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 잘 준비하다 "비상 걸렸어"…눈 치우러 가는 공무원들

김지성 기자, 이지현 기자 2024. 1. 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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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 꼴 소집"…사회복지공무원 '번아웃'
제설작업.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사진=뉴시스

"올 겨울엔 눈이 많이 내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소집됐어요. 밤샘도 밥먹 듯합니다."

9년차 사회복지직 공무원 한모씨(33)는 "당장 눈이 안 오더라도 오전에 눈 예보가 있으면 전날부터 비상을 건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사전 제설 작업뿐 아니라 밤을 새우는 경우도 많아 다들 업무 피로도가 높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폭설, 폭염 등 극단적인 날씨 변화에 '번아웃'을 호소하는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이 늘고 있다. 올겨울 강수·강설 예보가 잇따르면서 비상근무에 동원되는 횟수가 늘어난 탓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소집 방식은 구시대적이라며 동원계획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공무원은 호우나 태풍, 폭염, 한파, 대설 등 자연재난 발생 시 비상근무를 서야 한다. 겨울의 경우 한파경보나 대설주의보 발표,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5℃ 이하로 떨어져 이틀 이상 지속될 경우, 24시간 신적설이 5㎝ 예상될 때 비상 소집이 발령된다.

지난해 12월 전국 강수량은 102.8㎜로 평년(19.8~28.6㎜) 수준을 크게 웃돌아 역대 12월 강수량 1위를 차지했다. 특히 12월 중후반으로 가면서 북극의 찬 공기가 한반도에 유입돼 이 기간 전국 평균 눈 일수는 6.5일을 기록했다. 역시 평년(5.2일) 수준을 넘어섰다.

변동성 큰 기상 상황에 따라 비상근무가 정해지다 보니 퇴근 시간 직전 또는 한밤중에 갑작스레 소집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에 예정된 일정에 차질을 빚거나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곤란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공무원들은 입을 모았다.

한씨는 "갑자기 밤샘 근무해야 하는데 남편도 일찍 퇴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4살 된 딸을 급히 친정에 맡긴 적이 많다"며 "날씨가 급변하면서 쉬는 날 개인 일정 중 출근하거나 제때 퇴근하지 못해 지장을 받은 적이 허다하다"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공무원 최모씨(29)는 "야간 근무 시간은 정해진 게 없다. 밤 9시에 비상이 걸리면 갑자기 출근해 비상이 해제될 때까지 근무한다"며 "항상 갑작스럽게 비상이 걸리니 일정 조정이 안 돼 주변에 여행을 가려다 포기한 사람도 많다"고 했다.

/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겨울에는 폭설, 여름에는 폭염 등 계절마다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비상 소집이 과도하게 잦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폭염 비상근무 때는 무더위 쉼터를 운영하게 돼 있지만 막상 더위를 피해 주민센터를 찾는 이들은 드물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나왔다.

7년차 사회복지직 공무원 김모씨(32)는 "필요한 경우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근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눈비가 적게 오는데도 계속 비상근무를 서게 되면 행정력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며 "특히 폭염 때 주민센터를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혼자 근무해야 해 안전을 우려하게 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겨울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은 극심한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밤샘 근무에 따른 보상이 부족한 한편 원래 맡은 업무가 지연되다 보니 민원인들의 불만도 공무원들의 몫이 됐다.

최씨는 "밤샘 근무하면 대체 휴무 하루 주고 수당이 6만원 나온다"며 "제설할 경우 체력적으로 근무 강도가 센데 보상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한번 밤새고 나면 생체리듬이 완전히 깨진다. 급여도 적은데 야근까지 하니 직원들 사이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올해 공무원 초과근무수당 지급단가를 보면 시간 외 수당의 경우 대부분 1만원 안팎으로 책정됐다. 일반직·특정직·별정직의 경우 직급별로 9급 9860원, 8급 1만416원, 7급 1만1602원 등이다.

한씨는 "비상근무로 인해 원래 예정됐던 업무 처리가 어려워 하루 늦게 민원 처리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주민센터까지 찾아온 민원인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니 업무 부담도 커진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공무원이 재난 현장을 지키는 건 당연한 임무이나 지금처럼 무작정 소집할 게 아니라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태운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금은 긴급 상황에 무작정 사람을 부르는 '일제 강점기 방식'의 공무원 동원 근무에 가깝다"며 "젊은 공무원들의 의식만 탓할 게 아니라 실제 동원 계획이 잘 짜여 있는지 담당 부서에서 고민해야 한다. 전문성에 따라 업무를 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권선필 목원대 행정학과 교수도 "시간제 근무라는 과거 관료제 방식의 운영이 아니라 주민 삶의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유연하게 업무를 분담해야 한다"며 "시민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누가 얼마큼 기여했느냐에 따라 대우나 인센티브가 지급되는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김지성 기자 sorry@mt.co.kr 이지현 기자 jihyun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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