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한동훈 동일체'의 '내적 투쟁'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보고서
'약속대련'이니 하는 말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득실 계산이 한창이다. 쓸데 없는 일이다. 사안은 명백하다. 검찰 공화국에서 범죄 의혹을 두고 벌이는 국력 낭비다. 해결책도 간단하다. 검찰이 전광석화처럼 수사하면 된다. 그러나 이미 도래한 검찰공화국의 검찰은, 정작 가만히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검사동일체의 원칙. 이 무시무시한 말은 노무현 정부 때 개정되기 전까지 검찰청법 제 7조의 제목이었다. 검찰청법 제7조 제1항은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른다"고 돼 있고, 3항은 "검찰총장과 각급 검찰청의 검사장 및 지청장은 소속 검사의 직무를 자신이 처리하거나 다른 검사로 하여금 처리하게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세월이 흐르며 문구는 다소 부드러워졌지만, '검사동일체'의 핵심 의미는 그대로다.
제3항은 독재시절 참 유용했다. 양심있는 검사가 거부한 시국 사건은 충성스런 검사가 맡아 처리할 수 있었다. 검사는 동일체이므로, 완전무결한 하나의 상상된 '법인격체'이기 때문에 나사 몇개, 부품 몇 개 빠진다고 해도 문제가 없었다. 기소 검사와 공소 유지 검사가 달라도, 모든 검사는 '동일체'이기 때문에 논리적 완결성은 훼손될 수 없다. 그런 조직에서 윤석열과 한동훈은 20여년 간 '동일체'로 살았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관계(윤석열 대통령)라고 한다. 거의 '식구'다.
'정신분석학'적 검찰 공화국의 세계관에서 윤석열과 한동훈, 여권 투톱은 한몸이다. 당대표를 두 번 갈아치운 끝에 드디어 '자아 일체'를 이뤘다. 그러니까 지금 벌어지는 소동은 일종의 '내적 투쟁'이다. 과거 '정의의 검사'로 불렸던, 지금 한몸에 살고 있는 두 자아가 자신들의 과거와 벌이는 내적 투쟁.
이 내적 투쟁의 촉발제는 김건희 영부인의 디올백 스캔들이다. 김건희 영부인이 피해자인지, 피의자인지 논쟁이 한창이지만, 그걸 규명해 줄 '슈퍼 에고', 즉 이 정부의 또다른 자아인 '검찰'은 내면 깊숙히 숨어들어가 아예 '무의식'이 됐다. (Unconsciousness 무의식이 아니라, No consciousness 의식 없음이 됐다. 혹은 Disconsciousness, 의식 잃음인가?)
종교나 철학에서 말하는 내적 투쟁은 본능과 본능의 충돌이다. 정신분석학에서도 비슷하다. 자아 속에서 권력과 욕망을 둘러싼 본능이 충돌하고 이를 '이성'과 '양심'이 제어하는 게 보통의 매커니즘이다. 그런데 요란한 내적 투쟁에는 '이성'과 '양심' 같은 슈퍼에고의 존재가 고장나 있다.
자, 양심을 팽개친 이 '동일체'의 한쪽에선 영부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본능이, 한쪽에서는 총선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본능이 작용한다. 영부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욕망은 또렸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총선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욕망도 또렸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그 또한 분명치 않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안다. 영부인의 '디올백 스캔들'을 보호하고 가면 총선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높고, '디올백 스캔들'을 털고 가면 대통령이 정치적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걸. 총선 패배는 '식물 정권'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의 근원이고, 생 그 자체를 위해 극복해야 할 치명적(fatal) 이벤트다.
두 개의 상반된 욕망이 충돌했다. 이 '내적 전쟁'이 윤석열, 한동훈 두 사람에겐 사적으로 중요할 수 있지만,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지위를 가지고 공개적으로 '내적 싸움'을 실시간 중계하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동료 시민들'은 내적 싸움이 공적 영역으로 전이되면서, '사적 비리 의혹'에 대한 두개의 자아가 충돌하는 모습에 그대로 노출된다. 이걸 지켜보는 사람들을 안쓰러워해도 모자랄 판에 일각에서 '약속 대련'이니, '극적 화해'니 하는 말로 포장지를 둘러대는 건 여간 민망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재명이라는 '거악'을 척결하기 위해, 조국이라는 '거악'을 척결하기 위해 쉼 없이 달려온 이 '동일체' 투톱은 이제 자신들이 '살아있는 권력'이 되었다. '거악 척결'로 권력을 잡은 이 동일체는 본인의 몸에 난 '환부'를 발견했고, '동료 시민들'은 이제 이들이 그 '환부'를 어떻게 다룰지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
검찰총장 시절엔 많은 의사결정이 암막 뒤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생길 일이 없다. 동일체를 거부한 검사들은 옷을 벗고 나가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대통령직은 다르다. 모든 결정 과정은 투명해진다. 그런 가운데 완전한 일체가 되지 못한 또다른 자아(한동훈)을 꾸짖고 어르고 달래는 원 자아의 모습이 언론지상에 날것으로 등장한다.
"대통령을 뒷배 삼아 한 위원장이 당의 주인인 것처럼 줄 세우기 한다는 소문이 맞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한동훈은 내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후배였다. 내가 오죽하면 신뢰와 지지를 철회한다는 말까지 했겠느냐", "가장 아끼던 사람에게 바보같이 뒷통수를 맞느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사람을 너무 의심하지 않고 썼던 나의 잘못인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채널A [단독]윤 대통령 "한동훈, 사당화 하지 말라는 것" 봉합 여지는 남겨, 역시 채널A [단독]"뒤통수 맞았다더라"…윤 대통령, 심경 토로)
궁중 암투에서 나올법한 말들이다. 일개 검찰 조직의 수장에서 대한민국의 컨트롤타워로 자리를 옮겼지만,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이 '국가 동일체'의 머리 부분에 자리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이번 사태의 본질은 총선에서 지면 '식물 정권'이 된다는 근원적 두려움 위에서 벌어지는 욕망끼리의 내적 투쟁이다. 이들에겐 총선에서 이겨서 무엇을 하겠다는 '비전'이 불분명하다. 얼른 기억나는 건 운동권 청산론인데, 이건 공산전체주의에 맞서 싸우는 이념 투사의 기출변형 수준에서 멈춰버린다. 그리고 여권의 '권력 자원'을 총선 승리를 위해 투여하겠다는 한동훈식 마키아벨리즘이 난무한다.
지금 세상은, 지금 국정은 대통령이 '내적 투쟁'을 통해 자아를 완성해 나가는 실험장이 될 정도로 한가롭지 않다. 세계 정세는 불안하다. 미국에서는 '동맹'을 경시하는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한미동맹 '원툴'의 외교 정책은 위태하지 않는가? 북한은 '전쟁'을 입에 담으며 연일 도발을 해대고 있다. 경제 상황도 심상치 않다. 물가는 치솟고 있으며, 부실 대출은 폭발 직전이다. 작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4%, 코로나 이래 최악이다. 세금 깎고 재정 아끼자는 이 정부의 '솔루션'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
선거를 앞두고 주가 부양과 부동산 경기 부양에 나섰지만, 주가는 되레 곤두박질치고, 부동산 시장은 얼어붙고 있다. 미국에서 북한과 '전쟁 가능성'이 공공연하게 거론되는데 어느 투자자가 한국을 눈여겨 보겠나.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누가 만들고 있는가. 이 판국에 왜 한국 정부는 300만 원짜리 영부인 디올백 스캔들을 두고 '내적 투쟁'을 '동료 시민들'에게 강제 시청하게 만들고 있나.
이 국정 걸림돌을 치우는 방법은 간단하다. 내적 투쟁의 요인을 제거하면 된다. '조국 수사' 때처럼 전광석화로 진상규명을 하면 된다. 그런데 검찰이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인지, '동료시민들'은 지금 그걸 궁금해 하고 있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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