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명쾌하게 판단 내려주신 재판부에 경의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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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농단 모두 무죄

2018년 9월 7일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이 양승태 대법원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대법원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뉴스1]

“당연한 귀결이라고 봅니다. 명쾌하게 판단 내려주신 재판부에 경의를 표합니다.”

양승태(76) 전 대법원장은 26일 무죄가 선고된 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동관 358호 중법정을 빠져나오며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흰색 마스크에 짙은 회색 양복, 은회색 넥타이를 매고 출석한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이 공교롭게도 자신의 만 76세 생일이었다. 대법원장 시절 항상 단정한 모습으로 다녔지만 거의 5년간 이어진 재판에 지친 듯 머리카락은 다소 헝클어지고 주름도 늘어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어느 때보다 홀가분함과 기쁨이 느껴졌다. 양 전 대법원장과 달리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기자들의 질문에도 아무 말 없이 빠르게 법원을 빠져나갔다. 함께 재판을 받고 함께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세 사람은 이날 각각 다른 시간, 다른 출입구로 흩어져 귀가했다.

2019년 2월 11일 구속 기소 이후 약 5년 만에 마무리된 이 사건은 선고에만 총 4시간27분이 걸렸다. 재판장인 이종민 부장판사는 선고 첫머리에 “판결 이유 설명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며 “오늘 일과 중 마칠 수 있을지 미지수인데, 설명 도중 휴정할 수도 있다”고 이례적으로 밝혔다. 이 부장판사가 법대 위에 올려둔 70~80㎝ 두께의 서류도 장시간의 선고가 될 것임을 짐작케 했다.

이 부장판사는 별도로 준비해 둔 선고문을 4시간 넘게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갔다. 크게는 30개, 세부 혐의까지 따지면 47개 혐의에 대한 이 사건의 선고를 위해 재판부는 PPT 자료까지 미리 준비해 왔다. 로마자로 각 공소 사실에 순번을 붙이고 각각의 혐의가 직권인지, 직권남용인지,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인지, 공모 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지 등을 O·X로 따져가며 설명을 써넣었다. 4시간 넘게 선고문을 읽던 이 부장판사는 말미엔 지친 듯 종종 이마를 짚기도 했다.

사법 농단 주요 법관 무죄 선고 내용

양 전 대법원장과 고·박 전 대법관은 선고가 이어지는 내내 가만히 눈을 깔고 표정도, 자세 변화도 없이 묵묵히 선고를 들었다. 이따금 양 전 대법원장이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오후 4시10분부터 10분간 휴정하자 양 전 대법원장은 변호인과 대화하며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때까지 선고된 모든 혐의에 대해 이 부장판사는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힌 상태였다. 이후로도 2시간 넘게 이어진 선고 끝에 “주문. 피고인들은 각 무죄”라는 발언이 나오자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부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방청석에선 짧은 감탄이 일었다.

이날 법정에는 임성근·유해용·신광렬 전 부장판사 등도 방청석에 앉아 선고를 지켜봤다. 사법농단 사태에 휘말려 재판을 받아 무죄가 확정됐지만 결국 법복을 벗고 법원을 떠난 전직 법관들이다. 재판에 앞서 이들은 “잘 지내셨느냐”며 서로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오후 6시27분 이 부장판사가 마침내 “오랜 기간 재판에 출석하신 피고인들께 고생하셨다는 말씀을 드립니다”라는 말을 남긴 뒤 법정을 떠나자 고 전 대법관은 변호인을 얼싸안았다. 반면 ‘최초의 사법부 수장 구속 기소’로 나라를 들썩거리게 했던 검찰은 ‘피고인 3명 모두 무죄’를 받아든 뒤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란 짤막한 입장만 밝혔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