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무섭고 한국은 만만···애플의 앱스토어 차별
대체결제·사이드로딩 허용···한국선 금지 '차별'
EU 규제에 즉각 반응···글로벌 총매출 10% 과징금
세계 최초 인앱결제법 만든 한국선 2년반째 ‘베짱’
과징금 ‘관련 국내 매출 2%’ 불과···솜방망이 처벌
애플이 유럽연합(EU)에서 애플리케이션마켓 ‘앱스토어’의 정책을 파격적으로 바꾼다. 그동안 각국 정부와 앱 개발사들이 과도하다고 지적해온 결제 수수료율을 유럽에서만 크게 낮추고 iOS 앱을 타사 앱마켓에도 유통할 수 있는 ‘사이드로딩’도 허용한다. 반면 세계 최초의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개정 전기통신사업법)을 만든 한국에서는 규제당국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재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지만 애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애플이 지역 간 개발자·소비자를 차별한다는 논란과 함께, 그 원인으로 꼽히는 방통위의 ‘솜방망이 처벌’ 규정도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27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3월 새 iOS 버전인 ‘iOS 17.4’ 업데이트를 통해 유럽 앱스토어 정책을 변경한다. 애플은 전 세계 iOS 앱 개발자들이 이용자에게 게임, 디지털 콘텐츠 등 유료 상품을 판매할 때 그 결제수단으로 반드시 자사가 개발한 인앱결제만을 사용토록 강제해왔다. 개발자는 이용자 결제액의 최고 30%를 애플에 수수료로 지불해야 한다. 이에 포트나이트 개발사 에픽게임즈를 포함한 다수의 개발사들이 수수료가 과도한 결제방식을 애플이 강제한다고 문제삼았고 각국 정부도 규제 마련을 추진해왔다. 개발사들이 수익 보전을 위해 수수료율만큼 디지털 상품 가격을 인상하는 관행도 있어, 소비자 역시 피해를 보고 있다.
애플은 EU와 현지 개발사들의 요구에 부응해 앱스토어 수수료율을 최고 17%로 낮추기로 했다. 인앱결제를 쓰는 개발사는 ‘결제 처리 수수료’ 3%를 가산해 최고 20%의 수수료를 부담하면 된다. 결제 처리 수수료마저 없는 대체결제 사용도 허용된다. 개발자가 직접 개발한 결제시스템이나, 외부의 결제 페이지로 접속되는 링크(연결점)를 앱 안에 넣을 수 있다. 사이드로딩 역시 앱스토어 사상 처음 허용된다. 구글이 자사 앱마켓 구글플레이가 아닌 원스토어 같은 타사 앱마켓에서도 안드로이드 앱 배포를 허용하는 반면, 애플은 iOS 앱을 앱스토어에서만 유통해왔다. EU에서는 이 정책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애플이 그동안 완고했던 글로벌 앱스토어 정책을 깨면서까지 유럽 개발사 혜택을 늘리는 배경에는 올해 3월 시행될 EU의 디지털시장법(DMA)이 있다. 애플을 포함한 빅테크 플랫폼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하고 이들에게 자사 서비스 우대 등을 금지하는 포괄적 규제다. 법을 어긴 빅테크는 ‘전 세계 연간 총매출’의 최고 10%를 과징금으로, 하루 평균 매출의 5% 이내를 이행강제금으로 부과받는다. 반복적으로 법을 위반 시 과징금이 매출 20%까지 가중될 수 있다. 또 필요할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사업 매각과 같은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애플은 지난해 3832억 9000만 달러(약 512조 원)의 매출을 거뒀다. DMA 시행 이후에도 ‘베짱 장사’를 이어갔다가는 50조 원 안팎의 과징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한국에서는 국회가 2021년 9월 앱마켓의 인앱결제 강제 행위를 ‘수수료 갑질’로 규정하고 세계 최초로 이를 금지하는 법을 만든 지 2년이 넘었지만 애플은 여전히 30% 수수료율의 인앱결제만을 강제하고 있다. 규제당국인 방통위는 그동안 실태조사와 1년에 걸친 사실조사를 통해 애플의 위법 행위를 확인, 지난해 10월에야 과징금 205억 원과 시정조치 추진을 시작했고 그와중에 여야 갈등으로 기관의 기능이 마비되면서 제재 절차가 지연되기도 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최근 애플이 제출한 제재안 관련 의견서를 검토 중”이라며 “분량이 많아 검토기간을 단정할 수 없다. 검토가 끝난 후에 안건을 상정하고 의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통위가 제재를 서두른다고 해도 한국 앱스토어 정책이 언제 바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전기통신사업법은 앱마켓 사업자의 특정한 결제방식 강제 행위에 대해 ‘국내 관련 사업 연 매출’의 최고 2%를 과징금으로 물린다. 애플의 경우 이 매출이 1조~2조 원 수준이라고 방통위가 추산한 것이다. 또 사업자가 시정하지 않으면 이용자 신규 모집을 금지하거나(전기통신사업법 제52조) 하루당 매출 0.3% 이내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며(제52조의2) 반복적으로 따르지 않을 시 형사 고발을 통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하는(제95조) 등의 후속 수단도 두고 있지만, DMA의 제재 수위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사업자가 이행강제금 부과에 대한 이의 제기를 하거나 시정조치에 대한 행정소송을 걸면 제재가 더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최근 미국에서처럼 대체결제를 허용하되 그 수수료를 인앱결제 수준으로 높이는 ‘꼼수’도 가능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DMA와 비슷한 포괄적 플랫폼 규제법인 ‘플랫폼 공정 경쟁촉진법(플랫폼법)’ 제정을 추진하고 과징금 요율을 6~10%로 검토 중이긴 하지만 이마저도 총매출이 아닌 ‘관련 매출’을 기준으로 한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기업도 규제 대상인 만큼 이들의 성장 저해나 역차별 우려를 없애려면 제재 수위를 높이는 데도 한계가 있다. 미국 기업인 애플, 구글이 플랫폼 시장을 장악한 유럽에서 DMA가 자국 기업 보호 역할을 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에 플랫폼법보다는 전기통신사업법 등을 통한 앱마켓 맞춤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에 힘이 실린다.
김윤수 기자 sookim@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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