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일(현지 시간) 카타르 수도 도하의 ‘루사일 스타디움’을 찾았다. 아랍의 전통 그릇을 본딴 외관으로 유명하며 12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열리는 ‘2023 카타르 아시안컵’의 주경기장이다.
당시 루사일 스타디움에는 아시안컵을 한 달여 앞두고 잔디 관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열사의 땅’ 중동에 있는 카타르 날씨는 12월이었음에도 한국의 화창한 초여름과 비슷했다. 경기장 곳곳에 에어컨도 보였다. 카타르 관계자는 “2022년 월드컵 당시 에어컨 근처에 앉은 일부 주요 인사가 춥다고 했을 만큼 에어컨이 잘 작동된다”고 자랑했다. 다만 그는 “중앙 냉난방 체계라 특정 구역의 에어컨만 끌 수 없어 해당 에어컨 위에 테이프를 붙였다”고 테이프 자국을 보여줬다.
카타르는 중동 최초로 월드컵을 개최한 국가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내친 김에 2036년 여름올림픽까지 유치하겠다는 야심도 가지고 있다. 천연가스와 원유 부국 카타르가 이처럼 스포츠 대회 개최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 월드컵을 ‘카타르 전시장’으로…행사·관광 허브 노려
카타르의 국토 면적은 약 1만1437㎢로 경기도와 비슷하다. 하지만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의 약 14%를 보유해 러시아, 이란에 이은 세계 3위 천연가스 보유국 겸 1위 수출국이다. 이처럼 막대한 ‘천연가스 머니’를 바탕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스포츠, 문화예술, 미디어, 교육 산업을 적극 육성했다. 과도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여야 천연가스 고갈 이후 시대를 대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제는 대형 스포츠 행사까지 모조리 개최해 각종 전시, 행사, 관광업을 아우르는 ‘컨벤션 산업’의 강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에 따르면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기간 중 340만 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4년 전 러시아 월드컵(330만 명)보다 많다. 지난해 글로벌 컨설팅업체 ‘브랜드파이낸스’가 발표한 ‘글로벌 소프트파워 지수’에서 2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 카타르는 월드컵 자체를 하나의 큰 자국 문화 ‘전시의 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세계적 건축가들을 초청해 단순히 예쁜 경기장이 아닌 ‘아랍 전통 상징물’을 본따 경기장들을 지은 것이다. 기자가 방문한 루사일 스타디움은 아랍 전통 그릇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이라크계 영국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지은 ‘알자누브 스타디움’은 카타르 전통 범선의 ‘돛’ 형상을 취했다. 하디드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건축가이기도 하다. 다른 경기장들도 유목민 전통 천막, 아랍 남성 전통 모자를 본따 건축했다. 이 때문에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작은 사막 국가인 카타르는 국제사회에 이름을 더 알리고 싶어 했는데 이번 월드컵을 통해 원하는 바를 이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아직 올림픽은 개최한 적이 없지만 이미 도하에 올림픽 관련 각종 물품을 총망라한 ‘3-2-1 올림픽 스포츠 박물관’도 만들었다. 역대 모든 올림픽 성화봉, 메달, 마스코트 인형들을 전부 모아놓은 전시관이 인상적이다. 반드시 2036년 올림픽을 유치하겠다는 카타르의 열망을 엿볼 수 있다.
● 주요 건축물 거장들 손에서 탄생…세잔·고갱 작품까지, ‘글로벌 문화강국’ 노려
2008년 ‘소프트파워 문화강국을 세운다’는 국가비전을 수립한 카타르는 문화예술 인프라에도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특히 셰이카 알마얏사 공주는 전후(戰後) 미술 경매 최고가, 생존화가 경매 최고가, 역대 경매 미술 최고가 기록을 세우며 폴 고갱, 폴 세잔 등의 최고가 작품들을 사들인 세계 미술계 큰 손이다.
가장 대표적인 박물관 두 곳은 모두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설계했다. 특히 카타르의 민족적 소재를 녹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건물을 만들어냈는데, 이 또한 카타르의 관광 매력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도하의 ‘카타르 국립박물관’은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했고 현대건설이 시공했다. 사막 모래가 뜨거운 지열에 엉켜 만들어지는 장미 모양의 결정체인 ‘사막 장미’를 형상화하기 위해 316개의 원반으로 건물을 올렸다. 독특한 외관 덕에 카타르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곳이다. ‘이슬람예술박물관’은 중국계 미국 건축가 이오밍페이(貝聿銘·베이위밍)가 설계했다. 역시 히잡을 쓴 무슬림 여인을 형상화했다.
● 스마트 인공도시와 전통 이슬람문화 공존
고유한 아랍 문화 및 자연과 사막 위에 만들어진 인공도시를 동시에 만나볼 수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도하 인근에 지어진 인공도시 ‘루사일시티’는 사막 위에 올려진 마천루로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은 전통 칼 모양을 본떴으며 초승달처럼 완전히 휜 곡선으로 유명한 ‘카타라 타워’. 루사일시티 곳곳에서 많은 외국인을 볼수 있었다.
최근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워터슬라이드를 설치한 ‘메리알 워터파크’가 아시안컵과 함께 문을 열었다. 특히 카타르의 천연가스 및 석유산업의 역사를 상징하는 모양을 하고 있는 슬라이드들은 한국 소셜미디어(SNS)에서도 화제가 됐다.
반면 도하를 대표하는 전통 시장 ‘수크 와키프’(Souq Waqif)에 가면 현지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더운 나라답게 낮보다 밤이 더 붐비는 이곳에서는 여러 먹거리와 볼거리가 가득하다. 도하에서 약 60km 떨어진 곳에는 사막과 페르시아만이 만나는 ‘내해’(Inland Sea)가 위치해 있는데, 모래사장과 바다가 공존하는 천혜의 풍경을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