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세 차례 전이… 모두 극복하고 ‘완치’[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초기 게실염 진단-대장암 증세 비슷… 암 발견 당시에 이미 대장암 3기
수술-항암치료 끝냈지만 1차 전이… 십이지장 암, 10시간 넘는 대수술
“의사에 대한 신뢰가 완치 비결”… 완치 후에도 6개월마다 추적 관찰
주기적인 배앓이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2∼3주 과로하면 ‘픽’ 쓰러졌다. 결국 2013년 처음으로 응급실에 갔다. 이후로 여러 병원에 다녔다. 어느 병원에서는 맹장염인 것 같다고 했고, 또 다른 병원에서는 게실염이라고 했다. 대장의 벽에 주머니(게실)가 생기고, 그 주머니에 변이 들어가 염증을 일으키는 병이 게실염이다. 게실염의 대표 증세가 변비다. 게실염 증세는 대장암 초기 증세와 비슷하지만, 대장암으로 악화하지는 않는다.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었더니 증세가 일시적으로 호전됐다. 하지만 곧 증세가 도지는 바람에 응급실로 가야 했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 민간요법을 우연히 접하게 됐다. 괜히 따라했다가 큰 부작용에 맞닥뜨렸다. 구토와 설사를 거듭하다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
● 대장암 3기 발견, 치료 잘 끝나
약 7개월이 지났다. 2015년 11월 홍 씨는 같은 증세로 한양대병원을 찾았다. 안 교수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그 순간 이 씨도 암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이 맞았다. 안 교수는 대장암 판정을 내렸다.
대장은 결장, 맹장, 직장으로 크게 나뉜다. 결장은 세 부위 중에서 가장 긴데, 수분을 흡수하고 변을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결장은 크게 상행결장, 횡행결장, 하행결장, S자결장으로 돼 있다. 홍 씨는 상행결장에서 암이 발견됐다. 이를 따로 ‘상행결장암’이라고도 부른다.
암은 림프절로 전이된 3기로 판명됐다. 안 교수가 곧바로 수술에 돌입했다. 대장의 3분의 1을 잘라냈다. 홍 씨에게 복막염이 있고 염증까지 심한 터라 수술의 난도가 높아졌다. 그래도 3시간 만에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몸을 추스르고 한 달이 지났다. 항암 치료에 돌입했다. 항암 치료는 2016년 6월까지 6개월 동안 12회에 걸쳐 진행됐다. 홍 씨는 “항암 치료까지 끝났으니 이제 암에서 해방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얼마 후 안 교수에게 암이 십이지장으로 전이됐다는 말을 들었다.
● 십이지장으로 1차 전이, 대수술
사실 안 교수는 암의 전이를 어느 정도는 예측했다. 안 교수는 “수술 당시 홍 씨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복막염이 심했고, 염증이 확산하면서 암세포가 대장 밖으로 퍼졌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 우려가 현실이 됐다. 암은 십이지장으로 전이됐다.
다급하게 2차 암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 됐다. 이 분야에서 이름이 높은 이경근 간담췌외과 교수가 투입됐다. 이 교수는 먼저 십이지장을 통째로 제거했다. 쓸개(담낭)와 담도를 잘라냈다. 췌장의 머리 부분도 절제했다. 이어 소장을 췌장 및 담도와 연결했다. 무려 10시간이 걸리는 대수술이었다.
안 교수는 “홍 씨의 암 투병 전 과정에서 이때가 최대 고비였다”고 회상했다. 안 교수는 “십이지장으로 암이 전이되면 수술도 크고 합병증도 클 수 있어 포기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그래도 홍 씨는 의사를 믿고 끝까지 따라와줬다”고 말했다.
수술 결과는 좋았다. 이어지는 2차 항암 치료만 잘 견디면 암에서 벗어날 거라 생각됐다. 문제가 생겼다. 항암 치료 부작용이 심해졌다. 항암 주사를 맞으면 토했다.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다. 홍 씨는 “병원에 들어갈 때마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래도 꾹 참고 항암주사를 맞으면 몸이 널브러졌다”고 말했다.
결국 2차 항암 치료는 4회 만에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해 이 교수는 “당시 고민이 꽤 컸다. 항암 치료를 하면 재발률을 낮출 수 있는데, 부작용이 크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4회 만에 항암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는 암 환자의 5%도 되지 않을 만큼 드물다”고 말했다.
● 복벽 이어 간에까지 전이
2차 항암 치료를 중단했지만, 다행히 암은 재발하거나 전이되지 않았다. 완치를 기대하며 3개월마다 추적 검사를 했다. 비로소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짧았다. 9개월 후 배에서 뭔가 잡히는 것만 같았다. 홍 씨가 이 교수를 만났다. 복벽에 암이 전이됐다고 했다. 암은 약 3cm 정도의 크기였다. 그나마 암세포가 작다는 것이 위안이 됐다.
이 교수가 수술을 집도했다. 복강경을 통해 암세포와 인접한 부위를 떼어냈다. 수술 부위는 탁구공 정도 크기에 불과했다. 수술 시간도 30여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암 치료가 그렇듯이 수술 후에는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항암 치료를 한다. 3차 항암 치료를 진행했다. 2차 항암 치료를 끝까지 마치지 못해 걱정이었지만, 이번에는 먹는 항암제였던 데다 거부 반응이 적어 12회까지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치료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3차 항암 치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8년 11월, 절망적인 소식이 홍 씨에게 들려왔다. 암이 간으로 3차 전이됐다는 것. 그나마 다행이라면, 암의 크기가 2∼3cm 정도로 작은 편이라는 점이었다.
12월, 이 교수가 간 부분절제술을 시행했다. 간의 오른쪽 부위에서 달걀 하나 크기만큼의 간을 잘라냈다. 수술에는 2시간이 소요됐다. 이어 4차 항암 치료에 돌입했다. 다시 항암제 거부 반응이 나타났다. 이번에도 어쩔 수 없었다. 3회 시행한 끝에 항암 치료를 중단했다.
천운이라고 해야 할까. 항암 치료를 끝까지 마치지 못했지만 이후 암세포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5년이 지났다. 2023년 12월, 홍 씨에게 완치 판정이 내려졌다. 이제 비로소 암에서 해방됐다.
●“의사에 대한 절대적 신뢰 필요”
홍 씨는 3년 사이에 세 번 암이 전이됐다. 이 교수는 “젊은 나이에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홍 씨가 적극적으로 투병했기에 모두 이길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재발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여러 차례 전이된 터라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에 비해 재발률이 높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원래는 1년마다 추적 검사를 하지만 홍 씨는 이를 6개월 간격으로 줄였다. 안 교수와 이 교수 모두 “설령 재발한다 해도 조기에 발견하기 때문에 치료 효과가 좋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완치 비결을 물었다. 홍 씨는 주저하지 않고 ‘의사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꼽았다. 두 교수를 만나기 전에 여러 병원에 다녔지만, 확신을 준 의사는 없었다고 했다. 두 교수에게는 목숨을 맡겨도 든든했다는 것.
이 때문에 암이 십이지장으로 1차 전이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담담했단다. 홍 씨는 “교수님이 고쳐주겠지, 큰 걱정 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수술은 당연히 잘될 거고 난 살 거라 믿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복벽으로 2차 전이됐다고 했을 때도 확신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간으로 3차 전이됐을 때는 힘들었다. 홍 씨는 “투병을 계속하는 내 처지가 한탄스러웠다. 죽고 싶었다. 그래도 교수님들을 믿고 따라갔다. 덕분에 완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홍 씨는 요즘 안 교수와 이 교수에게 새로운 ‘미션’을 받고 수행 중이다. 바로 체중을 줄이는 것. 이를 위해 식사량을 줄이고 이틀에 한 번꼴로 1시간 정도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빨리 걷다가 뛰는 식으로 운동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와 함께 식사량을 줄이고 있다. 홍 씨는 “수술 후유증으로 온몸이 아팠는데, 서서히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 더 열심히 운동해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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