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장하리』 추미애 전 장관 “검찰 개혁의 격랑과, 좌절의 진실을 전달하고 싶었다”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김용출 2024. 1. 27.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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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때 니가 그렇게 외쳤는데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민주당 역시 별로 힘이 돼주지 못한 것 같더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3위에 그치며 무직자가 된 그가 엄마가 있는 친정을 찾았다. 일 년 전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던 엄마가 이때 불쑥 묻는 게 아닌가. 직관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넌 할 수 있어”라며 늘 그를 믿어준 당신이었다.

“엄마, 왜 그런 것 신경 쓰세요?”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법무장관에서 물러난 지 일 년이 지난 2022년 구정, 엄마는 일 년 전 이상한 꿈을 꾸었다며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법무장관에 취임했다가 해임된 한 해 전 1월 그날, 엄마는 뒤숭숭한 꿈을 꾸었다.

…시커먼 사내들이 누군가를 멍석 위에 뉘어 놓고 둘둘 말았다. 이들은 이어서 멍석을 들고 휙 내다 던지곤 도망을 가버렸다. 사람인 것 같은데, 도대체 누구일까. 엄마는 궁금해서 다가가서 멍석을 펼쳐보았다. 상처투성이의 사람이 엎어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딸이었다고.

“야야, 니 꿈을 꾸고 생각해봤다. 결국에는 니를 아무도 안 돕고 니한테 다 떠넘기고 니를 쫓아내고 했던 거제! 그 꿈이 맞는 기라, 그기 맞제?”

엄마처럼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길고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그때마다 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자주 만나 뵙지도 못하는데다가 쌓아놓았다가 한꺼번에 모두 이야기한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아무 조건 없이 딸을 지지하는 엄마처럼, 진영 논리에 갇히지 않은 사람들 역시 그럴 텐데….

마음에 맺혀 있던 건 엄마만이 아니었다. 고 김홍영 검사의 가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임관 2년차였던 김 검사는 상사의 과도한 폭언과 업무 스트레스로 2016년 유서를 남기고 서른셋의 나이로 스스로 세상을 떠났고, 유족은 2019년 11월 국가배상을 요구하며 국가를 상대로 힘겹게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다 잘 풀어낼 겁니다. 김 검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기억하겠습니다.”

장관 재직 시절인 2020년 10월,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김 검사의 부모와 함께 김 검사가 생전에 근무했던 서울남부지검을 찾아가 그들을 위로했다. 하지만 삶도, 재판도 그의 마음대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가 주도한 검찰 개혁은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과의 갈등 속에 표류했고, 김 검사 유가족의 소송 역시 공권력의 부당한 행위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법적 자료를 통해서 증명해야 했다. 다행히 소송은 2021년 6월 1심에서 유족에게 13억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조정됐지만.

누가, 무엇이 김 검사의 날개를 꺾었을까. 사회는 왜 그들의 아들 죽음을 외면하는 것일까. 공권력이 잘못해놓고 왜 인정하지 않고 시정해 주지 않을까. 왜 유가족이 남아 있지도 않은 증거를 모아서 피해를 밝혀내야 할까. 그들에게 김 검사는 열심히 살아간 아들, 반듯한 아들이었을 텐데….

서울에서 홀로 자취를 했던 김 검사는 직장에서 겪은 일을 모두 가족에게 얘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치 자신이 엄마에게 그랬듯. 사회는 김 검사의 죽음에 침묵했다. 길들여진 침묵, 불의에 대한 제3자적 방조. 그 침묵이 무서웠고, 끔찍했다.

어느 순간 엄마와, 김 검사 가족의 어떤 마음이 어우러져 그에게 몰려왔다. 그래, 다 말하지 못한 진실을 이야기하자.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구나, 하고 엄마도 이해하고 김 검사 유족도 이해할 수 있도록. 아니 우리 시대 고통을 느낀 수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늘어놓겠지, 하는 진영 논리로 보는 편견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객관적인 사실과 팩트로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단편적인 사건을 넘어서 전체와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이 필요했어요. 이를 위해선 아무래도 소설 형식이 필요했습니다. 허구가 아닌 진실을 담는 소설, 소설적 형식을 빌리더라도 진실을 담는….”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작가로 변신해 자신이 주도했던 검찰 개혁과 그 좌절을 자신의 관점에서 풀어쓴 ‘소설’ 『장하리』(해피스토리)를 지난해 11월 펴냈다. 작품은 추 전 장관 및 검찰개혁을 지지하는 팬덤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예스24의 지난해 12월 첫째 주 문학 분야에서 13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추 전 장관은 작품에서 자신이 주도한 검찰 개혁의 내용과,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과의 갈등, 문재인정부의 대응 등을 비판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풀어냈다. 이 과정에서 조국 사태, 채널에이 사건, 고발사주 의혹 사건, 윤 총장 징계 공방 등 대한민국을 뒤흔든 검찰 관련 사건들을 에피소드로 등장시켰다. 현실은 부조리하지만, 그럼에도 소설은 마지막 희망을 버리진 않는다.

“‘개혁은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개혁 저항이 관용과 통합으로 포장되더라도 꿰뚫어 보고 넘어가는 용기를 심자, 무너진 본질을 회복하는 개혁의 주춧돌을 다시 만들자.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목적 없는 통합이 아니라 사회를 제대로 바꾸려는 강력한 의지의 연대여야 한다.’ 장하리의 내면에서 강한 반동의 에너지가 힘차게 올라왔다. 한여름 내내 햇볕을 받고 잘 자란 로즈마리가 한층 높아진 푸른 가을 하늘을 이고 바람에 하늘거리며 향기를 발산하고 있었다.”(351쪽)

작품은 각종 신문 기사나 판결문, 인터뷰 등을 이용해 실제 사건이나 에피소드를 구체적으로 다루면서도 등장인물들은 모두 허구로 내세웠다. 출판사 해피스토리는 보도자료에서 “완성하려던 검찰 개혁의 이야기가 불씨를 다시 살려내고 모아서 시대의 어둠을 비로소 환하게 밝히며 그토록 바라던 민주주의의 미래가 통쾌하게 열리며 완성되는 소설”이라고 적었다.

추 전 장관은 왜 자신이 추진한 검찰 개혁과 그 좌절을 담은 이야기를 소설로 발표해야만 했을까. 그가 그려낸 검찰 개혁의 좌절은 어떤 의미였을까. 추 전 장관을 지난 18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작품을 쓰는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힘겹게 글을 쓰고 있는데, 2022년 10월 이태원에서 많은 시민들이 압사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엄청난 고통 앞에서 충격을 받아 글을 더 쓸 힘이 없었다. 제가 겪었던 것을 얘기한다고 한들, 상처 위에 더 큰 상처가 가해져 잊혀버릴 것 같았다. 겨울 내내 글을 잊고 있었다. 이때 딸이 당근마켓에서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 세트를 사서 선물해 줬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문학적 고발이었다. 내용은 너무 고통스러워 가슴 깊이 폐부를 찌르는 통증을 겪지 않고서는 한 장도 넘길 수 없었다. 조 작가가 존경스러웠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서 등장인물만 허구로⋯. 그래, 내가 하고 있는 게 옳아. 조 작가의 글을 인용해 윤 대통령의 지난해 3·1절 기념사를 작심 비판했는데, 조 작가가 『아리랑』 한 질을 사인을 해 보내주더라. 힘을 많이 얻었다. 다시 원고로 되돌아와 써내려갈 수 있었다.”

―작품에선 검찰 개혁의 좌절을 넘어 ‘검찰 쿠데타’로 표현했는데, 당시 과정을 조금 복기해달라.

“몇 개의 변곡점이 있었다. 우선 조국 장관 수사를 들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 장관을 법무장관으로 지명을 하니까 윤 총장은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거세게 항의했다고 한다. 임명하면 안 된다, 그러면 내가 사표를 내겠다고. 윤 총장은 문 대통령이 조 장관을 임명하니까 의심만 가지고 수사를 시작해 대통령 인사권에 개입을 한 셈이다. 윤 총장은 조국 사태를 통해서 민심과 문 정권과의 거리를 극대화시키고 정국 주도권을 가져온 것 같다. 조 전 장관은 공정과 상식을 무너뜨린 대표적 인사가 됐고, 자신들은 대통령과 맞서 싸우면서 공정과 법치의 화신인 것처럼 포장해 갔다. 다음에는 채널에이 사건, 울산 선거개입 수사, 고발 사주 사건 등 총선을 겨냥한 일련의 사건이 있었다. 세 번째는 제가 본인과 부인, 장모 비리에 대해서 수사 지휘를 하고 감찰과 징계를 청구하고 윤 총장이 강하게 반발한 시기였다. 마지막은 제가 장관 해임을 통보 받고 물러날 준비하고 있던 2021년 1월 18일 신년회견에서 문 대통령이 윤 총장에 대해 정치를 염두에 두고 검찰총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 정부의 검찰총장이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사이에 검찰개혁을 둘러싸고 관점이나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의 징계는 검찰총장으로서 용납이 안 되는 감찰을 방해하고 수사를 방해한 것, 판사 사찰을 했다는 것 등이 핵심 내용이었는데, 대통령은 윤 검찰총장에 면죄부를 주고 재신임장을 준 것이다. 마치 12·12처럼 검찰 쿠데타가 완성돼버린 것이다.”

―책에선 문재인정부나 당시 여당 대응에 대해서도 비판적인데.

“(문재인정부와 여당은) 검찰의 위험성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검찰과 민주세력이 협업이 가능하겠다고 착시를 했던 것 같다. 윤 총장 측에선 조국 수사 당시 대통령님에 대한 충성심은 변함없다, 이거 다 대통령님을 위해서 하는 거다, 라고 했다. 저는 당시 속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믿었다고 생각한다.”

―혹시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거나 새로운 사실이 담겨 있는지.

“많이 있지만, 지금 자세히 이야기하긴 곤란하다.”

따스한 온기를 간직한 손, 정감 있는 목소리, 잔잔한 미소가 예쁜 얼굴…. 중학생 추미애에게 어머니는 늘 아련하고 그리운 존재였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 그를 키운 것은 어머니가 아닌 외할머니였기 때문이다.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머니가 먼저 마음속으로 내쳐 달려왔다.

중학교 1학년 시절, 그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서 수필을 썼다. 그의 수필은 당당히 교내 대상을 차지했고, 친구와 동료들 사이에서 제법 회자가 됐다. 아, 글을 쓰면 남들이 참 좋아하는구나.

이때 중학생 추미애의 마음 한켠에서는 알 수 없는 꿈이 하나 구름으로 피어올랐다. 그렇다면, 글을 쓰는 사람이 돼볼까…. 그는 어릴 때부터 책읽기와 글쓰기가 취미인 문학소녀였다. 맞아, 좋아하던 성악가 선생님도 어릴 적 꿈이 기자라고 했잖아. 그렇게 예쁘고 잘 생기고 노래도 잘 하시는 선생님의 꿈이 기자였다니. 나도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고 세상을 바르게 펴고 싶으니까, 기자가 잘 어울릴지도 몰라. 그래, 기자가 되어볼까.

인연은 쉼 없이 이어지고 연쇄적으로 세상의 길을 연다. 세상을 바르게 펴고 싶다는 그의 의지는 중학생 때에는 기자의 꿈으로 이끌었다가, 고등학생 때에는 법관의 꿈으로 이끌었다.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10여 년 간 판사로 이끌었고, 마침내 정치로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1958년 경상북도 달성에서 세탁소집의 2남2녀 가운데 차녀로 태어난 추미애는 정치권에 뛰어든 뒤 2008년 위기의 한국사회를 진단하고 구조적 문제와 그 나아갈 길과 대안을 탐색한 첫 단행본 『한국의 내일을 말한다』를 펴내며 저술의 세계로 들어왔다. 이후 『중산층 빅뱅』(2011년), 『물러서지 않는 진심』(2013년), 『추미애의 깃발』(2021년) 등을 펴냈고, 이번에 소설 『장하리』를 발표했다.

―이전에 쓴 책들은 주로 어떤 내용이었는지.

“대체로 외교안보정책이나 통일정책, 중산층을 육성하기 위한 경제 제안서 등을 썼던 것 같다. 주로 정책적 내용을 담았는데, 이것 역시 쓰기가 간단치 않았다. 예를 들면, 『중산층 빅뱅』은 제가 국회 환노위원장을 할 때 썼는데, 몇 달 동안 거의 새벽마다 집에서 글을 붙잡고 썼다. 운동을 거의 하지 못해 나중에는 다리와 관절이 붓더라.”

―글 쓰는 사람으로서 10년 후의 모습은 어떨까.

“아마 한 두 권 정도 더 책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과 글이 동시에 나가기 때문에 아이디어나 구상이 글과 책으로 표현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생각이 깊어지고 내면이 풍성해지는 것 같다. 회고도 있고, 성찰도 있고, 비전도 있고. 책을 쓰는 순간은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굉장히 뿌듯해진다. 나를 치유하는 힘을 가졌구나, 그래 내가 옳았어,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도 나는 또 박수칠 거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도 꾸준히 쓰고 있는데, 어느 정도 볼륨이 생기면 또 책으로 탄생할 것이다.(일기 같은 것을 쓰는가) 매일매일은 아니고 한 번에 모아서 쓰는 편이다.”

―하루 일상은 어떤지.

“글을 쓸 때와 아닐 때가 매우 다르다. 글을 쓸 때는 새벽 3시쯤 자고 오전 8시쯤 일어나고, 글에서 해방됐을 때에는 밤 12시쯤 자고 오전 7시 이전에 일어난다. 낮에는 요즘 같으면 밖에서 여러 일정을 소화한다. 생각이 밀려들면 차 속에서 핸드폰에 상상이나 발상, 단상 같은 것 적어놓는다.(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산책이나 요가를 한다.”

정치인 추미애는 1995년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정계 입문한 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당선된 이래 16, 18, 19, 20대 국회의원이 됐다. 1998년 초선의원 시절에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군법회의 수형인 3000여 명에 대한 기록을 최초로 발굴했고,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에 앞장섰다.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정부 시절 법무장관을 역임했다.

―정치인으로서 꿈이나 포부는 어떤지.

“제가 첫 책 『한국의 내일을 말하다』를 쓰기 전 미국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의 전략적인 마인드를 보고 감탄을 한 적이 있다. 미국을 이끄는 힘은 브레진스키나 헨리 키신저 같은 전략가들이 앞장서고 그들의 구상과 전략을 실제화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뒷받침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대국은 아니지만 국민의 개성이 넘치고 생각도 웅장하다. 안중근, 김구, 김대중 같은 분들은 세계와 함께 평화를 구상하기도 했다. 다만, 이것을 실제화하려는 모습이나 체계가 없어서 늘 안타까웠다. 정치는 이런 구상이나 발상을 실현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개인의 힘이나 노력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운과 세력도 뒷받침이 돼야 한다. 하지만 저술의 경우 시간을 들여 노력만 하면 해볼 수 있다. 앞으로 정치와 글이 함께 가도록 해보겠다. 키신저가 그런 삶을 살았다. 우리의 생각과 미래를 위한 구상을 끊임없이 하겠다. 글로서 세계 속에서 미국이 어떻게 안보와 전략을 구사할 것인가를 설파한 키신저처럼.”

김용출 선임기자, 사진=이제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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