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병 참다 큰병 된다…의료 취약지 원정진료 ‘예삿일’ [지방의료]①
[기사 연재 순서]
① "잔병 참다 큰 병된다"…의료 취약지 원정진료 '예삿일'
② 일본, 원격진료는 찾아가고…약은 드론으로
③ 의료인재 모셔라!…일본 지자체 수십 년 고민
④ 지방의료 생존 전략…“AI·지역의사 관건”
■ "잔병 키워 큰병 된다"…산골마을의 험난한 통원 과정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물로리. 대표적인 산골마을입니다.
1973년 소양강댐이 들어서면서 마을 일부가 물에 잠겼습니다. 이 때문에 같은 행정구역인 춘천 시내로 곧바로 가는 길이 끊겼습니다. 배로 소양호를 건너야합니다. 아니면, 자동차로 인근 지역인 강원도 홍천을 거쳐 1시간 30분을 달려야합니다.
이 산골마을엔 20가구 남짓 삽니다. 대부분이 65살 이상 고령자들입니다. 79살 마경수 할아버지와 78살 박분옥 할머니 부부도 이 마을에 삽니다.
노부부의 아침은 누구보다 일찍 시작합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춘천 시내로 병원을 다니는데, 이날도 병원을 가는 날이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춘천시에서 교통취약지에 지원해주는 1,000원짜리 택시, 이른바 '희망택시'를 부르고 외출 채비를 합니다. 그런데 걱정이 태산입니다. 가뜩이나 길이 좋지 않은 데다 며칠 전 눈까지 오면서, 택시가 집 앞까지 잘 올지 마음이 쓰입니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길이 미끄러워 항상 걱정이 돼요. 택시도 왔다가 잘 가야 되고 나도 병원 갔다 잘 와야 되고 그러니까, 맨날 신경쓰는 거예요." -박분옥 씨(78·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꼬부랑 고갯길을 세 번 넘고 인근 지자체인 홍천을 거쳐, 1시간 30분 만에 춘천 시내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힘은 힘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쏟다보니 아파도 참기 일쑤입니다.
병원 접수를 하고도 1시간 이상 기다릴 때도 적지 않습니다. 병원 한두 군데 더 다니려고 하면 집에는 날이 저물 때가 돼서야 도착할 때도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 사는 가족들은 속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매번 병원을 모시고 다니지 못한다는 미안함 때문입니다. 이를 아는 노부부는 아파도 자식들에게 말을 하지 않습니다.
"금요일에 무릎을 다쳤는데, 교통편이 안 좋아서 월요일에 병원을 갔어요. 주말 내내 아파서 화장실도 제대로 못가고 집 안에서 엉금엉금 기어다녔죠. 자식들에게 말하면 걱정할까봐 말도 못해요." -마경수 씨(79·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 평창 임신부 "난임치료는 서울로, 출산은 충북 제천으로"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에 사는 34살 전유민 씨는 16개월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지만, 아이를 갖고 낳기까지는 쉽지 않았습니다.
임신부터 쉽지 않아 평창에서 서울로 난임치료를 받으러 다녔습니다. 전 씨는 서울의 난임치료 병원을 가기 위해 새벽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했습니다. 집에서 KTX 평창역까지 차를 타고 30~40분을 가서, 오전 6시 50분 첫차에 몸을 싣습니다. 서울역까지도 1시간 40분. 오전 9시쯤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도 대기가 없으면 오후 1시, 조금이라도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오후 3시는 돼야 평창 집으로 올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직장생활도 했던 터라 몸과 마음은 더 빨리 지쳤습니다.
"평창에 사는 임신부들은 다 겪는 과정이에요. 하지만 직장 다니면서 몸도 피곤하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피폐해지긴 했어요." -전유민 씨(34·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1년 만의 노력 끝에 아이를 갖고 나서도 원정 진료가 또 시작됐습니다. 평창에는 산부인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전 씨는 충북 제천에 있는 24시간 분만병원을 선택했습니다. 평창에서 자동차로 40~50분 걸리는 곳입니다. 홑몸이 아닌 무거운 몸으로 왔다갔다 하루 반나절이 기본. 소중한 아이를 건강하게 낳겠다는 일념으로 버텼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도 걱정의 연속이라고 전 씨는 말합니다. 보건소에 소아과가 있긴 하지만 평일에만 운영하다보니, 주말에는 1시간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강릉이나 원주로 가야 하는 겁니다.
"하필이면 아이가 금요일 저녁부터 아프기 시작해요. 주말에 진료 보는 병원이 강릉에 있어서, 오픈런 해 봤어요." -전유민 씨(34·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 지방 거점병원도 의료진 '엑소더스'
도시와 농촌간 의료 불균형이 심각합니다. 수도권과 지방 차이만 큰 게 아닙니다. 강원도만 봐도, 전체 의사 70%가 춘천, 원주, 강릉 등 나름 큰 도시에 집중돼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들 도시마저도 떠나는 의료진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강원도 유일의 거점 국립대병원인 강원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 11명 가운데 4명이 한꺼번에 그만두겠다고 나섰습니다. 다음 달(2월)이면 사직 의사를 밝힌 의사들의 임용 계약이 끝납니다. 필수 의료분야인 응급의학과와 심장내과 의사도 부족해 채용공가가 나간 상태입니다.
이밖에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의료진은 최근 3년 사이 600여 명, 한림대춘천성심병원은 80여 명이 그만 뒀습니다.
전문의 자격을 따기 전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비인기 분야의 전공의 미달 사태는 이미
오래된 얘기입니다.
■ 군 단위 의사 모시기 '전쟁'…"억을 줘도 안 와요"
군 단위 지역의 의사 부족은 더 심각합니다. 의사 구하기조차 하늘의 별따기라는 말이 나옵니다.
강원도 군 단위 지역의 인구 천 명당 의사 수가 채 1명도 안 됩니다.
고성군은 0.4명으로, 강원도 내 18개 시군 가운데 가장 적습니다. 춘천의 6분의 1에 불과합니다.
연봉을 어지간히 줘선 아예 의사를 구할 수도 없습니다.
민간 병원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의료 최후의 보루인 의료원과 보건소에서도 장기간 공석은 예삿일이 돼버렸습니다.
속초의료원은 지난해 응급의학과 의사를 못 구해 고초를 겪었습니다. 응급실을 일부 요일에만 축소 운영하는 사태까지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연봉 4억 원을 주고서야 겨우 의사를 모셔왔습니다.
올해 개원을 앞둔 충북 단양군 보건의료원의 경우도 응급실 의사를 구하기 위해 연봉을 4억 2천만 원까지 올렸습니다. 여기에 아파트와 별장 등 파격 조건도 제시했습니다.
박현정 강원특별자치도 공공의료과장은 "의사 모집 공고는 연중 상시로 내고 있고, 연봉액 상한액도 매년 올라가는 실정"이지만, "억대 연봉액으로도 지금 의료진을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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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초 기자 (choch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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