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딸이 1형 당뇨병 …"학원 등록도 거부당해" 울먹인 부모
[편집자주] '당뇨병'이란 이름 뒤에서 두 번 우는 이들이 있다. 국내 4만4552명(2022년 기준)의 '1형 당뇨병' 환자들이다. 진단과 함께 하루 4번 이상 인슐린 주사를 꼬박 챙겨 맞고 손가락을 하루에도 여러 번 찔러야 살 수 있다. 먹는 약도, 완치법도 없어 이들의 온몸엔 바늘자국 투성이다.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건 주변의 차가운 시선과 경제적 부담이다. 바늘 뒤로 눈물 훔치는 1형 당뇨병 환자와 가족들, 그리고 이들을 괴롭히는 우리 사회의 병폐를 집중 조명한다.
흔한 듯 흔하지 않은 병명이 있다. 바로 '1형 당뇨병'이다. 누구나 '당뇨병'은 익숙하지만 '1형 당뇨병'은 잘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병명부터 생소하지만, 이 병을 진단받은 환자는 국내 5만 명(2022년 기준 4만4552명)에 달한다. △면역체계가 췌장의 베타세포를 파괴해 췌장에서 인슐린을 전혀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점 △먹는 약이 없어 매일, 평생 주사로만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2형 당뇨병과 다르다.
1형 당뇨병으로 처음 진단받는 날 어리둥절한 건 환자와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둘째 딸 박윤희(가명·만 8세) 양을 둔 아빠 박근용(세종시췌도부전증학부모협의회 회장) 씨도 그랬다. 지난해 7월 윤희의 학교에서 "소변 검사상 이상소견이 있으니 병원에 빨리 가보라"는 연락을 받은 박 씨는 다음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주저앉아야 했다. 건강했던 윤희가 1형 당뇨병이라는 것이었다.
그다음 날부터 입원 병동에 누워 인슐린 주사를 맞고 있는 딸을 본 박 씨에겐 그러나, 슬퍼할 틈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의료진으로부터 주사 놓는 법, 저혈당·고혈당 증상, 저혈당 쇼크에 빠졌을 때 대처법 등 교육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박 씨는 "1형 당뇨병이 중증 난치질환도, 희귀 난치질환으로도 인정되지 않아 상급종합병원에서 입원할 수 있는 기간은 고작 5~7일에 불과했다"며 "진단받자마자 슬퍼할 틈도 없이 교육부터 받아야 했는데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당시의 심경을 토로했다. 진단 첫 달, 박 씨는 몸무게가 15㎏이나 빠질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윤희처럼 1형 당뇨병으로 진단받은 19세 미만 소아·청소년은 전체의 8.8%인 3941명(2022년 기준). 가족 중 성장기 자녀 1명이 1형 당뇨병으로 진단받으면 대부분은 부모 중 1명의 '온전한' 희생이 뒤따른다. 아이가 하루 중 순식간에 저혈당 또는 고혈당에 빠질 수 있어 실시간 철저히 관리해야 해서다. 혈당이 24시간 중 언제 급변할지 몰라 부모는 말 그대로 24시간 대기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맞벌이 부부라면 둘 중 1명은 퇴사·휴직 외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윤희 아빠 박 씨도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를 돌보고 있다.
윤희는 인슐린펌프를 차고도 매일 4번 이상은 손끝을 바늘로 찔러 채혈한 후 혈당을 체크하고, 혈당이 갑자기 떨어질 것을 대비해 사탕·음료를 챙긴다. 얼마 전 겨울방학을 맞이한 윤희는 태권도를 배우고 싶지만 또 한 번 좌절의 아픔을 겪었다. 태권도장에 '아이가 1형 당뇨병'이란 사실을 알리자 등록을 거부당했던 것. 박 씨는 "만일의 사태가 벌어질 경우를 태권도장 측이 부담스러워했을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결국 윤희는 이번 방학 내내 집에서만 지내고 있다. 박 씨는 '내가 뭘 잘못해서 엄마·아빠를 힘들게 하는 걸까'란 속내가 적힌 윤희의 일기장을 보며 통곡하기도 했다.
1형 당뇨병 환자들에 따르면 윤희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아픈 애는 만나는 게 아냐"라며 1형 당뇨병인 친구를 못 만나게 부모가 만남을 차단하는 경우도 적잖다고. 소아뿐 아니라 성인 환자에게도 1형 당뇨병은 오점이자 주홍글씨다. 결혼 전 1형 당뇨병 사실을 알리고 파혼당하거나, 1형 당뇨병으로 입대가 면제된 남성이 취업을 위한 면접전형 때 군 면제 사유를 언급했다가 탈락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어릴 때 또래처럼 콜라를 즐겨 마셔도 아무 문제 없었고, 임신성 당뇨도 없던 그에겐 뜻밖의 일이었다. 이 씨는 "1형 당뇨병에 대해 처음 들었지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면서도 "사회적으로 1형 당뇨병은 '소아 당뇨병'이란 인식이 깔린 데다, 정부 지원도 소아에 집중해 성인 환자로서 경제적 부담감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이 씨가 매달 부담하는 비용은 27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인슐린펌프 기기값만 350만원(본인부담금 기준)을 냈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주입하는 인슐린양이 달라 주머니 사정이 늘 아슬아슬하다. 인슐린펌프를 차고 있어도 어느 순간 저혈당에 빠질 때가 있어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으로 산다. 이 씨는 "어린아이를 유아차에 태우고 편의점에 가던 중 갑자기 극저혈당이 왔고, 갖고 있던 사탕을 다 먹어도 회복되지 않아 그 자리에 주저앉은 적이 있다"며 "아이가 혼자 편의점에 걸어 들어가려 해도 내가 움직일 수 없어 아이와의 거리가 잠깐 떨어졌다"고 위태로운 순간을 회고했다.
이 씨처럼 임신·육아를 담당하는 여성에게 1형 당뇨병이 발병하면 엄마는 물론 아기에게도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1형 당뇨병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다가 갑자기 찾아온 저혈당 쇼크로 아기를 떨어뜨리거나, 순간 정신을 잃어 아이가 방치됐다가 아동학대로 오인당하는 사례도 있다. 주변에서 1형 당뇨병을 2형 당뇨병과 혼동해 "운동 안 하고 게을러서 그래", "살 좀 빼", "단것 많이 먹어서 그래"란 조롱 섞인 비난이 쏟아진다. 심지어 시댁으로부터 이혼을 종용당하거나, 푸대접받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이런 상황에서도 환자들은 긍정 회로를 가동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1형 당뇨병 커뮤니티에서 같은 환자들의 격려를 받으며 이겨내는 사람도 적잖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과 네이버 카페 등엔 '1형 당뇨병' 환자만의 커뮤니티가 여럿 개설돼 있다. 이 씨는 '1형 당뇨&임신육아방'이라는 오픈채팅방의 부방장을 맡으며 자신처럼 임신·출산을 전후해 1형 당뇨병이 발병한 경우 증상·대처법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특정 지역에 갔다가 저혈당 쇼크가 왔고, 급하게 인슐린 관련 부품이 필요한데 구할 수 없는 경우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도움받는 일도 많다고 한다. 이 씨는 "1형 당뇨병에 진단되면 하늘이 까매질 정도로 막막할 수밖에 없다"며 "같은 고민을 가진 환자들의 커뮤니티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면 이겨내는 데 힘을 받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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