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아르헨 노조가 얼굴 바꾼 진짜 이유
24일(현지 시각) 아르헨티나의 거대 노조들이 전국적인 대규모 총파업을 단행했다. 정부 추산 4만명, 주최 추산 30만명이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연방의회 앞 광장에서 집회도 벌였다. 5년 만의 총파업이자 지난달 집권한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 들어 가장 큰 규모의 반정부 시위였다. 이번 총파업은 밀레이가 취임 이후 내놓은 1000여 개의 개혁 법안에 반발해 일어났다. 특히 노조는 시장주의 원칙에 기반해 각종 규제를 철폐하려는 밀레이의 급격한 충격 요법이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물가 상승을 자극하고 사회 혼란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관점에 따라 충분히 내세울 수도 있는 명분이지만 현지에서는 지난 수년간 노조의 행보를 고려할 때 총파업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비판이 나왔다.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낸 좌파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지난 4년간 노조는 단 한 차례도 총파업을 선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정부에서 물가상승률은 1278%를 기록했고 국가 부채는 120조원 이상 증가하는 등 경제·사회적으로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번 총파업 명분대로라면 지난 수년간 이미 수십 번을 들고 일어났어도 모자랄 판이었지만 방관했다. 그런 노조가 고작 취임한 지 갓 한 달을 넘긴 대통령에게 혼란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게 어딘가 어색했다.
현지 언론의 표현대로 ‘지난 4년간 낮잠만 자던 노조’가 취임 50일이 채 넘기지 않은 대통령을 겨냥해 총파업을 일으킨 속내는 따로 있었다. 밀레이는 줄곧 “마피아 같은 노조 특권층의 기득권을 혁파하겠다”며 노동 개혁을 공언해왔다. 특히 그가 추진한 조치 가운데 노조비를 근로자의 명시적 동의를 받아 납부하도록 법제화한 것이 노조의 역린을 건드렸다. 소득의 일정 부분이 근로자 의사와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노조비로 빠져나가던 기존 관행을 바꾼 지극히 상식적인 조치지만, 노조엔 치명적이다. 또한 시위를 일삼던 노조의 불법행위를 엄벌하고, 노조의 압력 때문에 강제로 집회·시위에 참가하는 조합원을 위한 신고 제도를 활성화하는 등 노조의 동원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만한 조치들을 내놓았다.
자금줄과 동원력에 타격을 받은 노조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날 집회 현장에서 그저 지금의 어려운 삶이 나아지길 바라며 자발적으로 참가한 평범한 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의 순수한 바람이 무색하게 집회 무대에 오른 노조 간부들은 “밀레이 정부는 노동자와 노조 활동을 방해하고 파괴하길 원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내막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 세계 몇몇 주요 도시에서는 아르헨티나의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는 내용의 총파업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멀리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도 민노총이 밀레이 정부를 독재자로 비판하고 총파업을 지지하는 성명을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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