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부추긴 정치권, 테러에 무방비…“당장 총선이 걱정”

김효성.강보현 2024. 1. 27.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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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테러’ 비상
26일 한오섭 대통령실 정무수석(오른쪽)이 서울 강남의 한 건물에서 15세 중학생에 피습 당해 입원한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을 병문안하기 위해 순천향대 서울병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민주당 여성 중진 의원은 25일 지역구 사무실로 찾아온 남성이 화장실까지 쫓아오자 몸을 피했다. 그는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다음날인 26일 국민의힘 예비후보인 이수정 경기대 교수가 페이스북에 손글씨 쪽지 사진을 올렸다. ‘부재중이라 편지를 남긴다. 왜 국민의힘으로 출마하냐’고 항의하는 내용이다. 이 교수는 “연구실 문틈에 끼워놓고 갔다는 건 내 위치와 동선을 알 수도 있다는 얘기”라며 “잠시 두려움이 판단력을 마비시켰지만 잊기로 했다”고 썼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이어 25일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피습을 당하자 정치권이 얼어붙었다. 4·10 총선을 70여일 앞두고 유권자들과 접촉면을 높여가던 의원들은 두려움을 호소했다. 수행 비서를 늘리거나 호신용품 구매 계획을 세우는 등의 자구책을 마련하는 의원들도 늘고 있다.

한 민주당 여성 의원은 26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현장에서 신체를 과도하게 접촉하고 안 놓아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가 가는 일정마다 ‘좋아한다’며 따라오는 사람도 있었다”며 “이 대표 피습 사건 뒤 트라우마가 생겨 지하 주차장에서도 차에서 내리자마자 입구로 뛰어들어간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본격적으로 선거 운동이 시작되면 수행비서를 더 늘릴 방침이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사무실에 칼이 배달돼 등골이 서늘해진 적도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선 규탄과 자성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왔다. 특정 정치인을 향한 ‘정치 테러’에 경악하는 동시에 정치권이 부추긴 ‘정치 혐오’가 불러온 사건이라는 점에서 당혹감도 읽힌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 대표인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국민에 대한 테러와 다름없다”고 말했다고 한오섭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전했다. 한 수석은 이날 배 의원이 입원한 순천향대 서울병원을 찾아 문병한 뒤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했다.

주요 정치인 피습 일지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과연 무엇이 자라나는 소년이 국회의원에게 증오가 담긴 폭력을 행사하게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 정치가 상대를 증오하고 잘못된 언어로 국민에게 그 증오를 전파하는 일을 끝내지 않는 한, 이런 불행한 사건은 계속해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최고위원회의에서 “배 의원이 당한 일은 명백한 정치테러”라며 “민주당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형태의 폭력과 테러에 반대한다. 혐오를 반대하는 국민과 연대를 더 크게 넓혀가겠다”고 했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정치테러는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폭력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며 “속히 서로를 적대하는 극단의 정치를 벗어나야 한다. 정치권 모두가 각별한 경각심을 갖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여성위원회도 성명을 내고 “혐오 정치를 종식하고 사회적 갈등을 봉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은 피의자 A군이 만 15세로 중학교 2학년이라는 점에서 더 충격받은 듯하다.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MBC라디오에서 “기본적으로 정치혐오와 같은 정서가 깔려있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수년 전부터 일부 정치인이 ‘개딸’ ‘태극기’ 등 극단적인 지지층에 기대면서 상대 진영을 몰아세우며 반대급부를 얻는 ‘쉬운 정치’를 해온 것이 정치혐오감을 부추긴 원인”이라며 “송영길 전 대표를 향한 테러 등 부작용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시그널이 있었는데도, 상대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언사가 반복되다 보니 곯고 곯은 것이 터져버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치권에선 “4·10총선이 걱정”부터 나온다. 특히 선거운동을 하다 보면 다수의 유권자를 접촉하게 되는데 폭행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이를 구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김용남 개혁신당 정책위의장은 YTN라디오에서 “후보 입장에서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총선에도 지지자가 와서 악수를 청하거나 포옹하면 같이 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뿌리치겠느냐”라고 했다.

그렇다고 별도 경호 지원을 할 근거도 자원도 부족하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국회 경내에서는 경위 등에 의해 국회의원의 안전이 보장되지만, 국회 밖에서는 보호 규정이 없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전날 “국회의원 등 주요 인사에 대한 안전 확보와 유사 범죄 예방에 전력을 쏟아달라”고 긴급지시하면서 경찰청이 신변강화를 추진하지만, 역부족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국 253개 지역구에 나서는 1000명 안팎의 후보를 한 명 한 명 보호하기에는 예산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이재명 후보에 대한 근접경호 및 차량 지원 예산은 7억6200만원, 인력은 후보당 30여 명이었다. 경호인력 1인당 약 1200만원가량이 소요되는 셈이다. 출마자가 지난 21대 총선 수준에 달한다면 경호인력을 한 명씩만 배치해도 168억원(지역구 1101명, 비례대표 301명)이 소요된다.

비교적 다수가 군집하는 현장에선 경찰이 질서 유지를 담당할 수 있다. 하지만 “후보 개인의 개별 선거운동을 어떻게 경찰이 다 보호하겠느냐”라는 말이 나온다. 국회 관계자는 “정치인 신변 보호를 위해 다수 경찰이 투입되면, 일반 시민을 위한 경찰의 치안유지 기능이 약화할 수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남은 방법은 정치인 개인이 사설 경호인력을 대동하는 것인데 유권자의 불편한 시선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했다.

김효성·강보현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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