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유튜버가 보여준 르완다…인종대학살 겪은 나라 맞아?

한겨레 2024. 1. 2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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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도훈의 낯선 사람ㅣ폴 카가메
80만명 학살된 1994년 내전…반군 승리 뒤 사적 보복 금지
2003년 95% 지지 대통령 당선…경제발전 성과 올해 4선 도전
지난해 4월 르완다 키갈리의 대학살 추모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왼쪽)과 그의 부인이 불을 붙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여행 유튜브를 좋아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는 여행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렸다. 매년 집착적으로 보잉기에 몸을 실었으나 한번 나가지 않으니 계속 나가지 않게 됐다. 나가지 않아도 딱히 아쉽지 않게 됐다. 여권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대신 여행 유튜버들 동영상을 보는 취미가 생겼다. 곽튜브와 빠니보틀 외에도 괜찮은 여행 유튜버가 참 많다. 특히 나는 오지를 중점적으로 여행하는 유튜버들을 좋아한다. 이들이 아니라면 언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나 중앙아시아 독재국가 투르크메니스탄 같은 곳을 랜선으로나마 여행하겠는가 말이다. 유튜브의 시대는 위대하다.

얼마 전 좋아하는 여행 유튜브를 보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경험을 했다. 아프리카 르완다였다. 중앙아프리카 다른 국가도 여행한 유튜버라 이미 그 지역에는 도가 튼 터였다. 중앙아프리카 지역을 오래 돌아다니는 유튜버들은 사기를 당하거나 강도를 당하거나, 하여간 홀로 여행하는 자가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악몽을 다 경험한다. 맞다. 어디에나 좋은 사람이 있고 어디에나 나쁜 사람이 있다. 다만 오랜 내전과 경제난을 겪은 동네에 갈 때는 차라리 약간의 편견을 가미한 주의도 필요하다. 유튜브로 본 르완다는 달랐다. 거리는 깨끗하고 질서 있고 사람들은 친절하고 여유로웠다. 유튜버가 말했다. “아프리카뿐 아니라 가 본 모든 나라를 통틀어서 가장 거리가 깨끗하고 도시도 예쁘고 사람들도 친절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르완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인종 대학살을 겨우 30여년 전에 겪은 나라?

세기말 피로 물들인 인종청소

내 인생 가장 지켜보기 고통스러웠던 영화를 꼽으라면 나치의 벨라루스 민간인 대학살을 그린 ‘컴 앤 씨’(1985)와 르완다 내전을 다룬 ‘호텔 르완다’(2004)다. 만약 당신이 ‘호텔 르완다’를 볼 생각이라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수도 키갈리의 호텔에서 100일 동안 1268명의 난민을 보호한 지배인의 실화를 다룬 이 영화는 대학살의 고통으로 가득하다. 보스니아 내전과 함께 20세기의 마지막을 피로 물들인 르완다 내전은 정말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인종 청소의 지옥이었다. 그 지옥의 역사를 글로 설명하자면 이 칼럼 전체를 소모해야 할 것이다.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 원래 르완다는 여러 부족이 섞여 살아가던 지역이었다. 언어·문화도 서로 비슷해 나뉘어 싸울 이유도 없었다. 중앙아프리카 국가들을 위임통치하기 시작한 벨기에는 르완다 부족을 계급으로 나누었다. 유목 부족인 소수 투치족을 지배계급으로, 농경 부족인 다수 후투족을 피지배계급으로 만들어 차별했다. 식민 지배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잔꾀였다. 1935년 벨기에는 투치족·후투족을 식별하는 카드까지 발급했다. 당연히 두 부족 사이는 멀어졌다. 식민 지배가 끝난 이후에도 서로에 대한 증오는 여전했다.

1994년 후투족 르완다 대통령이 비행기 격추로 암살당했다. 추후 밝혀진 바로는 후투족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이었다. 이를 이용하고 싶던 르완다 참모총장은 소수 지배계급 투치족의 짓이라며 모든 투치족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1994년 4월부터 7월 사이 80만명이 학살당했다. 후투족 학교 선생이 투치족 아이들을, 이웃이 이웃을 칼이나 도끼 같은 원시적 무기로 도륙하는 지옥이 펼쳐졌다. 르완다 인구의 20%가 사라졌다. 투치족만 죽은 것이 아니다. 학살에 반대하는 온건파 후투족도 학살당했다. 기간당 희생자로 따지면 캄보디아 ‘킬링 필드’를 능가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제노사이드였다. 유엔과 국제사회가 나섰지만 언제나처럼 별 쓸모는 없었다. 비극을 중단시킨 것이 바로 지금 르완다 대통령인 투치족 폴 카가메다.

카가메 대통령이 2022년 12월 워싱턴디시(DC)에서 열린 미국-아프리카 지도자 서밋 우주 포럼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차별 금지하고 개혁 작업

학살이 일어나자 투치족 반군 알피에프(RPF, 르완다애국전선) 지도자 폴 카가메는 반격했다. 우수한 군사력으로 수도 키갈리를 함락한 그들은 후투족을 지원하는 옆 나라 콩고민주공화국과의 전쟁까지 승리로 이끌며 르완다 전체를 장악했다. 후투족 수십만명은 투치족의 보복이 두려워 주변국으로 탈출을 시작했다. 남은 것은 투치족의 복수뿐이라고 모두가 믿었다. 아니었다. 카가메는 르완다를 장악하고도 후투족에 대한 사적인 보복을 금지했다. 그렇다고 모두 잊어버리지도 않았다. 그는 학살 명령을 내린 책임자들은 확실히 처벌했지만 일반 시민들은 용서를 구하면 돈이나 노동력으로 피해자에게 보상하도록 했다. 물론이다. 무려 80만명이 이웃에게 학살당한 사회의 트라우마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르완다는 폴 카가메를 따랐다. 민주콩고로 피난 간 후투족도 곧 르완다로 돌아왔다. 놀랍게도 인류 최악의 제노사이드를 겪은 국가의 상처는 빠르게 봉합됐다.

카가메는 2003년 대선에서 95.05%의 놀라운 지지율로 대통령이 됐다. 그는 즉각적으로 인종·종교·민족 차별을 금지했다. 여성 의원 할당제를 실시했다.(지금 르완다 성평등지수는 세계 10위권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국가 발전에 힘을 쏟았다. 정경유착과 부패를 없애고 경제를 자유화했다. 3차산업 육성을 위해 전국을 광섬유 통신 네트워크로 연결했다. 총예산의 17%를 교육에 할당했다. 아프리카에서 드물게 르완다는 의무교육 12년이 무상이다. 2008년에는 전 국민 의료보험도 의무화했다. 의료 시스템을 잘 갖추고 문맹률이 낮은 덕에 코로나 팬데믹도 다른 중앙아프리카 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넘겼다. 똑같은 후투족-투치족 갈등을 겪은 이웃 국가 부룬디와 비교하면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속도의 발전이었다. 그러니 내가 유튜브로 목격한 르완다는 진짜였던 것이다. 한국 유튜버들은 르완다 관광부의 여행 자금 지원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다른 중앙아프리카 국가와는 다르다”고 혀를 내두르며 감탄한 것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놀라운 사회적 봉합과 통합은 과거보다는 미래를 바라보자며 국민들을 이끈 한 명의 대통령, 폴 카가메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때로는 한 명의 정치인이 국가의 운명을 밝히기도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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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 덕분…박정희 존경한다”

지난해 5월 르완다 키갈리의 생태공원에서 나무를 심고 있는 카가메 대통령. 신화 연합뉴스

모든 개발도상국의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모든 개발도상국은 자기만의 영웅을 갖고 있다. 독립영웅이거나 전쟁영웅이거나, 혹은 경제적 영웅이다. 그들은 사회를 통합시키고 발전시킨다. 대중의 깊은 존경을 받는다. 그렇다면 다음은? 그들의 다음 임무는 머리 위의 왕관을 벗고 대중에게 다시 권력을 돌려주는 것이다. 여기서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이 실패를 겪는다. 대부분의 영웅이 권력의 달콤함에 취해 독재자가 되는 탓이다.카가메는 2024년 대통령 선거에서 4선에 도전할 거라 선언했다. 그렇다. 무려 4선이다. 그는 2010년, 2017년에 재선과 3선에 성공했다. 르완다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가메가 독재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는 지속적으로 야당을 탄압했다. 권력에 도전할 법한 정치인들의 싹을 미리 자르거나 제거했다. 집권 기간 중 사망하거나 실종된 언론인이 8명이다. 카가메는 4선 도전에 대해 서방이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는 질문에 “미안하지만 서방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내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물론 그는 짐바브웨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와는 다르다. 백인 식민통치에 저항한 독립운동가지만 반세기 동안 국민을 학살하고 경제를 파탄시킨 무가베와 달리 카가메는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확실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세번의 선거에서 조작 없이 90% 이상의 득표를 얻은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많은 르완다 국민들이 국가 발전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온건한 독재자가 더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 역시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꽤 익숙한 이야기다. 당신이 박정희 신화를 좋아하든 아니든 그런 신화가 한국인의 멘털리티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건 불가능하다. 재미있게도 폴 카가메는 “박정희를 가장 존경한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2015년 유엔 회의에 참석해서는 “르완다의 고도성장은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받아들인 덕분”이라고 말했다.

나는 지금 약간 삐딱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같은 과거를 겪고도 발전된 국가에 사는 ‘제1세계 시민’스러운 마음으로 르완다를 바라보려는 마음을 버리려 애쓰는 중이다. 그런 것은 이미 지구의 기후를 열정적으로 망쳐놓고서는 이제야 먹고살 만해지려는 개발도상국에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말라 엄포하는 서구의 태도나 다를 바가 없다. 최소한의 염치는 있어야 한다. ‘호텔 르완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를 구해줄 사람도, 우리를 위해 나서줄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를 도울 것은 우리 자신밖에 없습니다.” 르완다는 스스로를 구했고, 결국 스스로를 구할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동족 학살의 내전과 장기 독재를 겪고도 드물게 성공한 국가 시민의 순진한 바람이다. 바람은 원래 순진한 것이다.

문화 평론가

영화 잡지 ‘씨네21’ 기자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했다. 사람·영화·도시·옷·물건·정치까지 관심 닿지 않는 곳이 드문 그가 세심한 눈길로 읽어낸 인물평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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