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프리즘] 유머는 습관이다
“우리 집 식구들은 도대체 말이 없어요. 집에 오면 다들 피곤한지 식탁에 앉아서도 화난 것처럼 밥만 먹고는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려요.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다른 집들도 다 그렇겠죠?” 유방암 치료를 시작하면서 우울증 클리닉에 다니던 여성이 혼잣말처럼 말을 건넸다.
우리들 모두는 사회 속에서 감정 노동을 하고 산다. 학생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즐기지 않는 연예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척 연기하느라 고생하고, 직장인은 맘에 썩 내키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동료들에게 밝은 얼굴을 보이느라 수고한다.
종일 에너지를 낭비한 뇌는 집에 들어오면서 그만 일부 기능을 꺼버리곤 한다. 친구들과 재미있었냐는 말에 “됐다”며 방문을 닫고 들어가버리는 딸도 있고, 주변으로 향했던 주파수를 꺼버린 아빠는 내일 시댁 제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인 말을 듣지 못한다.
반면 어떤 집에서는 귀가하는 가족을 반기고 포옹하면서 저녁 일과를 시작한다. 각자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고, 눈을 맞추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그날 들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총동원하여 마치 개그 배틀하듯이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오늘 나에게 성질을 부리거나 기분을 상하게 했던 ‘그 인간’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만 한바탕 웃으면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것이다.
이런 대화는 마치 유머를 주요 기법으로 삼은 집단 상담 치료처럼 마음 건강에 이로운 영향을 준다. 하루 동안 겪은 마음 고생을 희석시키고 스트레스가 다음날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해준다.
문명 비평가 루이스 멈퍼드(Lewis Mumford)가 말한 대로 유머(Humor)는 매일 겪는 삶의 부조리에 상처 입지 않도록 ‘비틀어 보기와 엉뚱함’으로 나를 보호해 주는 갑옷이라 할 수 있다. 사회에서 살아가는 나를 보호해주는 심리적 대처법인 것이다.
농담하거나 웃을 때는 의욕 호르몬(도파민), 애착 호르몬(옥시토신), 진통 호르몬(엔돌핀)이 분비되고, 동시에 스트레스 호르몬(코티솔)이 낮아진다. 심지어 웃길 것을 예상하는 것만으로도 코티솔과 투쟁 호르몬(에피네프린)이 줄어들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침착해진다.
유머는 힘든 시기 우리의 회복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고통스러운 순간에 유머는 몸과 마음의 회복력을 높여줌으로써 좌절에서 빨리 극복하게 해준다. 화나고 우울할 때 혹은 불안함에 휩쓸려 공황이나 무기력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치료제인 것이다. 항암 치료를 받는 유방암 환자에게 유머 치료를 하면 환자의 피로도가 눈에 띄게 감소한다는 연구도 있다.
유머를 잘 사용하는 가정이나 직장에서는 사람들간의 유대감이 높다. 살짝 자신의 속내를 열어 보이면서 신뢰감이 증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머는 효율적인 리더십의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연구에서도 밝혀진 것처럼 효율적인 리더일수록 따뜻한 유머를 함께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업무 교육을 위해서는 다소 엄한 분위기를 필요할 수도 있지만 유머의 긍정적인 역할을 잊지 않는 게 좋겠다.
물론 유머 감각은 타고난 성격에 따라 다르다. 예민하고 감정적인 사람들이 유머에 잘 반응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은 유머에 반응을 쉽게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를 먹음에 따라 유머 감각이 증가할 수 있다. 타고난 성격에 따라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노력을 하면 잘 웃기고 잘 웃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유머는 배울 수 있다. 우리 뇌는 여러 번 반복하면 습관이라는 회로를 만들기 때문이다. 입을 약간 벌리고, 입 꼬리를 올리면서 제대로 웃는(뒤센(Duchenne) 웃음) 연습부터 시작해보자. 웃는 사람은 분노와 마음의 고통이 더 적고, 더 긍정적이고 인간관계 만족도도 높다. 유머 기술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우울증 점수나 스트레스 점수가 낮고 상황에 대한 통제감도 더 좋다.
누군가를 욕하고 비꼬는 것은 유머라고 할 수 없다. 주변을 욕하기보다는 현실과 이상의 차이 혹은 말과 행동 차이, 그 어딘가 있는 부조리함을 살짝 비틀어 웃음으로 날려보내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때 나 자신을 너무 비하하는 농담은 씁쓸함을 남겨줄 수 있으니 삼가는 게 좋겠다. 주변에서 고급진 농담을 구사하는 사람의 말을 즐기면서 공부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유머는 상대방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나에게 가장 먼저 권하는 웃음이기도 하다. 자신의 삶에 대한 농담과 위트인 것이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6년간 나라 뒤흔든 ‘사법농단’에 실체 없었다? 그 책임 누가 지나? [양승태 무죄]
- 짧아진 주기, 누구든 공격... '정치혐오' 일상화, 15세 테러범 낳았나
- 양규·이순신·이태신 홀릭...'핵개인주의' 청년 세대는 왜 '참군인'에 빠졌나
- 말로만 자성한 여야, 음모론·권력다툼 골몰하다 '정치테러' 부메랑 맞았다
- '화투 한 판 치자' 할머니들 불러내 흉기로 살해...50대 '징역 35년'
- "아들 걸고 정치 관심 없다" 백종원, 또 정계 러브콜?
- 손흥민 "선수 흔들지 말고 보호해달라" 호소한 이유는
- 김혜자·고두심 잇는 새 '국민엄마' 김미경, 오토바이 타는 반전 사생활
- '입시비리 혐의' 조민 최후진술... "사랑하는 나라에서 기여하며 살겠다"
- 오유진 "부모님 이혼 후 母가 생계 이끌어"...가정사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