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이낙연도 만났다, 유력 정치인들이 ‘달개비’ 찾는 까닭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2024. 1. 2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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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두규의 國運風水] 명소에는 명사가 모인다… 덕수궁 주변 풍수를 보라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있는 한정식 식당 '달개비(컨퍼런스하우스달개비)' 전경. 인근에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가 묻혔고, 능이 이장된 후에는 세력가들이 선점하려 다툰 명지다. /김두규 교수 제공

특정 음식점을 홍보하려는 글이 아니다. 덕수궁 북쪽 돌담길 맞은편에 ‘달개비’란 음식점이 있다. 성공회 대성당과 붙어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눈 내리는 날, 이재명과 이낙연 전·현직 민주당 대표의 회동 장면이 TV에 잡혔다. 한눈에 ‘달개비’임을 알아보았다. 필자도 몇 번 가본 곳이다. 그곳에 가면 정·관계 인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안철수의 단독 회동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명소임이 분명하다. 명소가 되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다. 터의 내력도 한몫한다.

‘달개비’ 북쪽에 조선일보 본사가 있다. 일 때문에 몇번 간 적이 있다. 본사로 가는 길은 두 가지다. 남쪽 서울시의회 쪽에서 진입하거나, 북쪽 세종로파출소 쪽에서 진입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어느 쪽에서 가든 본사는 약간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느낌이다. 또 본사와 맞은편 TV조선 터는 평평한 언덕[原]이다. 그리고 TV조선 동쪽, 즉 코리아나호텔 쪽은 급경사를 이룬다. “왜, 이곳에 작은 언덕[原]을 이루고 있지?”

세월을 거슬러 올라 1396년(태조 5년)의 일이다.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가 죽었다. 태조는 풍수사들을 대동하고 여러 곳을 돌다가 이곳을 신덕왕후 묫자리로 정했다. 왕조실록은 “신덕왕후를 취현방 북쪽 언덕[北原]에 장례하고 정릉이라 하였다”고 적었다. 취현방은 현재 덕수궁 일대이다. 덕수궁 북쪽 언덕은 이곳밖에 없다. 25년 전 필자는 ‘조선 풍수학인의 생애와 논쟁’을 집필하면서 그 역사적 현장들을 돌아다녔다. 원래의 정릉 혈처[묫자리]를 추적하던 것도 그즈음 일이다.

고려와 조선은 풍수를 숭상하였다. 묫자리를 잡는 풍수 비결은 “하나의 선을 찾는 것이다(음지구일선·陰地求一線).”(‘탁옥부’). 이때 하나의 선(線)을 풍수 용어로 ‘내룡(來龍)’이라 부른다. ‘용이 내려온다’는 뜻이다. 용은 임금이다. 용의 출발점과 종점을 찾는 것이 묫자리 풍수의 전부이다. 좌청룡·우백호를 따지는 것은 풍수 고수가 아닌 하수들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가 지난 12월 30일 서울 중구의 식당 달개비에서 회동을 마치고 나와 헤어지며 악수하고 있다./뉴시스

‘달개비’에서 영국 대사관 쪽으로 가다 보면 덕수궁 돌담 한쪽에 작은 쪽문이 있다. 그 쪽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덕수궁 뒤쪽이다. 덕수궁을 감싸는 작은 능선[龍]이다. 그 능선을 거슬러가면 다시 덕수궁을 벗어나는 쪽문이 있다. 쪽문을 나와서 북서쪽 골목길을 오르면 ‘구세군제일교회’가 나온다. 다시 맞은편에 쪽문이 보인다. 쪽문 입구에 ‘고종의 길’이란 안내판이 있다. 쪽문으로 들어가면 120m의 작은 능선이 있다. 능선 위에 골목길이 생겼다. 아관파천 후 고종이 다녔다 하여, ‘고종의 길’이란 이름이 생겼다. ‘고종의 길’ 서쪽 끝에 쪽문이 나온다. 쪽문으로 나가면 ‘정동공원’과 ‘러시아공관’ 하얀 탑이 보인다. 탑은 일대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있다. 그리고 그 능선은 경향신문 뒤쪽을 관통하여 돈의문 터를 지나 인왕산 쪽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내룡의 흐름’이자 ‘왕의 길’이다. 그 ‘왕의 길’은 조선일보 본사 일대에서 작은 언덕을 이루고 가던 길을 멈춘다. 바로 신덕왕후가 묻힌 혈처이다. 고려 말 조선 초 묘지 풍수 정수가 구현된 곳이다. 수백년 동안 난개발 속에서도 ‘왕의 길[내룡·來龍]’이 ‘하나의 선으로[一線]’ 보전되어 있다. 우리 문화유산으로 보전되고 소개되어야 한다.

신덕왕후의 능역은 남편이 죽자마자 축소된다. 이복 아들 태종은 능역을 무덤에서 100보까지로 축소한다(3년 후인 1409년, 현재의 성북구로 이장). 100보 밖 땅에 사람들이 서로 집을 짓고자 하였다. 누가 집을 지었을까? ‘태종실록’의 기록이다. “세력가들이 서로 다투어 좋은 땅을 점령하였는데, 좌정승 하륜(河崙)이 사위들을 거느리고 이를 선점(先占)하였다.” 현재의 ‘달개비’ 그 언저리이다. 조선일보에서 100보 거리이다.

2012년 11월 18일 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서울 정동 달개비에서 후보 단일화 회동을 마치고 나와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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