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정수기에도 온수, 열수…못 말리는 대만의 차 사랑 [ESC]

한겨레 2024. 1. 27.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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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걷다 보면 대만
날씨 더워도 노년층 온천 즐기고
차 사랑 유난…정수기엔 냉수 없어
100년 된 거리·문화공간 등 명소
사람들 친절해 혼자여행도 안전
대만의 100년 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거리 디화지에.

플레인 크루아상이라 믿고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는데 좋아하지 않는 초콜릿 크림이 잔뜩 들어있을 때. 그럴 때면 초콜릿 크림을 살살 걷어내고 ‘겉바속촉’의 크루아상을 즐기면 될 일.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평화롭게 흘러가던 날 중에 고생문이 숨어있던 날. 청명한 12월, 타이베이의 아침이었다. 베이터우의 온천 지구에 가려고 나선 길이었다. 수많은 온천이 있는 그 동네에서 내가 고른 곳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노천 온천. 현지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온천에, 수질도 좋다니까 믿고 찾아갔다. 분홍·초록·파랑의 요사스러운 차양이 흔들리는 모습에 잠시 주춤했지만, ‘뭐, 취향의 차이가 있으니까’ 무시하고 들어섰다. 지하철역에나 있는 금속 출입구와 지나치게 저렴한 입장료에 또 한 번 멈칫했지만, 일단 전진. 덥고, 지치고, 배도 고파서 두뇌 활동은 이미 멈춘 상태였다.

유서 깊은 온천에서 ‘최연소자’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앉아 주변을 살펴보니, 세상에 이럴 수가. 네 개의 탕을 가득 메운 사람 중에 50대인 내가 압도적으로 젊었다. 경로 우대를 하거나 노인 전용도 아닌데, 어르신들만 가득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모든 것이 유서 깊은 온천이었다. 일단 오시는 손님부터 연식이 오래된 분들이고, 추가로 돈을 내고 사용하는 샤워실의 온수 자판기도 진한 붉은 녹으로 세월을 증명하고 있었고,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탈수기도 평균 수명 이상으로 장수 중인 것 같았다. 나쁠 것 없지. 덕분에 사람이 많아도 조용하고 좋네. 게다가 내 평화로운 싱글 라이프를 위협하는 젊은 커플도 안 보이니 딱 좋아. 이런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앉아있는데, 탕에 들어간 지 5분 만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낮 기온이 31도까지 올라간 날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좀 더 버텨보겠다고 용을 쓰는데, 누가 봐도 명백한 30대 남성이 들어오는 게 아닌가. 탕을 둘러보다가 ‘동공 지진’을 일으킨 젊은이의 표정을 보며 혼자 웃었다. 잠시 후에 찾아보니 청년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결국 나는 이 온천의 가장 젊고, 유일한 외국인이 되어 대만 어르신들의 온천욕을 지켜봤다. 신기하게도 그렇게나 사람이 많은데 어디에서도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같은 중국어를 쓰는데 이렇게 다르다니 대륙과 섬의 기질 차이인 걸까. 몸이 조금 닿기만 해도 바로 공간을 만들어 주며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면 선진국 시민의 몸에 밴 매너였다. 탕에서 나와 쉴 때도 계속 몸을 움직이며 운동을 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대만인들의 차 사랑은 온천에서도 예외가 없는지 다들 탕 옆에 차통을 놓고 자주 차를 마셨다. 게다가 절반 이상이 보온병에 든 뜨거운 차. 뜨거운 차는커녕 온천수 온도조차 못 견딘 나는 결국 30분 만에 온천에서 탈출했다.

부연 연기를 뿜으며 원천이 솟아나는 ‘유황 계곡 유흥 지구’.

미련 없이 온천을 나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지열곡(디러구, 베이터우 온천의 진원지)을 보고 내려오는 길, 구글 지도에 ‘유황 계곡 유흥 지구’라는 곳이 보였다. 도보로 40분 거리. 30분 후에 오는 버스를 기다리느니 걸어가겠다고 출발했다. 길은 가도 가도 오르막. 배는 고프고, 목도 마르는데 식당은커녕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안 보였다. 온몸이 땀에 흥건히 젖어 유황 계곡에 들어섰다. 억새 너머로 갈색의 흙바닥이 보이고, 그 너머 뿌연 연기를 뿜으며 솟아나는 원천. 설마 이 풍경이 다일까. 위로는 오르막이 이어지고, 아래쪽으로는 노천탕에서 족욕을 즐기는 대만 사람들이 보였다. 이따가 발이라도 담그고 가야겠다 결심하고, 다시 오르막을 올랐다. 물병의 물은 떨어진 지 오래. 목이 타들어 갔다. 마침내 도로가 나오고 건너편에 방문객 센터 건물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 다급한 목소리와 절박한 얼굴로 물을 외쳤다. 텃밭에 팽개쳐진 늦여름 토마토처럼 발갛게 익은 나를 직원이 정수기 앞으로 데려갔다. 이런 정수기는 처음이었다. 정수기에 냉수가 없다니! 세 개의 칸에 온수, 온수, 열수라고 적혀 있을 뿐. 아, 정말 타이완 사람들! 아무리 온수가 건강에 좋다지만 이런 날씨엔 냉수 좀 마시고 속 차리게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어쨌든 온수를 보온병 가득 담아 마시며 갈증부터 해갈했다. 불친절한 정수기 옆에서 기다리던 친절한 직원이 내게 물었다. “또 필요한 건 없으세요?” “아, 내려가는 버스는 어디서 타요?” 직원 둘이 검색을 하고,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6분 후에 오니까 어서 나가잔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싶은데….” “이리로 오세요.”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리던 두 분이 내가 나오자마자 외친다. “뛰어요!” 달리는 그들을 따라 나도 뛰었다. “서둘러요. 정거장이 저 아래쪽에 있어요. 이 버스 놓치면 30분 기다려야 하거든요.” 숨이 넘어가도록 달려 무사히 버스에 올라타서 밖에서 헉헉거리는 두 분에게 손을 흔들었다. 버스가 출발하는 순간, 무언가를 놓고 온 기분이 들었다. 아, 족욕! 내려가서 족욕을 하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밀려들었지만, 정거장까지 함께 뛰어준 두 사람의 다정함을 떠올리니 또 ‘족욕쯤이야…’ 싶어졌다. 돌아다니느라 하루 종일 밥도 못 먹은 채로 저녁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는데 에스(S)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늘 저녁 약속은 취소라고. 그날은 크루아상 안의 초콜릿 크림이 좀 많이 든 날이었다.

“대만은 중국과 달라요”

에스는 지난해 9월 대만 친구 피닉스와 함께 우리 집에 사흘간 머물렀던 한국인 여성. 12월쯤에 대만에 갈지도 모르겠다고 했는데, 잊지 않고 연락이 왔다. 대만에 오면 안내를 하고 싶다고. 타이베이에 도착한 날 밤, 호텔 방 앞에 그녀가 놓고 간 쇼핑백이 있었다. 따뜻한 콩국과 달걀 전, 팥빵에 감기약까지. 콩국 한 사발을 다 마시고 따스해진 몸과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이틀 후 그녀가 차 마시는 공간으로 마련해놓은 집으로 숙소를 옮겨 타이베이를 더 편하게 즐기던 중이었다. 우람한 반얀트리가 성황당처럼 골목을 지키고, 식민지 시대의 옛 건물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타이베이는 매력적인 도시였다. 양조장을 개조한 화산 1914나 담배공장을 개조한 송산 문화창의공원 같이 근사한 복합문화공간이 많았고, 디화지에처럼 100년 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거리가 살아있었다.

타이베이에 있는 양조장을 개조한 ‘화산 1914’.

타이베이 시민들은 여유가 있고 매너가 좋았다. 어디를 가나 담백한 친절과 적절한 배려가 따라왔다. 혼자 돌아다니기에 편안하고 안전했다. 느긋하게 타이베이의 골목을 산책하다가 에스를 만나 점심이나 저녁을 같이 먹고는 했다. 나보다 꼭 10살이 어린 에스는 독특했다. 그녀가 베푸는 호의가 너무 커서 물었다. “한 번 만난 사람에게 왜 이렇게 잘해줘요? 누구에게나 이렇게 대해요?”

“물론 누구에게나 이러는 건 아니죠” 이런 대답은 없었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하려고 애쓰는 편이에요.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니까 후회가 남지 않도록요.” 그 말대로 에스는 타이베이에 머무는 내게 최선을 다해 좋은 것을 보여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려 애를 썼다.

‘이란’에서 3대째 차 사업을 해온 임 선생님(왼쪽에서 넷째)과 그의 집에서 있었던 차 모임.

며칠 후에는 그녀가 준비한 ‘묻지 마 여행’에 따라나섰다. “차 하시는 분을 아는데 좋은 차도 마시고, 온천욕도 할 겸 ‘이란’에 같이 가요.” 동행자는 에스의 대만 친구인 피닉스와 영재 스님. ‘이란’은 너른 평야가 펼쳐진 곡창 지대로 타이베이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였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3대째 차 사업을 해온 임 선생님 댁. 내가 보이차보다 우롱차를 좋아한다고 에스가 이야기를 해서 두 가지 우롱차로 시작해 40년 된 보이차로 이어갔다. 임 선생님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보이차에 생강이나 말린 과일 같은 걸 넣고 끓여서 새로운 맛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자사호의 흙 성분에 따라 차 맛이 달라진다는 점도 배웠다. 유리 다구에 내린 차보다 자사호에 내린 차 맛이 훨씬 부드러워서 놀라기도 했다. 차를 우려내는 다구인 자사호에 대한 중국인들의 사랑과 집착도 엿볼 수 있었다. 찻물을 부어가며 색을 입히고 닦고 말리고 할수록 자사호의 색이 붉어지는데, 이 과정 자체를 즐긴다. 그래서 좋은 자사호는 대를 물려가며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끝없이 관리한다나. 지금 중국은 토양이 너무 많이 오염되어서 대륙에서는 좋은 자사호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중국에는 가짜 보이차가 많다던데 대만은 어떠냐고 여쭈었더니, 임 선생님이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답하셨다. “대만은 그런 면에서 중국과 달라요. 어려서부터 ‘정직’을 사업의 기본 윤리로 배우기 때문에 차를 속이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두 시간쯤 차를 마시고 다 같이 저녁을 먹기 위해 일어설 때, 임 선생님이 우리 모두에게 보이차를 한 봉씩 나눠주셨다. 마시기 편하도록 티백에 담은 보이차였다. 저녁은 ‘이란’의 유명한 향토 음식인 웡야오지. 장작 가마에 오래 구운 닭구이인데 껍질이 바삭바삭, 고기는 쫄깃쫄깃했다. 여러 가지 음식을 시켜 원탁 식탁의 판을 돌려가며 먹는 즐거움이 컸다. 그날 머문 호텔에는 테라스에 노천탕이 있었다.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혼자 온천욕을 하다니 이게 무슨 호사인가 싶었다.할머니 할아버지들 틈에 끼어 앉았던 첫 온천욕도 재미있었지만, 이렇게 혼자 누리는 고즈넉한 온천욕도 좋았다.

대만의 곡창 지대 ‘이란’의 향토 음식인 웡야오지. 장작 가마에 오래 구운 닭구이로 껍질은 바삭하고 고기는 쫄깃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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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찻잔·보이차·솔잎차

도예가 이 선생님.

다음날은 도자기를 굽는 이 선생님 댁으로 향했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일자형의 단층 건물이 보였다. 마당의 빨랫줄에는 가지런히 널린 빨래가 말라가고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초로의 남자가 절구에 마늘을 빻고 있었다. 평생 도자기만 구워오신 분이라기에 우아하게 물레질하는 모습 같은 걸 기대했는데, 우리가 온다고 장작불에 타로를 굽고 양념장을 만들고 계신 거였다. 차를 사랑하는 대만인답게 이 선생님도 보이차부터 내오셨다. 우리는 구운 타로를 매콤한 양념장에 찍어 먹으며 도자기 작품을 구경했다. 이 선생님은 내가 기침만 하면 목 아픈 데 좋은 솔잎차, 오래 말려놓은 진피, 손수 덖은 감잎차 같은 것들을 계속 내오셨다. 이분의 기본은 모든 몸에 좋은 것들을 손수 채취하거나 키워서 만든다는 점. 그 와중에 또 점심은 아침에 들러 커피를 마셨던 임 선생님 댁에서 영양밥을 준비해서 이쪽으로 배달. 그렇게 한바탕 온갖 것들을 먹고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평생 태극권을 하며 기의 흐름을 익혀온 이 선생님은 도자기에도 기의 흐름을 담고, 음양의 조화와 우주의 이치를 구현하려 애쓴다고 했다. 햇빛에 비추면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푸른 찻사발에 담긴 우주의 이치를 깨칠 날을 기대하며 산자락 아래의 작은 오두막을 나섰다.

혼자서는 만나기 어려운 현지인들과의 만남, 마사지와 온천욕, 맛있는 식사…. 그렇게 에스의 안내로 꽉 찬 1박2일의 여행이 끝났다. 밥은커녕 차 한 잔도 사지 못하고 오직 접대만 받고 온 투어. 소탈하고 다정한 대만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 소중한 시간이었다. 허세도 없고, 가식도 느껴지지 않는 편안한 사람들이었다. 귀한 추억과 함께 내 손에는 찻잔 두 점과 보이차와 솔잎차, 커피 두 봉이 남았다. 언제든 편히 와서 쉬라고 에스가 건네준 집 열쇠까지.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근 듯 마음이 풀어지던 열흘이었다.

여행가

여행가 김남희는 2003년 이후 유목민의 삶을 살아오고 있다. 언젠가는 앉아서 유목하는 경지에 오르기를 바라면서, 지은 책으로는 ‘길 위에서 읽는 시’, ‘여행할 땐, 책’, ‘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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