성 크리처’는 2개 시즌이 연이어 제작됐다. 이미 시즌1이 공개됐고 시즌2는 후반 작업 중이다. 방대한 분량을 촬영하는 동안 오롯이 주인공 장태상으로 살았다. 그 긴 기간을 두고 그는 ‘직장 생활을 한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 작품에 대한 그의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2년의 촬영 기간 동안 2∼3달 정도 여유만 있었던 것 같아요. 그 기간에도 제작진은 시즌2를 준비하고 있었죠. 저 역시 항상 긴장 상태였어요. 정말 다행인 것은 시즌 1, 2가 진행되는 동안 현장 스태프가 한 번도 바뀌지 않았어요. 직장 생활을 하면 이런 기분일까요? 2년 동안 함께 했다는 의미가 컸어요. 그만큼 촬영을 마칠 때는 아쉬움도 많았죠.”
장태상이라는 인물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작중 대부분의 캐릭터와 엮이고, 심리적으로 큰 변화를 겪는다. 전당포 금옥당을 경영하는 경성 최고의 부자로 자기 배만 불릴 줄 알았던 인물이지만, 독립과 민족을 향한 열망의 피가 누구보다 뜨거웠다. 장태상이 이를 드러내면서 ‘경성 크리처’는 변곡점을 맞는다. 그만큼 장태성의 진폭을 컸고, 그를 소화하는 박서준의 고민 또한 컸다.
“파트1이 공개됐을 때는 ‘장태상을 너무 가볍게 그린 게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죠. 하지만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위트있고 자유로운 장태상의 모습은 꼭 필요했어요. 제 첫 촬영은 전기고문 받는 장면이었어요. 전편을 통틀어 유일하게 재촬영한 장면이죠. 그만큼 장태상의 무게감 있는 모습도 함께 보여주려 노력했어요. 작가, 감독님도 ‘어려운 상황인 것은 알지만, 장태상의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연기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하셨죠. 참 무거운 주제를 다룬 작품인데 그래도 장태상의 위트가 ‘경성 크리처’에 호흡기를 달아주며 숨 쉴 공간을 주는 마련해주지 않았을까요?”
‘경성 크리처’는 ‘재미’라는 키워드로만 재단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그 참혹한 시기를 견뎌야 했던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는 독립 운동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장사를 한다. 장사꾼들은 일제히 가게 문을 닫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독립 운동에 동참한다. 독립 운동 중 붙잡혀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동지의 이름을 대는 이도 있다. 자괴감에 빠져 출소한 후, 그 마음을 안고 다시 또 독립 운동을 이어간다. 과연 그들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이 모든 시대상은 장태상의 대사 한 줄을 통해 대변된다.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지만, 제가 그 시대를 살아보지는 않았죠. 그래서 연기하면서 많이 긴장됐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경성 크리처’를 관통하는 대사는 ‘이런 세상이 아니었으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이요’예요. 그건 누군가의 선택이 아니죠. 그 대사를 연기하면서, 지금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갈 수 있는 것 또한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미와 울림이 큰 대사여서 참 표현하기 어려웠죠.”
‘경성 크리처’는 장태상의 화려하고 다양한 의상을 통해 이런 묵직한 분위기에 숨통을 연다. 실제 경성 시대는 멋쟁이들의 시대로도 불린다. ‘모던 보이’라는 말도 이 시기 만들어졌다. 장태상이야말로 의식있는 모던보이였고, 박서준은 이를 효과적으로 구현했다.
“영화 ‘청년경찰’을 함께 했던 의상 미술팀과 이번에도 함께 했어요. 관련 문헌이나 당시 사진을 참고해서 스타일링을 잡았죠. 장태상의 경우, 외모적으로 힘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과해 보이는 어깨 실루엣이 있는 슈트를 입었어요. 그 시기는 할리우드에서 유명 배우가 어떤 드레스를 입으면 곧바로 경성에 들어오던 시기였을 정도로 교역이 활발했다고 해요.”
2024년 갑진년은 용의 해다. 1988년인 박서준 또한 용띠다. 하지만 그는 들뜨지 않는다. 차분하게 운동화 끈을 고쳐매며 다음 행보를 준비하고 있다. “일상에 감사한다”고 그는 차분히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껴요. 지난해 많은 작품이 공개됐죠. 좋은 평이건, 나쁜 평이건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에너지가 생겼어요. 팬이나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제가 계속 연기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죠. 올해는 제 다음 행보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더 나은 한 걸음을 내디뎌보려 합니다.”
안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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