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0조 수익....스티브 잡스의 ‘애플 생태계’, 15년 만에 무너졌다
압도적인 시장지배력을 기반으로 거침없이 성장하는 빅테크에 대한 초강력 규제에 나선 유럽이 견고한 애플의 철옹성을 무너뜨렸다. 애플이 보안을 이유로 폐쇄적으로 운영해온 앱장터(앱스토어)와 인앱(in-app·앱 내) 결제 같은 핵심 수입 사업을 다른 업체에 개방하게 된 것이다. 미국 CNBC 방송은 “애플의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walled garden)’에 커다란 금이 갔다”고 평가했다.
25일(현지 시각) 애플은 오는 3월 7일 시행되는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을 준수하기 위해 앱장터 개방 및 결제 수수료 인하 등 정책 변경 사항을 발표했다. DMA는 빅테크의 시장 독점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연간 매출의 10%에 해당하는 막대한 과징금을 부여하는 법안이다. 유럽 당국은 애플이 아이폰용 앱시장을 독점하고 있다고 보고, DMA를 근거로 플랫폼을 외부에 개방할 것을 요구해 왔다. 애플은 지난해 11월 EU를 상대로 소송까지 진행하며 거세게 저항했지만, 결국 굴복했다.
정책 변경으로 EU 27국 사용자는 3월부터 앱스토어가 아닌 다른 앱장터에서도 아이폰·아이패드용 앱을 내려받을 수 있게 된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구글플레이’뿐만 아니라 한국 앱장터인 ‘원스토어’나 삼성 앱스토어 등을 사용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CNN은 “2008년 앱스토어가 시장에 데뷔한 지 15년 만에 생태계를 뿌리부터 바꾸는 가장 큰 변화”라고 했다.
지금까지 아이폰 사용자는 애플 앱스토어에서만 앱을 다운로드할 수 있었고, 이 경우 무조건 애플의 결제 시스템을 써야 했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소비자를 우리 생태계에 가둬야 한다”면서 밀어붙인 회사의 절대적 기조였다. 애플은 자사 결제 시스템에서 이뤄지는 결제에 15~30%의 고액 수수료를 부과해 왔다. 사실상 수수료를 내지 않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애플 통행세’로도 불렸다. 애플은 매년 인앱 결제 수수료로 100조원대 수익을 거둬 왔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앱 개발자나 앱 회사가 앱스토어를 거치지 않아도 앱을 배포할 수 있는 만큼, 수수료가 훨씬 저렴하거나 아예 없는 외부 결제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수수료가 내려가면, 소비자가 지불하는 앱 구매 비용도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독점 시장이 깨지고 경쟁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애플의 브라우저와 간편결제 독점도 흔들릴 전망이다. 3월부터 유럽 아이폰 이용자들은 아이폰 기본 브라우저를 애플의 사파리로 할지 구글의 크롬 같은 다른 브라우저로 할지 선택할 수 있다. 또 애플은 아이폰에 애플페이 이외의 NFC(근접무선통신) 결제 서비스도 허용한다. 은행이나 개별 금융 서비스의 간편결제를 애플페이 대신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면초가 처지가 된 애플은 ‘앱스토어 수수료 인하’ 카드를 제시했다. 애플은 유럽 앱스토어의 인앱 결제 수수료를 10~17%로 내리기로 했다. 대신 연간 100만건 이상 다운로드된 ‘수퍼앱’은 어느 앱장터에서 배포됐든 간에 건당 0.5유로의 ‘핵심 기술 수수료’를 내게 한다. 인기가 높은 앱에 새로운 비용을 부과해 수수료 수익 하락을 최대한 막는 전략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빅테크 독점 횡포를 법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애플의 이번 정책 변경은 유럽에만 적용되지만,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법안 도입 움직임이 활발하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는 블로그에 “세계 곳곳의 개발자들이 다른 나라 정부에도 DMA와 같은 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썼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수수료를 인하하면 앱장터 양대 산맥인 구글도 30%에 달하는 고가 수수료를 계속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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