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20도 혹한기, 명태 3000만 마리엔 ‘황금기’

조유미 기자 2024. 1. 27. 03:3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파가 반가운 용대리 황태덕장
지난 17일 오전 강원 인제 북면 용대3리에 있는 황태덕장에서 본지 조유미 기자가 덕장에 걸린 명태를 살펴보고 있다. 명태는 5개월 정도 찬 바람을 맞고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황금빛 황태로 탈바꿈한다. /독자 제공

북극한파가 닥친 지난 24일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아침 기온은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다. 낮에도 영하 10도였지만 용대리 주민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황태 덕장을 40년 운영해 온 이강렬(64)씨는 “오랜만에 찾아온 동장군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고 했다. 겨울에 명태를 나무 기둥에 걸어 황태로 만들려면 추위와 바람이 중요하다. 그런데 1월 중순까지 평년보다 따뜻해 ‘명태 걸기’ 작업에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이씨는 “올겨울 걸어야 할 명태 50만마리 작업을 이번 혹한 때 모두 마쳤다”고 했다.

용대리는 국내 대표적인 황태 생산지다. 매년 명태 3000만마리가 덕장에 걸려 찬 바람과 눈을 맞으며 금빛 황태로 변한다. 용대리는 매년 12월 25일쯤부터 명태 걸기를 시작해 1월 15일쯤 마치고 4월쯤부터 황태를 거둔다. 한 주민은 “콧속이 쩍쩍 달라붙을 정도로 추워야 한다”고 했다. 일교차가 15도 이상 벌어지고, 최저 영하 10도 이하와 최고 영상 4도 이하가 유지돼야 부드러운 최상급 황태가 탄생한다.

그런데 작년 12월 인제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간 날은 8일에 그쳐 전년 같은 기간(18일)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용대리는 지난달 17일 기온이 영하 13도로 떨어졌을 때 명태 걸기를 서둘렀지만, 일주일 만에 최저기온이 영하 5도 이상으로 오르자 작업을 멈춰야 했다. 1월 들어서도 추위가 없어 15일까지 끝내야 할 걸기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이번 주 북극한파와 폭설이 ‘반가운 손님’이 됐다.

그래픽=양진경

지난 17일 찾은 이씨의 2만㎡(약 6000평) 규모 덕장에는 지난달부터 걸기 시작한 명태 300만 마리가 바람을 맞고 있었다. 4월까지 20번 이상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황태로 변한다. 그는 “기온이 너무 오르면 부드러운 황태가 아니라 딱딱한 북어가 된다”고 했다. 실제 햇볕만 받은 명태는 수분이 빠져 돌처럼 굳어 있었다. 용대리는 주변에 높은 산지가 많아 기온이 낮고, 바다와 내륙에서 부는 바람이 부딪치는 곳이다.

이씨는 명태를 말리며 “요즘 기후변화를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 용대리에 걸던 명태는 100% 국산이었다. 국산 명태는 1990년대 초만 해도 연간 8만t씩 잡혔지만 2000년대 들어 100t 미만으로 줄더니 2007년 이후엔 연간 1t도 안 잡혔다. 어종 보호를 위해 2019년 이후 명태잡이는 전면 금지됐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국산 명태는 없다. 용대리에 걸리는 명태는 전부 러시아산이다. 한류성 어종인 명태는 함경남도와 강원도 앞 동해에서 많이 잡혔다. 그러나 온난화로 수온이 올라가자 명태 서식지가 러시아 근해까지 올라간 것으로 분석된다. 한반도 주변 수온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선 한때 ‘국민 생선’이던 국산 명태를 맛볼 기회는 더 없을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산 명태로 황태를 만들면서 용대리 주민들은 속상한 일을 많이 겪는다. 원산지 표기법상 수산물은 어획한 국가명만 의무적으로 적기 때문에 용대리에서 4~5개월간 만든 황태라는 사실을 소비자에게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용대리서 자연적으로 말린 황태든, 중국에서 기계로 수분만 뺀 황태든 모두 ‘러시아산’으로 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값싼 중국산이 ‘용대리산’으로 둔갑해 팔리기도 한다. 용대리는 국내 황태 생산량의 80%를 차지하지만, 시장점유율은 20%에 그치고 있다. 한 주민은 “황태는 어디서, 어떻게 말리느냐가 중요하다”며 “건조장 표기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규정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