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비 700만원 줘도…"신부 웨딩드레스 촬영 안돼요" 불편한 관행

정세진 기자 2024. 1. 27.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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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 투어를 가기 전 예비 신랑에게 그림을 맡기는 것이 걱정되는 예비 신부들은 미대생 지인들과 투어를 동행하기도 한다. 일부는 웨딩플래너와 동행하기도 하는데 투어 2~3곳을 동행하는데 보통 10~15만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사진=독자 제공


"신랑님, 그리지 말고 신부 모습을 눈에 담으세요."

지난 24일 수요일 오전, 서울 강남구 지하철 압구정 로데오역 인근의 한 웨딩 드레스숍 관계자가 예비신랑 A씨에게 집중해줄 것을 부탁했다. A씨는 연필을 쥐고 A4용지에 예비신부의 모습을 그리느라 예비신부의 모습을 '눈에 담을' 겨를이 없다.

웨딩드레스 제작·대여 업체에서 고유 디자인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사진 촬영을 금지한 탓이다. 이에 일부 예비부부는 미대생까지 고용해 드레스 착장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드레스 착장 사진 촬영을 금지한 것을 두고 예비부부들은 선택권의 제한을 받는다며 불합리한 관행이라 호소하지만 드레스 제작업체는 현실적으로 저작권을 보호받기 힘들다고 맞선다. 법조계에서는 드레스 디자인 등 지적 재산권 보호를 위한 합리적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드레스투어'에 나선 예비신부들은 보통 하루에 2~3곳의 웨딩샵을 돌며 최대 20벌의 드레스를 입어본다. 평생의 한번 뿐인 웨딩드레스 선택을 돕기위해 예비신랑은 최대한 꼼꼼하게 그림을 그리지만 웨딩드레스의 작은 차이까지 담아내기엔 역부족이다. 통상 결혼식을 위해 웨딩드레스 1벌 대여하는데 적게는 100여만원에서 많게는 700만원까지 지불해야 한다.

서울 강남의 압구정동과 청담동 등에 몰려 있는 웨딩드레스 대여·제공 업체는 5만~10만원의 비용을 받고 4~5벌의 착장 기회를 제공한다. 예비신부는 대기실과 커튼으로 구분된 공간에서 2~3명의 업체 직원 도움을 받아 착장을 진행한다. 예비신부가 혼자 있는 시간이 없는 탓에 몰래 사진을 찍을 수도 없다.

해외 유명 모델들의 웨딩드레스 착장 모습. 왼쪽부터 모니크 륄리에, 빅터앤롤프, 캐롤리나 헤레라, 마르케샤/사진=머니투데이


A씨는 업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미리 고른 드레스 사진 4장을 보여주고 예비 신부가 그 드레스를 순서대로 입어보게 했다. 하지만 A씨가 사진으로 봤던 드레스는 실물과 너무 달랐다. 해당 업체의 SNS엔 전문 모델로 보이는 금발의 백인 여성이 착장한 사진만 있었다. 그림보다 직접 보는 게 중요하다는 직원의 설명에도 A씨가 연필을 놓지 못한 이유다.

A씨가 그린 그림을 본 예비신부 B씨는 "정확한 색깔이 뭐였는지 확인할 수도 없고 애초에 보여줬던 드레스 사진들과 실물이 너무 달라 정확하게 구분하기도 어려웠다"며 "착용한 드레스들에 대한 느낌은 남아있지만 구체적인 부분을 그림만으로 비교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이어 "10벌 이상의 드레스를 입었다면 스케치만 보고 드레스 고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개월 전 드레스 투어를 다녀온 정모씨(26·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하루 2~3곳의 웨딩숍을 방문하면 10벌 이상의 드레스를 입기 때문에 두 번째 업체를 방문할 때는 처음 간 업체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라며 "어렴풋이 예뻤다는 느낌만 남아 구분하기가 힘들다. 신혼부부 입장에서는 불편한 관행"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드레스 스케치를 위해 플래너를 동행할 수 있었지만 2~3회에 약 10만~15만원 정도의 추가금을 지불해야 해 동행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부탁했다"고 말했다.

권모씨(34·여)도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직접 그려야된다는 후기를 보고 미대생 동생과 함께 갔다"며 "사진으로 찍어도 실제 입은 것과 차이가 있어 안 찍는게 낫다고는 하는데 이해가 안 됐다"고 했다.

지난 24일 A씨가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웨딩드레스 업체를 직접 방문해 동행한 취재진이 드레스 입은 모습을 직접 그림으로 그렸다. 웨딩업계 관행상 신부가 드레스 입은 모습은 일체 촬영이 불가능하다. 보통은 동행한 예비 신랑이 종이에 직접 그림을 그린다. 일부는 직접 미대생을 동행하거나 고용한 웨딩플래너와 함께 가기도 한다. 웨딩플래너 동행에는 비용이 추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사진=독자제공


작년 7월 미대생 지인과 함께 드레스 투어를 다녀온 정모씨(28·여)는 "일반 옷을 살 때는 보통 촬영을 하게 해주는데 드레스만 금지시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며 "미대생 지인을 데려갔는데도 그림으로 모든 드레스를 떠올리기는 불가능했다"고 했다.

웨딩드레스 제작·대여 업체들은 자신들의 저작권을 보호받기 위함이라고 호소한다. 대다수 업체가 드레스를 디자인하고 자체 제작하거나 또는 하청 업체를 통해 제작한다. 이 과정에서 디자인이 경쟁업체에 유출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이를 제지하기 쉽지 않다.

서울의 한 웨딩드레스 제작업체에서 일하는 김모씨(28)는 "경쟁업체에 디자인을 유출할 가능성이 커서 사진을 못찍 게 한다"며 "실제로 드레스투어만 하고 계약은 안하면서 디자인 유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매장 담당자다 다른데 우리는 계약을 하면 사진을 찍게 해준다"며 "그래도 우리 신부니까 서비스 차원에서 그렇게 해주는 거지만 어떤 곳은 계약을 해도 사진 못찍게 한다"고 했다.

범유경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드레스 디자인을 모방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원단이나 장식 등 전형적인 웨딩드레스 만의 문법을 벗어난 내 드레스만의 독창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며 "원칙적으로 저작권을 보호할 수는 있지만 그걸 실무적으로 법적조치를 해서 보호받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드레스 디자인이 지적 재산권"이라면서도 "지금 상황은 소비자의 정당한 선택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있다. 소비자인 신부가 제일 만족하게 하기 위해 디자인 유출에 대한 계약서를 받고 촬영을 하게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했다.

2016년 10월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노펠리체 컨벤션에서 열린 듀오웨드 제1회 브라이덜페어 웨딩박람회 웨딩드레스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워킹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사진=뉴스1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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