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마이어처럼…아날로그 감성으로 ‘찰칵’ [ESC]

신승근 기자 2024. 1. 2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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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짠내 수집일지 이안카메라
내려보면서 찍는 ‘2렌즈’ 카메라
도쿄서 롤라이플렉스 놓쳤지만
미놀타 오토코드 5만원대 ‘득템’
도쿄 정크숍에서 찾아낸 이안카메라 ‘미놀타 오토코드’와 폴딩카메라 ‘자이스 이콘 콘테사’, 동네 앤틱숍에서 산 이안카메라 ‘리코플렉스’.(왼쪽부터)

2015년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봤을 때 깊이 매료됐다. 1926년 뉴욕에서 태어난 비비안 마이어는 보모, 가정부, 간병인으로 남의 집 살이를 하며 죽는 순간까지 수십만장의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2009년 숨을 거둘 때까지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다. 노숙인처럼 보낸 말년엔 필름과 소지품 등을 보관해둔 창고 임대료를 내지 못해 2007년 창고가 경매에 부쳐졌고, 필름은 헐값에 팔려나갔다.

부동산 중개업자인 존 말루프는 이 가운데 30만장에 이르는 네거티브 필름(현상했을 때 피사체와 반대로 나타나는 필름)을 단돈 380달러에 사들였다. 사진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낀 말루프가 일부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마이어가 세상에 알려졌다. 언론은 대중의 다양한 삶을 담아낸 사진에 찬사를 보냈고, 천재 작가로 인정받았다. 전시회가 열리고, 그의 삶을 추적하는 다큐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베를린·선댄스 등 각종 영화제에서 호평받았다. 숨겨진 필름, 극적인 발굴, 가치의 재발견, 모든 게 짠내 수집에 열심이던 나에겐 영감을 줬다.

10분만 일찍 왔어도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영화 포스터를 구해 해가 잘 드는 부엌 베란다 창문에 붙여뒀다. 1953년 뉴욕 거리에서 대형 거울에 비친 마이어 자신을 찍은 흑백 포스터로 빛이 투과할 때 신비한 느낌이 좋았고, 그가 들고 있는 특이한 사진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롤라이플렉스 이안카메라다. 우리가 흔히 아는 35㎜ 필름 카메라는 눈높이까지 카메라를 끌어올려 피사체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가슴이나 허리쯤으로 카메라를 끌어올려 큼직한 사각 뷰파인더에 맺힌 피사체를 고개 숙여 아래로 내려다봐야 한다. 피사체를 응시하는 렌즈와 셔터를 여닫는 렌즈가 한 몸체의 위·아래에 달려있어 두개의 눈을 가진 ‘이안’카메라로 불린다. 직사각형인 35㎜ 필름 카메라와 달리 6*6㎝의 정사각형 사진이 만들어진다. 정사각형 유리판에 비친 피사체의 모습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그 위쪽엔 동그란 확대경까지 달려 있다.

미놀타 오토코드 확대경에 비친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포스터.

생김새부터 아날로그 자체다. 하지만 이미 1930년대부터 유명 작가들이 사용한 롤라이플렉스 이안카메라는 수백만원을 호가했다. 미놀타·야시카 등 다른 제품도 수십만원이다. 옛날 카메라에 마음을 뺏긴 지 오래지만, 영화 포스터와 책으로 만족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지난해 11월 새로 문을 연 동네 앤틱샵에서 이안카메라를 발견했다. 고물이 그득한 그곳에서 톱니바퀴로 맞물린 두개의 렌즈가 달린 물건을 발견했다. 렌즈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장님은 “경매에서 구입한 원가 5만원만 받겠다”고 했다. ‘길보드 카세트 테이프’ 2개, 텀블러 1개를 더 얹어서 5만원에 흥정했다. 횡재의 꿈을 안고 인터넷을 뒤졌지만 고급 제품은 아니었다. 1953년 일본에서 저가 제품으로 출시한 ‘리코플렉스 Ⅵ’였다. 유튜브를 섭렵한 뒤 하룻밤을 꼬박 새워 분해 조립했다. 너무 단순했다. 사각 쇠 깡통에 렌즈 2개를 달아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필름 넣는 곳의 잠금장치도 허술했다. 첫 시도이고, 저렴한 가격이니 인테리어용으로 만족하며 책상에 올려두었다.

지난해 12월 일본 방문 때 기회가 왔다. 엘피를 찾아 도쿄 신주쿠를 탐문하던 나는 중고카메라 전문점 두 곳이 유명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틀에 걸쳐 두 곳을 찾아갔다. 비비안 마이어가 쓰던 롤라이플렉스는 물론 미놀타·야시카 등 이름 있는 이안카메라는 잠금장치가 달린 유리 장식장에 모셔져 있었다. 기본 4만~5만엔, 10만엔을 넘는 물건까지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실망하며 발길을 돌리는데 좁은 지하 계단에서 점포를 발견했다. 붉은 글씨로 ‘정크 카메라 판매점’이라고 적혀 있었다. 5~6평 남짓한 좁은 공간엔 카메라가 그야말로 쌓여 있었다. 몇천개는 되는 듯했다. 가격도 저렴했다. 1천엔부터 8천엔 안팎. 작은 바구니에서 그렇게 갈망하던 롤라이플렉스를 발견했다. 가슴이 쿵쾅쿵쾅. 집어 들었다. 그런데 한 일본인이 기겁하며 알아듣지 못할 말을 반복했다. 마음을 진정하고 귀를 기울이니 ‘자신이 먼저 골라 바구니에 담아놓은 것’이라는 얘기가 온전히 들렸다. 10분만 일찍 왔어도 내 것인데, 이전 중고점에서 살까 말까 망설이며 시간을 허비한 걸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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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동 않는 셔터, 살려내자 쾌감이

수리를 위해 셔터 구동부까지 분해한 미놀타 오토코드.

나도 디깅을 시작했다. 35㎜ 카메라의 전설 라이카가 있으면 무조건 사겠다고 마음먹었다. 라이카는 단 한대도 없었다. 이안카메라는 7대 정도 남아 있었다. 일본인과 경쟁하듯 일단 바구니에 주워 담았다. 일단 야시카에이(A) 이안카메라에 눈이 갔다. 그러나 녹이 심한데다 초점조차 맞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걸러내니 바구니엔 단 한 대, ‘미놀타 오토코드’만 남았다. 1950년대 출시된 제품인데 만듦새도 정교했다. 옆면엔 심도조절, 다중노출 등 기능을 갖췄다. 앞쪽 렌즈엔 거리 조절, 조리개 크기와 셔터 속도 조절, 10초 셀프 타이머 기능도 구비했다. 상급 제품이다. 초점을 맞추는 메터 기능 등은 정상 작동했다. 그러나 문제도 많았다. 첫째, 셔터가 작동하지 않았다. 둘째, 셀프타이머가 잠겨 움직이지 않는다. ‘멋진 먹통’인 셈이다. 또 번뇌가 시작됐다. 그런데 카메라를 품은 가죽 케이스엔 둥근 통이 달려 있었고, 그 안엔 렌즈 후드, 노란색 컬러 필터 렌즈, 철제 렌즈 덮개 등 각종 액세서리가 담겨 있었다. 앞서 들른 중고점에서 액세서리를 개당 3천엔 이상에 판매하는 걸 봤기에 ‘결심’했다. 이 모든 걸 포함해 6천엔(약 5만4천원)이니, 설사 카메라를 고치지 못해도 장식용으로 둘 생각이었다.

귀국해 자가 수리를 위해 보름 이상 관련 자료를 찾고 제품 매뉴얼도 숙지했다. 세계 도처에서 나와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한 외국인 고수가 ‘셔터 잠김’으로 진단하고 분해 및 수리 방법을 올린 글을 찾았다. 세척용 라이터 오일, 세밀한 드라이버 등을 구입하고 여러 차례 도상 연습 뒤 분해했다. 셔터 구동부는 명품 태엽 손목시계처럼 복잡한 부품이 즐비했다. 단숨에 고칠 수 없어 개복한 상태로 진심을 다해 며칠 동안 모든 부품의 작동 원리를 익혔다. 그리고 부품 내부를 분해·조립하니 물려있던 셀프 타이머는 제자리로 돌아왔고, 셔터도 작동했다. 스르스르스륵 소리 내며 10초 뒤 셔터가 열렸다 닫히는 순간 쾌감이 몰려왔다.

카메라 뒤엔 노란색 글씨로 ‘동북전력’이라고 적혀있었다. 일본 동북부의 전력회사에서 사용하던 물품이 고장 나자 필름까지 그대로 장착한 채 정크숍까지 흘러왔을 텐데, 70년이 넘은 것에 내가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다. 중형필름은 고가이고, 인화엔 더 큰 비용이 드는 만큼 짠내수집가인 내가 당장 촬영과 인화까지 욕심내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배보다 배꼽이 커질 수 있다. 언젠가 필름을 구해 사진을 찍을 날을 기다리며 헌 필름을 다시 넣고, 찍고, 감는 연습을 계속한다. 셔터가 여닫히는 소리를 듣고, 여과 필터를 통해 드러난 사물을 바라보면서 마치 다른 눈으로 과거를 보는 듯한 감성에 빠져드는 것만으로도 일단 제값은 충분히 하고 있다.

글·사진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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