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폐지①] '호갱'·'버스폰' 없앴지만…전국민 호갱법 오명도
보조금 차별 경쟁 막으면서 통신요금 할인 기여
이통사 경쟁 줄어든 대신 영업익 올라
[서울=뉴시스]윤정민 기자 = #1. 서울 마포구에 사는 40대 직장인 김모씨는 딸에게 첫 스마트폰을 선물하기 위해 동네 한 대리점을 찾았다. 김씨는 20대 시절 휴대전화 구매에 마음 아픈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친구 따라 '0원 폰'이라고 믿고 구매했더니 오히려 유통점에 속아 비싼 요금제에 가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친구는 발품을 팔아 자신보다 저렴한 요금제로 똑같은 휴대전화를 구입하면서 화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는 이러한 차별이 사라진 지금, 마음 놓고 딸에게 스마트폰을 사러 유통점을 찾았다. 어딜 가나 휴대전화 지원금은 같았기 때문이다.
#2. 인천 서구에 사는 30대 이모씨는 정보의 달인이다. 지인 등 곳곳을 수소문하며 TV, 냉장고 등을 저렴하게 구매할 방법을 찾았고 그렇게 발품 팔아 남긴 금액만 수백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100만~200만원대에 달하는 스마트폰을 저렴하게 구할 방법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휴대전화 대리점 어디를 가도 최신 스마트폰을 파격적으로 할인해 파는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휴대전화를 차별해 팔지 말라는 법 때문이었다. 이러한 법이 있었다는 걸 안 이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10년간 소비자들을 웃고 울게 했던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단통법)' 폐지 수순을 밟는다. 정부가 단통법 전면 폐지 카드를 꺼내 들면서다.
소비자들이 차별 없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입한 제도였지만 오히려 이동통신사의 보조금 경쟁을 위축시켜 저렴하게 단말기를 살 수 있는 기회를 막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결국 가계통신비 인하를 목표로 두던 정부가 이러한 비판을 수용하며 휴대전화 지원금 공시와 추가지원금 상한제를 폐지하는 데 추진하기로 했다.
"나는 100만원 다 냈는데 넌 왜 공짜야?"…'호갱' 양산한 과거 휴대전화 시장
보조금 대신 통신비 할인 기대한 정부…이통3사 배만 불려
단통법이 생긴 건 단말기 지원금 차별 지급에 따라 휴대전화를 더 비싸게 구매하는 '호갱(호구+고객)' 양산을 막기 위해서였다. 어느 소비자는 100만원짜리 스마트폰을 무료로 구매했다면 또 다른 소비자는 제 값을 냈다. 판매점에 따라 소비자간 차별이 극에 달했다.
스마트폰 대중화 시기의 문제였다. 스마트폰을 값싸게 살 수 있다면 몇 년 간 써오던 이통사를 옮기는 건 일도 아녔다. 이 때문에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는 마케팅비를 대대적으로 투입해 가입자 빼앗기 경쟁을 벌였다. 업계에 따르면 이통3사가 단통법 시행 전 쓴 마케팅 비용은 한 해 5조~6조원으로 알려졌다.
당시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표인봉(페이백), 버스폰, 퇴근폰 등의 단어가 나왔다. 표인봉은 표면상으로는 제값을 내고 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정 기간 뒤에 돌려주는 걸 말한다. 버스폰은 버스비 정도로 싸게 구입한다는 뜻이며 퇴근폰은 이통사가 과다한 보조금을 얹어준 휴대전화로 유통점들이 하루 목표량을 빠르게 판매하고 일찍 퇴근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영향에 한 달 번호이동 건수는 130만건에 육박하기도 했다.
물론 당시에도 정부 보조금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소비자 차별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지침이다.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은 이통3사에 1000억여원대 과징금을 물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 노력에도 이통3사는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가입자 모집으로 얻는 실익이 과징금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와 국회는 불투명한 유통시장을 바로잡고 소비자 피해를 막겠다는 취지로 단통법을 제정·시행했다.
단통법은 이통사가 휴대전화 할인을 제공하는 지원금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한 게 골자다. 시행 초기에는 신규 단말 지원금에 상한선을 뒀으나 2017년 없어졌다. 대신 유통점이 공시지원금에 최대 15%를 더해 보조금을 추가로 줄 수 있는 추가지원금 제도를 만들었다.
단통법 시행에 따라 소비자가 가장 이득을 본 정책이 있다면 아마도 선택약정일 것이다. 단말기 지원금을 받지 않는 대신 월 요금을 할인해 주는 제도다. 시행 초기에는 월 요금에 20%를 할인했으나 현재 25%로 늘었다. 이러한 혜택에 지난해 6월 기준 선택약정 가입자는 약 2600만명에 달했다.
단통법은 휴대전화 할인 정보를 여기저기 찾아야 할 부담을 줄여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파격적인 번호이동 보조금 경쟁이 사라지면서 2년에 1번 꼴로 휴대전화를 무조건 바꾸던 소비자들도 크게 줄었다. 불필요한 휴대전화 교체 수요도 줄어들면서 휴대전화 교체 주기가 늘었고 중고폰 매매도 활성화됐다.
하지만 욕도 많이 먹었다. 정부는 이통사가 단통법으로 줄인 보조금 마케팅 비용을 요금 경쟁으로 활용해 가계통신비를 낮춰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단통법 시행 10년간 이통3사가 통신비 인하 경쟁을 펼쳤다기보다는 비용 절감으로 오히려 이익을 늘리는 데 집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4년 이통3사 합산 영업이익은 1조6000억원 수준이었다면 2021년에 4조원을 넘겼다. 2022년에는 4조3835억원, 지난해에는 4조4967억원으로 추정된다. 3년 연속 4조원 규모 영업이익을 거둔 셈이다.
단통법 폐지로 휴대폰 가격 인하 바라는 정부…요금 할인은 유지
이처럼 단통법이 법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시장 변화가 나타나면서 단통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통신사와 판매점이 자유롭게 지원금을 설정해 단말기 구매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정부는 지난 22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에서 단통법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는 지원금 공시와 추가지원금 상한을 없애면서도 단통법으로 나타난 선택약정 제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전했다.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가입자의 절반가량인 2600만명이 이용하고 있다. 이 제도의 근거를 전기통산사업법에 넣을 것"이라며 "관련된 산식 등을 어떻게 구체화할지는 조금 더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인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번 폐지를 통해) 지원금 지급 제한이 없어지고 통신사나 유통사 간 자유로운 지원금 경쟁이 이뤄지면 저렴하게 단말기를 구입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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