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3도, 길냥이 죽음 막을…'얼지 않는 물그릇'[남기자의 체헐리즘]
겨울 집 10겹으로 감싸고 핫팩 넣어야만 겨우 얼지 않던 물
김성호 교수 등 4명 모인 '린 프로젝트', 고양이 죽음 막고 환경 지키려 '얼지 않는 물그릇' 실험
영하 13도까지 내려간 새벽에도 물은 찰랑거렸다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 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세상이 처음 불편해졌지요. 직접 체험해 알리는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며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가장자리가 보이도록 힘쓰려합니다.
"엄마 왔다고 밥 먹으러 온 거예요."
지우씨(가명)가 바리바리 싸온 가방을 열며 말했다. 쉬는 날이면 꼭 이곳, 백사마을로 온다던 '고양이 엄마'. 재건축으로 사람은 거의 다 빠져나간 동네에 영문도 모른 채 남아 살아가던 고양이들. 그게 눈에 밟혀 틈만 나면 밥과 물을 주러 온단다.
지붕에 놓인 물통부터 급히 내렸다. 물그릇 물이 꽝꽝 얼어 있었다. 당연했다. 주머니에서 손을 잠시만 빼도 벌게지던 추위였으니. 얼음 표면은 차갑고 돌처럼 단단했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그릇 모양의 얼음이 떨어져 나왔다. 치즈냥이는 시선을 떼지 않고 기다렸다. 콸콸콸, 빈 그릇에 따뜻한 물이 채워졌다. 고양이가 부리나케 다가와 벌컥벌컥 목을 축였다. 먼저 부은 사료도 그대로 둔 채.
그 마음을 짐작해봤다. 있을 때 빨리 마셔야만 하는 다급함을. 그럴 수밖에. 방금 채워준 뜨뜻한 이 물도, 고작 1시간이면 얼음덩어리가 될 테니.
이 글은 '한겨울의 물' 이야기다. 집에서 몇 걸음만 가도 정수기나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나올 일 없는, 길 위에서 사는 존재들의.
"배가 이리 고파도 물을 주면, 물부터 와서 먹어요. 맨날 얼어 있으니까요."
동네 고양이들이 허겁지겁 물을, 사료를 먹는 모습이 애달팠다. 지우씨는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니 뭔 일이 있어도 안 올 수가 없다고. 뭐 하는 거냐고, 미쳤다는 소릴 들으면서도.
빼낸 얼음 위에 햇빛이 쏟아져 반짝거렸다. 표면엔 작고 동그란 구멍들이 여러 개 뚫려 있었다. 지우씨가 내게 말했다.
"여기 중간에 구멍 이렇게 나 있는 것 있지요. 이거 얘네들 혀 자국이에요. 핥아서 구멍을 뚫어요. 목이 너무 마르니까. 어떻게든 마셔야만 사니까."
생각지도 못했던 얘기라 숨이 턱 막혔다. 혀로 그 차가운 얼음을, 녹여보려 몇 번이나 닿았다 떼었다 애쓰는 모습을 떠올리다 멈췄다. 물은 어디서나 쉽게, 맘껏 마실 수 있는 게 아녔다.
손끝으로 그 구멍들을 어루만져 봤다. 차가워서 몇 초도 대고 있기 힘들었다. 그리 몸부림치며 만든 모든 구멍을 다 합쳐도, 고작 물 한 모금도 되지 않았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애들 안 죽게 하고 싶어서였어요. 신부전으로 죽고 그러니까요."
버려진 짠 음식을 주워 먹고. 빗물조차 얼어붙어 마시지 못하고. 그리 몸 안의 염분이 과해지면 신장이 망가진다. 살쪘다 오해하는 이들이 있는데, 몸이 퉁퉁 부은 경우가 많다.
이를 아는 '고양이 엄마'들은 백방으로 노력한다. 얼음을 빼어 물을 자주 주고, 물그릇 아래에 핫팩도 깔고.
그래봐야 영하 날씨에선 짧게는 30분, 길어도 1~2시간 안에 다 얼어버린다. 블로그나 카페엔 고양이들이 마실 겨울철 물을 지키기 위한, 정말 많은 방법이 공유돼 있었다. 진정 살리고 싶은 거였다.
길고양이가 눈에 들어온 건 평범한 날의 우연이었다.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한 고양이를 만났다. 다릴 다쳐 절뚝거리며 다니고 있었다. 피를 흘리면서도 사람이 무서워 어딘가에 숨었다. 성경씨는 이를 모른척하지 못하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애써 구해주고 좋은 이에게 입양까지 보내주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어느 날엔 암 덩이가 바깥에 튀어나온 고양이를 만났다. 덩어리가 콘크리트 바닥에 쓸려 농이 뚝뚝 떨어졌다. 맘 아파하며 또 살려주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고양이들이 믿고 기대는 엄마가 돼 있었다.
밥을 주면 쪼르르 앉아 나란히 기다리던 존재들. 그 눈빛을, 고단한 삶을 저버리지 못했다. 수술비를 수백만 원씩 쓰며 살리기도 했다. 그리 홀로 매일 지키는 사이에 18년이란 시간이 훌쩍 흘렀다. 길들였단 것, 책임져야 한단 걸 알기에 차마 이사도 못 갔다. 자리 허락을 받느라 돈을 쓰고, 욕먹고 손가락질을 당하며 '내가 이걸 왜 하나' 싶다가도, 애들 보면 갑옷처럼 책임감을 또 입었다.
밥과 물 주는 걸 하루라도 함께하고 싶었다. 따뜻한 물 세 통을 받아, 성경씨가 보온 가방에 꽁꽁 싸매었다. 지퍼도 고장난 입구에 찬 바람이 들까, 집게 세 개로 고정까지 시켜놓았다. 묵직한 물 가방을 들고 따라갔다.
"우와, 보세요. 물이 얼지 않았어요."
성경씨가 고양이 겨울집에서 물을 꺼내더니 아이처럼 기뻐했다. 믿기 힘들었다. 가방을 쥔 손이 얼얼할 정도로 추운데, 저녁과 기다란 새벽과 아침을 지나 오후를 버텨낸, 찰랑거리는 물이라니. 그러나 정말 얼지 않았다.
비결은 밥과 물을 넣은 집이었다. 집안에 손을 넣으니 따뜻해서 놀랐다. 깔끔하게 관리도 잘 돼 있었다. 18년에 걸쳐 여러 가지 방법을 해본 결과였다.
추운 날 밥을 포기하며 웅크리던 고양이들. 그런데 집을 따뜻하게 해놓았더니 추운 길을 뚫고 오더란다. '거기 가니까 물을 마실 수 있었어, 또 따뜻했어', 그런 믿음으로.
지난해 가을, 성경씨에게 그런 이야길 들은 김성호 한국성서대 교수는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일을 벌였다.
"(얼지 않은 물그릇을) 이걸 못 만드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내가 해볼게, 그렇게 시작한 거예요."
성경씨가 돌보던, 지금은 고양이별로 간 '린'의 이름을 따서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이른바 '린 프로젝트'. 얼지 않는 고양이 물그릇을 만들기 위해 뭉친 거였다.
추운 바깥에서 물이 얼지 않기 위해선, '단열'이 관건이었다. 열을 계속해서 가해줄 보조배터리를 지키는 것도 관건이었다. 전문가들을 수소문하다 김영환 동물권 활동가와 이성진 그린 디자이너(환경보건시민센터 국장)가 합류했다. 성경씨까지 넷이, 고양이들을 위한 물그릇 실험을 시작한 거였다.
이들은 경기도 부천에 냉동고까지 사 가며 실험했다. 1000만원 가까이 썼단다. 수없이 시행착오를 거쳤다. 배터리 용량과 보온 용기를 바꾸고 또 바꿔가며.
마침내 영하 17도 냉동고에서 10시간을 얼려도, 물이 얼지 않게 성공해냈다. 이제 바깥에서 실제로 해볼 차례였다.
첫 실험은 백사마을이었다. 15일 저녁 8시, 고양이 밥자리에 '린 물그릇'을 놓았다. 다음날, 오전 7시 11분에 물그릇을 확인했다. 일반 물그릇은 꽝꽝 얼어 있었고, 린 물그릇은 하나도 얼지 않았다.
경기 부천에선 영하 13도 날씨에, 약 10시간 동안 물이 얼지 않았다. 김 교수 자택이 있는 양평에서도 영하 12도에, 9시간 동안 물이 찰랑거렸다. 심지어 차지도 않았다.
성경씨가 고양이 밥과 물을 챙기던 곳에도 둬봤다. 저녁 8시 반에 린 물그릇을 두고, 다음날 새벽 6시 반에 다시 가봤다. 영하 18도인데 가장자리에만 살얼음이 있었다. 성경씨는 "새벽에 몇 번 나왔었는데 영하 20도까지 떨어졌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배터리 용량이 75% 남아 있어서 방전됐는데, 완전히 충전했으면 괜찮았겠다"고 했다.
'린 프로젝트'는 얼지 않는 물그릇을 완성하기 위한 펀딩을 시작했다. 기부받은 뒤 30명에게 나눠주어, 장단점을 파악한 뒤 올해 10월까지 발전시킬 계획이란다. 이후 상용화하는 게 목표다. 김 교수가 말했다.
"살면서 뭐 때문에 안 된다고 할 때가 많잖아요. 그걸 해결하면 되거든요. 안 될 이유는 1000가지고, 될 이유는 한 가지인 거예요."
고달픈 길 위의 존재들을 위해, 그 한 가지를 해결하려 애쓰는 이들이 세상에 있었다. 다행히도.
그로 인해 돌아오는 겨울엔, 고양이들이 따뜻한 물을 맘껏 마시는 상상을 해봤다. 더는 얼음에 혓바닥이 얼얼하거나 아리지 않고.
에필로그(epilogue).
"큰 집에 판넬 단열재를 넣고, 종이상자를 넣어서 결로가 안 생기게 하고요. 또 스펀지를 넣고 접착 단열재를 넣고, 또 뭔가로 감싸줬어요. 다 합치면 10겹 정도 될 거예요. 생명을 돌보는데 정성이 없으면 안 되더라고요."
영하 12도에 어떻게 고양이 집이 따뜻한지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그랬다. 어떻게 이리할 수 있을까, 속으로 감탄할 무렵 성경씨가 아픈 기억을 꺼냈다.
다른 해 겨울이었다. 길고양이를 돌본지 얼마 안 돼 잘 몰랐을 때였다. 애가 집에 잘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고양이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성경씨에겐 그게 너무 큰 충격이었다. 자기가 집을 잘못 만들어줘서 그랬단 죄책감에 시달렸다.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안 해주면 또 잘못될 거란 생각에 온갖 방법을 다 썼다. 그러니 밥과 물을 한 번 주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겨울마다 얼어 죽은 고양이들도 많았다. 때론 컨테이너 밑에서, 어떨 땐 폐가에서, 쌓아놓은 돌 사이에 숨어 죽어 있는 걸 다 찾아내었다. 땅마저 꽁꽁 얼어 장례해주는 것마저 쉽지 않았다.
성경씨가 밥과 물을 채워준 뒤 돌아서며 혼잣말처럼 나지막이 말했다.
"얘들아, 잘 버텨. 버텨내고 꼭 보자."
하루마다 안녕과 무사(無事)를 바랄 수밖에 없는, 작은 존재들을 향한 인사가 그랬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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