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은의 이슈 뒤에는] 떠돌이가 될 수밖에 없던 유기견들, 그 후는
1000만 반려동물 시대 매년 11만 마리 유기
두번째 주인 만나 새 삶은 다행...일부 유기견은 안락사
“유기 동물 관련 적극적 지원 절실”
시간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 모두는 크고 작은 ‘이슈’를 겪으며, 혹은 견뎌내며 살아간다. 감동하고 환호하거나 때론 분노하는 다양한 이슈거리가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시각으로 이를 바라보고 있을까. 곳곳 발생하는 이슈들의 속 사정을 들어보고, 단편적으로 바라봤을 땐 보이지 않던 측면의 시각으로 다시금 조명하고자 한다.
1. 떠돌이가 될 수밖에 없던 유기견들, 그 후는
‘두 눈이 파인 채 쓰러져 있었다’, ‘몸통에 화살이 관통해 박혀 있었다’, ‘강물에 담갔다가 꺼내기를 반복하고 학대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
믿기 힘든, 믿고 싶지 않은 이 가혹한 행위들은 실제 유기견들이 겪은 깊은 상처들이다.
최근에는 자신이 키우던 반려견의 생살을 도려내 인식 칩을 제거한 뒤 두 번이나 유기한 견주의 만행이 드러나면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사건 이후 푸들 ‘다옴이’와 몰티즈 ‘다올이’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유기 동물의 현황을 짚어봤다. 이와 함께 유기견을 입양한 견주들의 생각을 물었다.
◇ 반려견 생살 도려내 인식칩 파낸 견주, 결국 고발
취재 결과 지난 1월 17일 동물보호단체 ‘동물과의 아름다운 이야기’(동아이)는 동물 학대 및 유기 혐의로 견주 A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한 상태이며, 오는 29일 고발인 확인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동아이’에 따르면 앞서 지난 10일 A씨는 천안시 서북구 성정동 한 편의점 앞에서 반려견인 푸들과 몰티즈를 유기했다.
반려견은 시민의 도움으로 천안시 동물보호 센터에 맡겨졌고, 센터는 지난 12일 오후 보호자 정보가 등록된 내장 칩을 통해 A씨에게 연락을 취해 반려견을 다시 돌려줬다.
그러나 지난 1월 12일 저녁, 동일한 반려견 2마리가 아산시 한 대학교에서 또다시 버려진 채 발견된 것이다.
발견 당시 두 마리 중 한 마리인 푸들의 옆구리에는 깊게 파인 상처가 발견됐고, 몸 안에 있던 내장 칩은 사라진 상태였다.
견주가 반려견의 생살을 파내 의도적으로 인식 칩을 떼어낸 뒤, 또다시 유기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다.
반려견들은 다행히 동물보호 활동가에 의해 임시보호 조치를 받았다.
치주염, 슬개골 탈구, 종양 의심 소견과 심장 상태까지 좋지 않은 푸들 다옴이는 입양을 진행할 상황이 못돼 원활한 치료를 위해 1월 24일 임시보호처로 이송됐다.
반려견들이 나이가 들어 노견의 증상은 있을 수 있지만, 병원 치료와 진정으로 필요한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총체적 난국’의 상태였다.
A씨는 경찰 조사를 통해 언급하겠다며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A씨가 반려견들이 보고 싶다며 시청을 통해 센터의 연락처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동아이는 덧붙였다.
이경미 동아이 대표는 “다옴이를 부를 때 원래 이름인 ‘써니’로 부르거나, 다올이는 ‘달이’로 불러야만 귀가 쫑긋하며 반응 하는 것에 가슴이 아팠다. 이번 사건은 큰 트라우마가 됐을 것”이라며 “동물 유기문제가 갈수록 악랄해지고 있다. 더 이상 끔찍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이번 사건을 엄벌해 동물을 유기하려는 자들이 경각심을 깨우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1000만 반려동물 세대에 매년 11만 마리 유기...1만 9043마리는 안락사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인구가 1000만 명을 훌쩍 넘긴 시대 속에서 유기 동물은 해마다 10만 마리 이상 구조된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발표한 ‘2022년 반려동물 보호 및 복지 실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한 해에 구조된 유실·유기 동물은 총 11만 3440마리다.
구조된 동물 중 1만 4031마리(12.4%)만이 원래 주인에게 돌아갔고, 3만 1182마리(27.5%)는 새로운 가족 품으로 입양됐다.
하지만 이 중 3만 490마리는(26.9%) 자연사 했으며, 1만 9043마리(16.8%)는 결국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안락사 당했다.
안락사 시행 기준에 대해 춘천시 동물보호 센터는 “안락사는 최대한 시행하지 않으려고 한다. 입양을 보내는 것이 우선 순위”라며 “하지만 유기 동물은 늘어가는데 내부 시설 때문에 보호할 수 있는 마리 수가 정해져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염병, 중증 질환, 골절, 영구적 장애, 쇠약, 공격성 등의 사유로 문제가 발생하면 안락사가 시행된다”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선 반려견 유실 및 유기 방지를 위해 2014년부터 ‘동물등록제’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동물 등록은 목걸이 형태의 외장형과 마이크로칩을 피부에 주입하는 내장형으로 실시하는데, 외장형의 경우 보호자가 반려견을 버리고자 목걸이를 벗기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유기 억제 효과는 사실상 미미한 수준이다.
한 견주는 내장형에 대해서도 반려견 체내에 인식칩을 삽입한다는 것조차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부작용 등이 우려돼 거부감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유기견 관련 문제에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영환 동물권 단체 케어 대표는 “우선 반려견을 신중하게 입양할 수 있도록 입양 절차가 개선돼야 한다. 무분별한 강아지 번식장과 펫샵도 엄격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동물등록 제도 강화돼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견주들이 내장 칩 삽입에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국가 차원의 시간·공간적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또 “동물을 유기하는 자들에 대한 처벌 수위 강화가 절실하다. 유기 행위를 막기 위해 적발 확률을 높일 필요가 있는데, 아무래도 늦은 시간 유기 동물 발견 제보나 신고가 들어오면 대처하기 쉽지 않다”라며 “적극적으로 유기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지자체 예산이나 인력 문제를 확충해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방안들을 전반적으로 조금씩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 “내가 완벽할 수 없더라도 반려견은 책임져야죠”…상처 보듬어준 두 번째 견주들은 이렇게 말했다
여전히 많은 유기 동물들의 상처는 아물지 못한 채 곪아가고 있다. 그 뒤편엔 넘치는 사랑으로 채워주는 주인을 다시 만나 새로운 삶을 맞이한 유기견들도 존재한다.
견주들을 만나 입양을 결심한 배경과 반려견 유기 실태에 관한 생각을 들어봤다.
춘천시 신북읍 일대에서 홀로 발견돼 춘천시 동물보호 센터로 들어온 ‘차차’를 데려온 이채윤(26) 씨는 사진을 통해 보게 된 차차의 입을 꼭 다문, 고집이 세 보이는 표정이 좋았다고 한다.
며칠의 고민 끝에 센터로 가니 차차가 보호소 선생님의 품에서 나오자마자 만져달라며 애교를 부린 뒤 운동장을 뛰어다녔다고.
이씨는 “검정 털을 가진 차차의 모습이 너무 귀엽고 예뻤다”라며 “내가 완벽할 수는 없더라도 차차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고, 평생을 책임져 같이 뛰어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홀린 듯이 입양 서류를 썼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동물 유기의 가장 큰 이유는 동물을 ‘소유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물을 가족이 아닌 사고파는 물건이나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에 유기가 빈번하게 이뤄지는 듯하다”라며 “동물을 소유물로 보는 게 아니라 진정한 ‘반려’의 의미로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 되도록 동물 보호에 대한 교육이 폭넓게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불법 운영으로 추정되는 펫샵에서 강아지 배변을 치우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노예원(27) 씨는 새끼를 낳는 용도로 방치된 채 신원을 알 수 없던 ‘땅이’를 처음 마주했다.
스스로 몸을 보호하지 못해 다른 개들에게 여기저기 물려 상처가 심했고, 업주에게 ‘이렇게 다쳤는데 병원은 데려가지 않냐’ 물으니 대답을 피한 채 그저 얼버무렸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뒤 해당 펫샵은 사라졌다.
노씨는 “상처를 받고도 내어주는 손을 마다하지 않고 데려가 달라는 듯 눈물을 흘리는 땅이를 보고 며칠 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상태가 얼마나 심각할지 예측되지 않았지만, 평생 함께해 주자는 마음이 들어 가족들과 고민 끝에 땅이를 지옥에서 꺼냈다”고 전했다.
이어 “외국에선 반려견 입양 전 가정조사와 철저한 절차가 이루어진다. 또한 유기 동물 입양 촉진을 위해 펫샵을 지양하는 추세인데, 국내에선 그런 부분과 관련해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라며 “동물보호법 강화와 함께 동물보호소나 보호단체를 통한 유기견 입양 추세가 선호돼서 반려동물 입양 문화가 성숙해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김채림(26) 씨는 전북의 한 동물 보호소에서 모견과 새끼 강아지들을 땡볕 밑 철장에 가두어 방치한 것을 두고 유기견 보호소 ‘한아름 쉼터’가 이를 긴급 구조한 사실을 접했다.
발견 당시 모견들은 이미 안락사를 당한 상태였다. 물그릇엔 분뇨가 떠다녔고, 제대로 된 사료조차 먹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에 김씨는 그중 한 마리였던 ‘단이’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그는 “반려견을 입양할 때 단순 호기심이나 귀엽다는 이유만이 아닌, 강아지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책임감, 경제력 등 반려동물 양육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입양 당시 키울 수 있는 경제력, 집 안 내부 사진들, 반려견과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 산책 횟수, 가족 수 등의 설문 조사를 실시하면서 큰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라며 “기관, 보호단체, 병원 등에서 반려동물의 입양 시 세세한 절차와 추후 관리가 명확하게 진행되면 파양률을 줄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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