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누가 대통령 돼도 동맹 약화” 세계 석학들이 꼽은 올 5대 난제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진행 중인 두 전쟁 참가국 중 전쟁의 구도를 바꿀 만한 획기적인 돌파구를 찾을 나라는 없어 보인다.”(이보 달더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 회장) “지금 전쟁 중인 그 어떤 국가도 전장의 전투를 억제하는 데 관심이 없다. 두 전쟁 모두 안정을 향하지 못하고 있다.”(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
2024년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및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거대한 두 개의 전쟁과 함께 문을 열었다.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전면전이 동시에 벌어지는 가운데 올해 미국·러시아·인도 등 주요국이 대선을 포함해 46국이 대선·총선을 치른다. 각 나라의 국내 사정에 따라 국제 정세의 균형이 또다시 급변할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시계(視界) 제로’ 상태로 시작한 올 한 해의 전망과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각 분야 글로벌 전문가 10인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러시아의 ‘핵 카드’, 이달 초 반중(反中) 후보 당선으로 마무리된 대만 총선이 불러올 대만·남중국해 주변의 갈등 고조,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 및 ‘세계 경찰 미국’의 역할 약화 등을 올해의 위협으로 꼽았다.
①두 개의 전면전, 그 누구도 끝낼 생각이 없다
“이스라엘은 모든 잠재적 적을 공격하려 하고,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을 대신해 아랍 세계가 개입하기를 원합니다. 우크라이나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 전쟁에 더 참여하길 바라고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힘의 균형이 재편되기를 원합니다.” 브레머 회장의 말이다. 많은 석학은 전쟁 당사국들이 다른 국가들을 더 끌어들여 판을 키우려 애쓰기 때문에 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특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관련해선 오는 3월 러시아 대선까지 교착을 보이다가, 푸틴이 계획대로 재집권을 한 후 ‘확실한 현상 변경’을 위해 러시아가 핵 위협을 포함해 “그동안 보지 못한 방식”(달더 회장)을 시도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틸만 러프 핵무기폐지공동행동(ICAN) 설립자는 “지금으로서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을 제한할 장치가 없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러시아가 핵이라는 카드를 꺼낼 가능성은 커질 것”이라고 했다.
② ‘질서 유지자’이길 거부하는 미국
마우로 기옌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 부학장은 “미국은 과거처럼 세계의 질서를 강요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통제력이 약해짐에 따라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이 지루하게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한때 ‘세계 경찰’ 역할을 자처했던 미국이 국내 정치의 극한 대립으로 강력한 글로벌 장악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된 상황이 곳곳의 분쟁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제프리 색스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미국의 외교 관계는 계속 불안정할 것”이라며 미국을 우선하는 지금의 기조가 이어질 경우 “심지어 미국과 EU(유럽연합)의 관계도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나토 동맹국에 대해서도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고, 조 바이든 행정부 역시 정도의 차이일 뿐 방향성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③ ‘두 번째 트럼프’라는 초거대 변수
트럼프는 최근 두 주(州)의 경선에서 잇따라 승리하며 11월 미 대선의 공화당 후보 확정에 다가가고 있다. 1기(2017~2021년) 때보다 훨씬 강력한 추진력·조직력을 갖추고 돌아올 트럼프의 귀환이 올해 세계 가장 큰 변수라는 데는 대부분 전문가들이 동의했다. 클라크 패커드 케이토연구소 통상정책연구원은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미국 대(對) 세계’ 구도로 벌어지는 무역 전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동맹국도 이를 피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정부에서 삼각 연대를 공고히 한 한·미·일의 관계도 지속될지 미지수다. 마크 토콜라 한미경제연구원 부소장은 “트럼프는 동맹 시스템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다고 아쓰시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트럼프가 당선되면 일본과 한국은 신뢰할 수 없는 리더가 이끄는 미국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동아시아에서) ‘핵 우산’ 약속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며 상당한 혼란이 올 것”이라고 했다.
④미·중 아슬아슬한 ‘간 보기’의 시간
미·중 갈등에 대해선 지난 11월 정상회담 이후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언제든 살아날 분쟁의 불씨가 남았다는 진단이 많았다. 마이클 커닝햄 헤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센터 연구원은 “앞으로 몇 달 동안은 비교적 덜 적대적인 관계를 이어갈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론 긴장과 상호 불신이 유지될 전망”이라고 했다. 커닝햄 연구원은 “미중 관계의 장기적 추세는 긴장과 상호 불신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미 대선을 앞두고 (공화·민주 양당) 후보들은 중국에 대해 점점 강경한 발언을 할 것이고 누가 당선되든 중국과의 대결 구도는 더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⑤대만·남중국해, 세 번째 전쟁 불씨
다수의 전문가들은 가능성은 작지만 발화(發火) 시 가장 폭발력이 있는 ‘기폭제’로 대만해협과 인근 남중국해의 갈등을 지목했다. 퍼트리샤 김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대만과 남중국해 갈등은 강한 민족주의가 기저에 깔렸다는 점에서 분쟁의 위험이 가장 크다”며 “미 바이든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갈등을 관리하려고 노력하지만 둘 모두 ‘약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자국 내 압박에 직면한 상황”이라고 했다.
달더 회장은 “(반중 성향) 민진당 라이칭더의 총통 당선으로 대만의 독립 선언 가능성이 보다 높아졌다. 중국이 군사·경제, 혹은 새로운 방식으로 압박 수위를 높여갈 수밖에 없게 됐다”라고 했다. 색스 석좌교수는 “미 대선 후보들은 대선이 다가올수록 반중 수사를 경쟁적으로 내놓을 것”이라며 “이런 가운데 대만 정치인들이 무책임한 (대만 독립) 언행을 자제하는 것이 (분쟁 억제에)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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