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25분 동안 무죄, 무죄, 무죄… 양승태 “당연한 귀결”

허욱 기자 2024. 1. 2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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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선고에 5년 걸린 ‘세기의 재판’

26일 서울중앙지법 358호 법정. 오후 2시가 되자 형사35-1부 이종민·임정택·민소영 부장판사가 법정에 들어섰다. 재판부가 들고 와 법대 위에 쌓은 재판 자료의 높이가 40㎝에 달했다.

마스크를 쓰고 눈을 감은 채 선고 재판 시작을 기다리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피고인석에서 일어나 재판부에 고개 숙여 인사했다. 방청석에는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기소됐다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은 임성근·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수석부장판사,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등을 비롯한 후배 법조인들과 방청객 등 약 80명이 앉았다.

재판장인 이종민 부장판사는 미리 준비한 프레젠테이션(PPT) 자료를 넘겨가면서 검찰이 기소한 양 전 대법원장의 47개 혐의에 대해 하나씩 무죄 이유를 밝히기 시작했다. “범죄 증명이 없다”는 이 부장판사의 말이 내내 이어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간간이 미간을 찌푸리며 선고 내용에 집중했다. 박·고 전 대법관은 선고 내내 눈을 감았다. 세 사람은 도중에 잠깐 눈을 뜨고 허공을 바라보기도 했다. 이 부장판사는 오후 4시 10분쯤 선고 도중 이례적으로 10분간 휴정을 선언했다.

재판장의 선고는 오후 6시 25분에 끝났다. 4시간 25분이 걸렸다. 2018년 4월 2시간이 걸려 진행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 1심 선고 때보다 2배 넘게 걸렸다. 한 법조인은 “사법 사상 최장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부장판사가 마지막에 “피고인들 각 무죄를 선고한다”고 하자, 방청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제야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대법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서로 바라보며 악수를 했다.

이른바 '사법농단' 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양 전 대법원장은 법원을 나서면서 “당연한 귀결”이라며 “명백하게 판결을 내려주신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9년 5월 첫 재판에서 검찰의 기소 내용에 대해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했다. 작년 9월 결심 재판에서는 “사법부에 대한 정치 세력의 음험한 공격이 이 사건의 배경이며 검찰이 수사라는 명목으로 첨병 역할을 한 것”이라며 “특정 인물을 표적으로 한 ‘먼지 털기’의 전형이고 불법적인 수사권 남용”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 법조인은 “기소된 혐의들이 통째로 무죄가 나올 줄은 양 전 대법원장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걸로 안다”며 “재판부가 용기 있게 판단을 했다”고 했다.

이날은 양 전 대법원장의 생일이기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8년 6월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경기도 성남에 있는 자택을 나와 지인 집에서 머물며 두문불출했다. 이어 2019년 1월 구속영장이 발부돼 서울구치소 독방에 수감됐다. 같은 해 7월 179일 만에 보석으로 석방된 이후에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2020년 1월 폐암 증상이 발견돼 경기도 성남에 있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폐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도 받았다. 한 법조인은 “고령인데 장기간 검찰 수사를 받고, 옥고까지 치르게 된 상황이 닥치면 누구라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양승태 법원’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던 법관들도 이 사건으로 상당한 고초를 겪었다.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판사는 ‘재판 개입’ 의혹이 있다는 이유로 헌정 사상 최초로 법관 탄핵 심판 대상이 됐다. 헌법재판소는 민주당의 주도로 이뤄진 탄핵 소추를 2021년 10월 각하했다. 임 전 부장판사는 이듬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 사건으로 양 전 대법원장보다 3개월여 앞선 2018년 11월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내달 5일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임 전 차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 기록도 A4 용지 20만쪽 분량이라고 한다. 임 전 차장은 재판 초기에 두 평(약 6.6㎡)이 안 되는 구치소 독방에서 직접 기록을 보고 의견서를 썼다. 한 법조인은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은 법원에서 마주쳐도 목례만 하고 서로 안부도 묻지 못했다”며 “같은 사건으로 재판받는 상황에서 오해를 살까 봐 그런 것인데 참담한 심경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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