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공권력이 끌고 나간 헌법기관, ‘헌정질서’ 문제다

손고운 기자 2024. 1. 2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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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희 진보당 의원 입 막고 끌고 나간 경호실… 전 대통령 경호부장 “필요한 동작은 안 하고 불필요한 동작은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월18일 전북 전주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 참석했다. 이날 윤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던 강성희 진보당 의원을 대통령경호처 경호원들이 강제로 끌어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4년 1월18일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 행사장에서 대통령 경호원들에 의해 입이 막힌 채 끌려나갔다. 당일 현장 영상을 보면 강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과 악수하면서 윤 대통령에게 말을 걸었고, 경호원들이 제지하자 큰 소리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대통령님. 국정 기조를 바꾸셔야 합니다”라고 외친다. 경호원들은 이미 윤 대통령과 멀어진 강 의원의 입을 막은 채 팔다리를 들고 행사장 밖으로 끌고 나간다. 야권은 대통령경호처가 국회의원을 강제 퇴장시킨 사태를 ‘국민의 대의기관인 입법부와 주권자인 국민을 모독한 사건’으로 보고 대통령의 사과와 경호처장 파면을 요구하고 있다. 야 4당은 국회 운영위원회도 소집했지만, 여당의 불참으로 끝났다.

전 경호실 경호부장 “일반인도 입을 막진 않아”

사건의 표면적 쟁점은 ‘경호의 문제’다. 대통령실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경호원들이 국회의원의 팔다리를 들고 입을 막은 채 행사장에서 끌고 나간 것이 “경호 프로토콜에 따른 것”이라 주장한다. 정부·여당의 말대로 이번 사건이 ‘경호의 문제’로 이해될 수 있을까. 20년간 청와대에 근무한 장기붕 전 대통령경호실 경호부장에게 해당 영상을 전문가 관점에서 어떻게 봤는지 물었다.

“(대통령경호처가) 필요한 동작은 못했고 불필요한 동작은 했다. 경호원들은 악수가 길어지면 바로 제재해야 한다. 그건 경호원 입장에선 위해 요소에 해당한다. 손을 잡아당기는 순간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사후약방문’이었다. 악수가 보통 때보다 길면 그 순간은 단호하게 대처하되, 대통령이 이탈해서 안전하게 간 뒤에는 그분(강성희 의원)이 그냥 자리에 앉도록 하면 되는 거다. 그런데 이 건은 정작 악수할 때 대응은 미흡했고, 이후 국회의원을 들고 나가는 건 적절치 않았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는데, 어떤 분이 ‘김대중 대통령을 탄압한 거 아니냐’ 하면서 소리쳤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입을 막거나 할 수 있진 않았다. (국회의원이 아닌 일반인이라도) 입을 막는다는 건 인권 문제와도 연결될 부분이 있다.”(장기붕 전 대통령경호실 경호부장)

강성희 의원은 ‘악수가 정말 길었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도 <한겨레21>에 “영상이 다 있기에 (국민이) 영상을 보면 다 안다. 만나서 악수했고, 손을 잡았고, 나는 바로 놨다”고 말했다. 특히 해당 행사에선 이미 참석자 몸수색까지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위해 가능성은 없었다고 반박한다. 강 의원은 “특별자치도 출범식 행사는 오전 11시 시작이었는데, 9시30분까지 다 집결해 공항 검색대처럼 생긴 곳에서 검색받고 경찰이 직접 몸 확인을 다 했다”며 “대통령 경호가 아니라 흡사 데모(민주화운동) 시절 학생 대하듯이 했다. 특히 사지가 들린 것보다 입 이 막혔을 땐 심리적으로 되게 절망적이었다”고 말했다.

본질은 공권력이 헌법기관을 물리력으로 봉쇄했다는 것

이번 사태에 대해 여당은 ‘잔칫날(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 행사) 재를 뿌렸다’, 진보당은 ‘야권 원내대표에 대한 정치테러’라고 비판했다.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는 “이번 사안은 재를 뿌렸나 모독이냐 같은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헌정질서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은 국민이 뽑았고, 대통령은 더 많은 국민이 뽑았다. 존중의 문제로 따지자면 서로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이걸 존중이나 예의의 문제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이번 사안은 본질적으로 헌정질서의 문제다. 우리 헌정질서에는 권력 분립 원칙이 있고, 견제와 균형 원칙이 있다. ‘국회의원 강성희’라는 개인은 이 논쟁에서 아무 의미가 없고 그가 ‘헌법기관’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국회의원은 대한민국 헌법에서 규정한, 유일하게 인격체가 헌법기관인 경우다. 이 헌법기관을 대통령의 명령을 받는 국가 공권력이 물리적으로 제압, 물리력을 동원해 봉쇄했다는 건 헌정질서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다.”(이관후 교수)

강 의원 영상이 논란이 된 뒤 유튜브에서는 2013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연설을 방해한 청년을 ‘내쫓지 말라’고 한 영상이 공유되며 비교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미국 정치 전문가인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정치학 박사)는 “같은 사례라고 할 순 없지만, 보통 미국에선 의원들이 야유할 때 오바마 전 대통령 경우도 그렇고 대통령들이 나이스하게 그냥 넘어가곤 한다”고 말했다.

“만약 강 의원이 악수하고 손을 바로 놓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상대방이 악수가 길다고 느낄 정도였다면 문제는 있다. 하지만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테러리스트도 아닌데 그렇게 입을 막아서 들고 나간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진영의 문제를 떠나 강 의원의 행동이 적절치 못했다면 경호원들의 행동은 더욱 적절치 못했다.”(안병진 교수)

김진표 국회의장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강성희 진보당 의원 관련 대통령실의 과잉 경호 논란에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김 의장은 “대통령 경호원들의 이와 같은 과도한 대응이 재발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위로부터의 정치혐오, 설득과 경청은 어디에

윤 대통령은 강 의원을 과잉 제압한 경호원들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다. 강 의원은 영상이 퍼진 뒤 ‘자신을 무시한 것 같았다’는 지역구(전주을) 지지 유권자들의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박상영 한국교원대 교수(정치학 박사)는 “대통령의 정치에 대한 자세가 ‘타협’ ‘소통’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은 주로 ‘법대로 한다’ ‘규정대로 한다’는 태도였는데, 정치에는 ‘법대로’가 아닌 누군가를 만나서 설득하고 경청하는 ‘양방향 소통’이 필요하다. 강 의원도 어떻게 보면 대통령에게 직접 대화를 시도했다고 볼 수 있는데, 셧다운 당한 거다. 그건 대통령의 ‘입법부에 대한 태도’라기보다 대통령의 ‘정치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입법부는 정치를 대변하는, 대표하는 곳 아닌가. 현 정권에서는 ‘정치’가 ‘법률주의’로 바뀌는 양상이 보인다.”(박상영 교수)

박 교수는 이번 사건을 ‘아래로부터의 정치혐오’와 ‘위에서부터의 정치혐오’가 만나 발생한 현상으로 바라봤다. 강 의원은 행사장에서 소리친 이유에 대해 ‘대통령에게 지역구 주민들의 입장(국정기조를 바꿔달라는 요구)을 이야기한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유권자들이 ‘기존 정치 시스템이 우리 의사를 대변해주지 못한다’고 느끼는 정치혐오에서 출발했다. 양당 정치가 기득권화해 ‘그들만의 게임’이 됐다고 느끼는 유권자들은 좌절감과 분노를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전달했고, 강 의원은 그 주민의 요구대로 기존 정치 문법과 다르게 행동했다. ‘위에서부터의 정치혐오’도 작동했다.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의원들 스스로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등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여의도 상황은 ‘정치는 더럽고 비효율적’이란 프레임을 강화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설득·경청·양방향소통’이 자리해야 할 곳에 ‘법대로’ ‘프로토콜대로’가 자리잡게 된다. 정치인 스스로 ‘탈정치’를 실천하는 모습이 이번 사건에도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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