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게니 오네긴’엔 검열에 대한 저항 담겨
책이 재밌으면, 나도 모르게 허리를 바로 세우고, 긴장된 자세가 된다. 물론 그런 적은 잘 없다. 백재은이 쓴 ‘디어 마이 오페라’(그래도봄) 초반을 조금 지나면 미국 드라마 ‘프렌즈’와 푸치니의 ‘라 보엠’의 구조적 특징을 비교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페라 원작의 연재 형식과 ‘프렌즈’의 매회 구조가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얘기의 구조 비교는 기가 막힐 정도로 재밌었다. 어지간한 평론보다 훨씬 낫다.
나는 원래 메조 소프라노를 좋아한다. 메조 소프라노가 쓴 이 책을 집어 든 건 그 때문이다. 만만한 책이라 생각해 시작했다가 한 시대를 표상하는 위치에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의 경지가 깊어 새삼 감탄하며 읽기 시작했다. ‘캔디드’의 원작자인 볼테르와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삶과 비교해 분석하는 대목이 이 책의 하이라이트다. 번스타인이 ‘입을 다물라’ 종용하는 세상에 자기 식 코미디 음악으로 저항했다는 해석하는 대묵에서는 박수가 치고 싶어졌다.
이탈리아 독립군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던 베르디, 아주 강인한 신데렐라를 만든 로시니 등 아무 생각 없이 들었던 노래들이 의미와 구조, 색채를 가지게 되었다. “아니, 그렇게 깊은 뜻이!”라는 옛날 개그 대사가 생각났다. 정치적인 검열로 제대로 글을 쓸 수 없어 시대와 불화했던 러시아 시인 푸시킨 얘기에서는 눈물이 살짝 날 뻔했다. 차이코프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에 그렇게 깊은 시대적 아픔이 있는 줄 몰랐다.
예전에 읽은 오페라 책들은 곡의 아름다움과 서사의 완결성에 대한 찬사에 가까웠다. 이 책은 동화가 그저 서정적인 얘기만은 아닌 것처럼, 오페라에 그저 달콤한 사랑 고백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책을 읽은 게 아니라 맛깔나게 얘기 잘하는 사람과 커피 마시면서 길게 수다 떤 기분이 들었다. “아, 성악가는 음악으로 이야기에 색을 입혀주는 사람이구나. 나는 음악으로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이야기꾼이구나”라는 저자의 말처럼 진짜 이야기꾼은 따로 있나 보다. 오페라를 몰라도 책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볼테르나 푸시킨 정도의 이름만 얼핏 알아도, 오페라 주인공과 작곡가의 사연을 이해하는 데 전혀 지장 없다. 올해의 첫 독서로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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