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서 모르핀이"…인천공항 '마약 적발왕'의 24시[금준혁의 온에어]
"공무원이 언제부터 일했나" 비아냥에도…"내 일에 자부심"
[편집자주] 하루에도 수십만명이 오가는 공항, 하루하루가 생방송입니다. 주인공은 당연히 비행기와 승객입니다. 이 수많은 '설렘'들을 무사히 실어나르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항공사와 공항의 온갖 조연들이 움직입니다. 이들에게서 듣는 하늘 이야기, '온에어'입니다.
(인천공항=뉴스1) 금준혁 기자 = "어디서 오셨습니까."(박은화 주무관) "영국 런던에서 왔습니다."(여행자 A씨)
수상했다. 런던이 아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비행기가 오는 시간대였기 때문이다. 검사는 가벼운 질문 하나에서 시작됐다. 그의 가방에서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우표 마약' LSD가 다량으로 나왔다. 연성 마약이 합법화된 네덜란드에서 마약을 들여왔다는 사실을 숨기려다 되레 적발된 것이다.
◇엑스레이도 탐지견도 아니다…공항에서 '마약' 찾아내는 사람들
박은화 인천공항본부세관 주무관은 마약과의 전쟁의 최전선에 있는 '마약 적발왕'이다. 공항세관 내에서도 마약 적발건수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해 붙은 별명이다.
박 주무관은 여행자가 해외에서 구입해 들여오는 각종 물품에 세금을 매기고 총기나 마약류 등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물품이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사전에 차단하는 여행자 통관업무를 맡고 있다.
위탁수하물은 비행기에서 내릴 때 반드시 엑스레이(X-ray) 검색기를 거친다. 여행자가 몸이나 가방에 숨겨 온 물품은 다르다. 사전 입수 정보를 바탕으로 타깃을 지정해 검사를 할 수도 있지만 박 주무관이 검사하는 대상은 주로 사전 정보 없이 현장에서 적발해야 하는 것들이다.
세관 신고서를 제출하기 위해 통과하는 입국장 출입문 앞 검사대에서 무심하게 여행객을 쳐다보는 공무원들을 볼 수 있는데 사실은 동태 관찰이 24시간 이뤄진다고 한다. 흔히 마약탐지견의 탐지활동을 떠올리곤 하지만 실제로는 탐지견 못지않은 검사관의 '감'이 중요한 셈이다.
◇"논리 안 맞는 행동과 답변 잡아낸다"…마약 적발왕의 노하우
적발왕이라고 하니 베테랑 수사관 출신이 아닐까 싶지만 박 주무관은 7년 전만 해도 다국적 화학회사를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통상학을 전공하고 통상 관련 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특별히 마약과 연관된 일을 수행한 것도 아니었다.
박 주무관은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개장 검사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여행자에게 질문하며 우범 요소를 발굴한다"며 "처음에는 여행자에게 쉽게 말을 붙이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의심이 가면 꼬리를 물며 질문을 던진다"고 설명했다.
짧은 시간 미세한 행동과 논리적이지 않은 답변을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 박 주무관은 "얼핏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제 눈에는 마약 투약자의 특징이 얼굴에서 드러난다"며 "질문과 답변이 맞지 않는 부분을 포착해 클럽용 마약인 케타민을 투약했다는 진술을 확보했고 텀블러 안에 단백질 파우더와 섞어서 온 다량의 케타민과 MDMA(엑스터시)를 적발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반입이 금지된 약품류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박 주무관은 "중국 감기약 중에 말기 암 환자들이 통증을 줄이기 위해서 복용하는 마약류인 모르핀이 들어간 것이 있다"며 "쿠킹포일에 꽁꽁 싸서 넣어와도 엑스레이는 물론 검사관의 눈에도 모두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마약 투약자나 밀수자를 찾는 것이 감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동료들은 그가 지독한 노력파라고 증언한다. 박 주무관은 "수법이 나날이 발전하니 (검사관도) 따라가야 한다"며 "솔직히 외국에서 약을 가지고 오면 이름만 보고는 무슨 약인지 분별하기 어려워 계속 공부한다"고 말했다.
◇"세관 검사에 적극 협조해주길 간곡하게 부탁"
비협조적인 여행객은 일을 막 시작한 2018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어렵다. 박 주무관은 "최근에 '내가 왜 세관 검사를 받아야 하냐'며 입국장에서 사람들 많은 시간에 하의를 벗은 분이 있었다"며 "충격을 많이 받아서 사흘 동안 밥을 못 먹었다"고 말했다.
"공무원이 언제부터 그렇게 열심히 일했냐"는 비아냥과 고성을 들을 땐 화장실에 뛰어가 펑펑 울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박 주무관은 그래도 이 직업이 좋다고 말한다. 그의 휴대전화 케이스에는 제복을 입은 자신의 캐릭터가 새겨져 있다. 그는 "여행자가 비협조적이라고 해서, 항의한다고 해서 업무를 포기할 수는 없다"면서도 "10원 단위까지 성실하게 신고하는 여행자를 만날 때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마약을 적발할 땐 자부심도 느낀다"고 말했다.
박 주무관은 "여행자들이 피곤하고 힘든 부분을 알지만 마약 범죄들이 증가하고 있어 휴대품 검사를 많이 강화하고 있다"며 "세관 검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주길 간곡하게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rma1921k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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