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스 넘어선 테일러 스위프트…‘테일러노믹스’ 비밀은?

정혁준 기자 2024. 1. 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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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이슈
13개 앨범 68주간 빌보드 1위
컨트리로 시작해 팝으로 확장
2023년 타임 선정 ‘올해의 인물’
“갈라진 세계 홀로 남은 단일문화”
지난해 5월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있었던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연 모습. AP 연합뉴스

2011년 아시아 투어에 나섰던 미국의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35)는 싱가포르·한국·일본·필리핀·홍콩 등 각국에서의 이동 과정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한국에서 스위프트는 검정 코트를 입은 평범한 차림으로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보는 이가 없었다. 인터넷에서 뒤늦게 회자된 이른바 ‘스위프트의 굴욕’이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스위프트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그해 내한 공연은 3집 앨범 ‘스피크 나우’의 아시아 투어의 일환이었지만,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매진에 실패했다. 공연이 끝난 뒤 스위프트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를 관광할 때도 아무도 그를 몰라봤다. 2006년 정규 1집 ‘테일러 스위프트’로 데뷔한 그는 처음엔 컨트리 가수로 활동했다. 컨트리 음악이 인기가 많지 않은 한국에서 그가 주목받지 못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2014년에 내놓은 5집 ‘1989’부터 스위프트는 컨트리에서 벗어나 음악적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싱어송라이터’ 음악성 겸비한 진솔함

그때로부터 10여년이 흐른 지금, 스위프트는 전세계는 물론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팝가수 중 한명으로 거듭났다. 새해 들어 스위프트는 ‘로큰롤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를 제치고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가장 오래 1위에 머무른 솔로 가수로 등극했다. 스위프트는 지난 6일치 ‘빌보드 200’에서 5집의 재녹음 앨범 ‘1989(테일러스 버전)’로 5주 동안 1위를 차지했다. 그가 지금까지 낸 13개 앨범을 포함하면 이 차트 정상에 68주 동안 올랐다. 프레슬리가 10개 앨범으로 기록한 기존 최장 기록인 67주를 넘어선 것이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테일러 스위프트를 ‘2023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에는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의 ‘2023년 올해의 인물’로도 선정됐다. 타임은 선정 이유를 밝히면서 “스위프트는 층층이 갈라진 세계에 홀로 남은 마지막 단일문화(monoculture)”라고 극찬했다. 인종·계층·민족·취향 등을 떠나 많은 사람이 스위프트를 좋아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927년부터 시작한 타임의 ‘올해의 인물’에 연예인이 본업을 인정받아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연예인 단독 수상도 최초였다. 스위프트는 2017년에도 타임 ‘올해의 인물’에 공동 선정된 적이 있으나, ‘미투’ 운동을 촉발한 ‘침묵을 깬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스위프트의 인기 요인으로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도전과 세대를 아우르는 진정성이 꼽힌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글로벌 팝 시장에서 컨트리 특유의 로컬 맛을 보편적으로 확장함으로써 누구나 쉽게 그의 노래를 즐길 수 있게 했다”고 분석했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스위프트가 데뷔 당시에는 기성세대가 좋아하는 컨트리 음악과 또래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노랫말로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를 끌었다”며 “이후 팝으로 전향한 5집 이후로는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팝 음악과 진솔하고 내밀한 가사로 동시대의 아이콘에 등극했다”고 짚었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챗지피티(ChatGPT) 3.5도 테일러 스위프트의 인기 이유로 “다양한 음악 스타일과 장르”, “가사의 진실성과 공감”, “팬들과의 소통” 등을 제시했다.

사실 스위프트는 3집 ‘스피크 나우’(2010년)의 모든 노래를 혼자 작사·작곡할 정도의 싱어송라이터다. 2022년 10월에도 스위프트는 10집 ‘미드나이츠’로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1~10위를 휩쓸었는데, 이 앨범이 인기를 끈 건 스위프트의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가사에 대중이 깊이 공감하고 열광했기 때문이다. 스위프트는 이 앨범에 대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불을 켜고 일어나 원인을 찾기 위해 나선 우리를 위한 노래들이 담겨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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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팬덤…테일러노믹스 신조어도

2022년 10월 빌보드 싱글 차트 1~10위를 휩쓴 테일러 스위프트의 곡들. 빌보드 누리집 갈무리

방탄소년단(BTS)에게 팬덤 ‘아미’가 있다면, 스위프트에게는 팬덤 ‘스위프티’가 있다. 지난달 영국 옥스퍼드 사전이 ‘올해의 단어’를 뽑는 데 최후까지 경쟁했던 단어 가운데 하나가 ‘스위프티’였다. 이들은 스위프트 공연이 열리는 곳마다 찾아가고 이를 위한 호텔 숙박과 굿즈(기획상품) 구매 등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이에 스위프트의 이름을 따서 ‘테일러노믹스’(테일러+경제)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다.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는 “테일러 스위프트를 둘러싼 최근 화제는 차트 순위와 앨범 판매량, 투어 수익인데, 이는 열성 팬의 압도적 화력과 충성도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며 “팬이 새 기록을 내면 주목도가 그쪽으로 급속도로 쏠리는 최근 음악계의 추세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스위프트는 노래뿐만 아니라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스타로도 유명하다. 그는 2012년부터 4년 연속으로 기부를 많이 한 스타 1위에 오르면서 ‘기부 천사’로 불리고 있다. 여성 인권을 위한 페미니스트로 나섰고, 성소수자(LGBT)에 대해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스위프트는 2015년 5월 음악 잡지 ‘롤링스톤’과 한 인터뷰에서 “여성혐오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주입된다. 그래서 내게 페미니즘은 받아들여야 하는 가장 중요한 운동이다. 페미니즘은 평등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위프트는 미국 정치에도 목소리를 냈다. 2020년 대선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차별의 불을 지폈다”고 비판하며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다. 캠페인을 통해 팬들의 투표를 이끌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마르가리티스 스히나스 유럽연합(EU) 부집행위원장은 지난 10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스위프트가 젊은층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인 만큼 6월에 있을 유럽의회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도록 독려해달라”고 말했다. 대부분 50% 미만의 저조한 투표율을 보인 유럽의회 선거에 젊은 유권자가 참여하도록 스위프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스위프트는 5월9일 유럽 투어의 첫 공연을 한다.

17살에 데뷔한 스위프트는 가수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김영대 대중음악평론가는 “스위프트에게는 미국 주류 대중이 선호해온 컨트리 팝 기반의 백인 여성 팝스타라는 상품성, 모든 곡을 직접 작사·작곡하는 빼어난 음악성, 노래 안에 녹아 있는 개인의 서사성, 데뷔 18년차가 되어가지만 최고 수준의 음악에 도전하는 혁신성 등이 함께 녹아 있다”고 짚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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