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기회의 땅… 당구로 사람들 돕고 꿈 심어주고파
[’아무튼, 봄’ 희망 편지] (4)
올해로 한국살이 15년째입니다. 제 모국은 캄보디아. 2010년 국제결혼으로 이 나라에 왔습니다. ‘가갸거겨’ ‘아야어여’만 배우고 들어온 셈이에요. 처음에는 말이 통하지 않았고, 어순부터 달랐습니다. 한국어가 “집에 가요”라면 캄보디아어는 “가요 집에”였지요.
결혼 이듬해 남편을 따라 처음 간 당구장에서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당신도 한번 쳐봐” 해서 큐를 잡은 게 시작이었어요. 재능을 발견했습니다. 가로 1422㎜, 세로 2844㎜ 당구대가 저를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간 것입니다. 스리쿠션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하고 2017년에 프로 선수가 되었습니다. 캄보디아에서는 가난해서 꿈을 펼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는데 한국은 달랐어요.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나라였습니다.
제 새해 소망은 나와 남을 함께 지키는 것입니다. 작년까지는 챔피언 등 거대한 목표를 향해 달려왔어요. 나보다는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몸도 마음도 지치던 어느 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남을 돕는 일조차 한계에 부닥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나를 잘 보살필 줄 알아야 남도 잘 챙길 수 있구나.
당구 연습 시간을 늘리고 체력을 기르는 중입니다. 매일 계획을 세우고 지키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를 돌봐야 남을 더 힘껏, 더 오래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캄보디아에 당구 아카데미를 세울 계획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코리안 드림을 이루었으니 이제 고국에 있는 누군가에게 희망의 씨앗을 건네고 싶습니다.
제게 한국은 배울 점이 많은 나라입니다. 무엇보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어요. 스롱 피아비가 그 증거입니다. 한국은 캄보디아보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기술이 뛰어나며 사람들은 부지런해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요? 한국이 앞으로 제 모국에 기업을 더 세우고 기술을 가르쳐주며 함께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에서 구세군 자선냄비 홍보 대사를 맡았습니다. 기부에 대해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녹이고 싶었거든요. 나누는 것은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적다 싶은 돈도 누군가에게는 정말 클 수 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돕고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행복을 알기에 당구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제 오랜 꿈은 캄보디아에 학교를 세우는 것입니다. 저처럼 가난해 공부할 기회를 빼앗긴 아이들에게 제 행복을 나눠주고 싶어요. 혼자 힘으로는 벅차서,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하고 있습니다. 봉사 단체를 만들어 현지 봉사를 가고, 한국에 온 캄보디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합니다.
방황하는 한국 청년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제게는 당구가 터닝 포인트였어요. 좋아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잘한다”는 격려를 받고 열심히 스리쿠션을 치다 보니 어느 날 시상대 꼭대기에 서 있었습니다. 당구로 누군가를 돕고 꿈을 심어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사실 저도 힘들 때가 많아요. 길고 어두운 터널 속을 걷는 기분에 사로잡히는 시간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저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새해 소망은 나와 남을 함께 지키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 것만이 성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잘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 될 수도 있지요. 거꾸로, 좋아하는 일을 해도 실패할 수 있답니다. 이겨내겠다는 투지로 도전해 보세요. 공부도 싫고 아무것도 못 하겠다면 하나 제안하겠습니다. 당구를 시작해보는 건 어떤가요? 누가 압니까? 저처럼 인생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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