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39] 더하기보다 빼기

백영옥 소설가 2024. 1. 2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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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부터 신경외과 진료실에 앉아 뇌 MRI 사진을 봤다. 작년부터 이름이나 명사가 기억나지 않아 정확한 단어 대신 ‘그거, 저거’ 같은 대명사를 쓰는 순간이 반복되면서 혹시 치매가 아닌가 하는 불안이 몰려왔다. 결론적으로 뇌에는 이상이 없었다. 상태가 좋으니 10년 후에나 점검차 다시 찍자는 의사에게 “그런데 왜 이러죠?”라는 말을 반문했다. MRI 사진이 걸려 있는 진료실에서 50대 중반의 의사는 내게 자신도 멀쩡한 척 앉아 있지만 어젯밤 아내와 대화 중 와인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버벅였고, 콘퍼런스에서도 말이 꼬이기 일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도파민 범벅의 과도한 정보에 노출되는 20~30대에서도 엿보이는 현상이라고 했다.

그의 처방은 나쁜 음식을 줄이고, 기억나지 않는 단어가 있으면 바로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는 대신 스스로 생각해내고, 인터넷 사용을 줄이라는 것이었다. ‘하라’ 대신 ‘하지 말라’에 방점을 둔 의사의 처방을 곱씹다가 도파민 중독, 가속 노화, 단순 당처럼 내가 진료실에서 사용한 단어 중에 불과 몇 년 전이라면 쓰지 않았을 말이 수십 개가 넘는다는 걸 깨달았다.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는 이 세계에서 선택 장애는 개인이 아닌 구조적 문제이며 나아가 기억력 감퇴로까지 확장된다. 오죽하면 도쿄 같은 대도시에 책이 딱 한 권 밖에 없는 서점이 인기를 끌까. 사물로 꽉 들어찬 방에서 원하는 가구를 들여놓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법은 비우는 것이다. 무한대의 가능성이 종종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든다. 가끔 선택의 옵션을 아예 없애는 게 답일 때도 있다.

뇌의 과부하를 줄이기 위해 인터넷을 줄이는 것보다 주말에는 디지털 기기를 아예 끊는 쪽이 낫다. 담배를 줄이는 것보다 끊는 게 쉬운 것처럼 이럴 땐 100퍼센트 이행이 50퍼센트 이행보다 더 쉽다. 내가 보기에 더 심각한 문제는 과잉 정보로 파생되는 ‘의견의 과부하’다. 알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이 점점 더 많아지는 현실에서 더 중요한 건 할 것이 아닌 ‘하지 않을 것’을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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