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도서관] 고단하고 힘든 삶… 서로에게 의자를 내주며 살아가거라

이태훈 기자 2024. 1. 27.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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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이정록 시 | 주리 그림 | 바우솔 | 40쪽 | 1만6800원

의자

이정록 시 | 주리 그림 | 바우솔 | 40쪽 | 1만6800원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병원 가는 날, 어머니는 차 뒷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푸릇푸릇 청보리밭 위로 가는 비가 내린다.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세상 뭇 생명은 서로 기대며 살아간다. 지나가듯 툭 던지는 어머니 말씀에 녹아 있는 그 깨달음을 머리 희끗해진 아들도 이제는 알아듣는다.

/바우솔

어머니는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오라며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하신다. 학사모를 씌워 업어드린 대학 졸업식 날, 웃으시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병원에 다녀오면 어머니는 밭에 영글기 시작한 참외 아래 지푸라기를 깔고, 제법 자란 호박 밑엔 곯지 않게 똬리도 받칠 참이다. 형제들이 가족을 데리고 모이는 날이면, 도토리묵도 썰고 아삭한 열무김치도 꺼내고 애호박 숭숭 썰어 넣은 된장찌개도 끓이실 것이다.

/바우솔

“싸우지 말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어머니는 고단할 때 의자를 내어주는 사람이 되라고, 서로에게 쉬어갈 의자가 되어주라고 말씀하신다. 시골집 마당 의자에 앉은 어머니가 손주 손을 맞잡고 웃고, 바둑이는 빈 의자 위에 올라 잠든다. 읽는 마음도 푸근해진다.

의자이정록 시 | 주리 그림 | 바우솔 | 40쪽 | 1만6800원

충남 홍성 태생으로 김수영·김달진문학상 등을 받은 이정록(59) 시인의 시는 어머니 목소리로 듣는 듯 사투리가 구수하다. 언덕길 풀 꽃 한 송이, 텃밭 참외며 호박까지 세밀하면서 정겹게 표현한 그림과 둥글둥글 어울린다. 대한민국문학상 번역 대상 등을 받은 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가 영어로 번역한 시가 책 말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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