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경제에 손실 입히는 세금…혁신기업 등장도 막아"

오유진 2024. 1. 27.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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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 떠오른 상속세
에이먼 버틀러 애덤스미스연구소(ASI) 소장은 40여 년간 전 세계 시장경제 정책을 연구해온 자유시장주의자다. [사진 ASI]
상속세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이어 17일 상속세 완화 방침을 시사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국거래소에서 개최한 민생토론회에서 “소액 주주는 주가가 올라야 이득을 보지만, 대주주 입장에서는 주가가 너무 올라가면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게 된다”며 “결국 주식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과도한 세제는 우리 중산층과 서민에게 피해를 준다”고 말했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으로 상속세를 지목하면서 사실상 세 부담 완화를 시사한 것이다. 사실 상속세 개편은 윤 정부가 출범 이후 공식화했지만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현재 속도 조절 중인 정책이다. 부의 대물림으로 양극화가 심화할 것이란 국민적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주식시장 발전 저해’라는 논리로 상속세 개편 추진을 공식화한 것이다.

높은 세율, 불법으로 회피하고 싶게 만들어

이런 가운데 상속세 원조국인 영국이 오는 3월 상속세 단계적 폐지를 논의하기로 하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영국 정부는 기업 투자 활성화를 통해 경제 위기를 벗어나겠다는 논리로 상속세 개편을 추진 중이다. 영국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020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주요 7개국(G7) 중 가장 낮은 0.5%에 그쳤다.(국제통화기금) 올해 전망치도 0.6% 정도로 2년 연속 0%대 성장률이 예상된다.

과도한 상속세가 기업 투자에 걸림돌이라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래서 스웨덴이 2005년, 노르웨이·체코가 2014년에 상속세를 전면 페지했다. 영국의 경제정책 싱크탱크인 애덤스미스연구소(Adam Smith Institute·ASI) 소장이자 공동창립자인 에이먼 버틀러(Eamonn Butler)는 “(상속세는) 경제에 손실을 입히는 세금이자, 혁신적인 기업이 등장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세금”이라고 말한다.

기업이 상속세 부담 때문에 투자를 늘리기 어렵고, 이게 결국은 나라 전체의 손실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그가 속한 애덤스미스연구소는 마가렛 대처 정부 시절 법인·소득세 인하를 통한 기업 투자 활성화 정책을 정부에 제안해 경제성장률을 확 끌어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1.53%였던 경제성장률은 2.46%로 1%포인트 가까이 올랐고, 매년 10% 넘게 치솟던 물가는 3%대로 낮아진 바 있다. 이후 ASI는 영국 경제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다. 24일 이메일을 통해 버틀러 소장을 만났다.

Q : 영국 정부가 상속세 개편을 예고했다.
A : “폐지까지는 갈 길이 남았지만 꼭 폐지되길 바란다. 집권당인 보수당은 지도자가 몇 차례 바뀌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팬데믹 기간 쌓인 부채 탓에 세제 정책에는 거의 손을 대지 못했다. 하지만 이 기간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상속세 과세 대상이 됐다. 과세 대상이 점차 확대되면서 지지자들은 이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선거를 1년여 앞둔 정부가 지지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여러 감세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 상속세도 이 일환이다.”

Q : 상속세율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나.
A : “구체적인 방식은 3월 발표 예정이다. 가장 좋은 건 상속세율을 낮추거나 점진적인 개혁을 하는 것이 아닌 폐지다. 기업과 경제의 생산성을 떨어트리는 세금은 하루빨리 없애는 것이 좋다. 세율을 낮추는 단계적 변화 방식은 언제든 원상 복귀될 수 있기 때문에 세금을 폐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Q : 영국에서 상속세가 200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A : “상속세는 1812년 나폴레옹의 전쟁 자금 마련을 위해 도입됐다. 그 이후로는 정부가 지속적으로 세수를 늘리고 싶어했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최근까지는 극소수에게만 적용되었기에 중요한 세금으로 다뤄지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 범위가 3.76%까지 늘었다.”

Q : 상속세에 불만이 많다.
A : “상속세는 애초에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세금이다. 모든 인류에게는 자신의 자식에게 무언가를 물려주고, 우리보다 더 나은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본성이 심어져 있는데, 이를 무시하는 세금이다. 이중과세 등의 문제도 있다. 그런데 세율도 너무 높다. 영국은 상속세율이 40%인데 이는 탈법이나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회피하고 싶게 만드는 수준이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나 개인이 상속세 절세 방법을 찾는데 노동력이나 시간, 자금을 낭비하고 있다. 상속세 폐지로 가야 하지만, 그게 안 된다면 세율을 낮춰야 한다. 10% 정도라면 기업이나 개인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본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러나 일부에서는 상류층의 과도한 세습을 막고 양극화된 부를 재편하기 위해 상속세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상속세 정도의 허들조차 없다면 부익부 빈익빈이 더욱 심화될 거란 시각에서다.

Q : 한국은 상속세율이 최고 60%에 이른다.
A : “너무 높다(too high). 한국 경제에 명백한 손실(drain)이다. 상속세가 이렇게 높으면 아이디어가 있고 기술이 있어도 이를 바탕으로 한 창업 등 기업 일구는 일을 등한시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렇지 않나? 한국의 우수 인력은 창업에 도전하는 게 아니라,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을 선호한다. 상속세를 개편해 돈의 흐름을 유연하게 한다면, 더 많은 돈이 이동할 것이고 창업 희망자나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는 일도 좀 더 용이할 것이다.”

Q : 한국에선 상속세 납부를 위해 기업 지분을 팔기도 한다.
A :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의 기업은 상속세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다른 나라의 기업보다 많은 제약을 안고 있는 셈이다. 상속세는 생산적인 투자보다는 세금을 피하기 위한(혹은 피할 수 있는) 투자를 하게 만들고, 이는 결국 경제 전체를 고통 받게 만들 뿐이다.”
상속세, 더 많은 중산층에게 적용될 우려

상속세 폐지나 개편에 반대하는 주장 속에는 세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기획재정부도 지난해 세법 개정으로 올해 세수가 크게 줄어들 것을 우려해 상속세 개편에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입장이다. 23일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세제 개편으로 약 1000억~2000억원의 세수감소가 예상된다”며 “상속세 개편론에 대해 신중하게 의견을 수렴 중”이라고 밝혔다. 상속세마저 개편하면 세수가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다.

Q : 상속세 개편에 따른 세수 감소 우려는.
A : “상속세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영국만 해도 2022~2023년 상속세 수입은 70억9000만 파운드로 전체 세입 1조270억 파운드의 약 0.7%에 그쳤다. 이 정도라면 세율을 0%대로 낮춰도 사실상 타격이 없는 수준이다. 한국도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금으로 인한 피해가 가장 큰 건 정부 수입이 아니라 자본이다. 세수 감소가 걱정돼 상속세를 개편할 수 없다면 앞으로 그 어떤 세금도 줄일 수 없다.”

Q : 상속세 대상은 극소수라는 주장도 있다.
A : “극소수에게 적용되는 세금이라도 잘못됐다는 인식이 있다면 줄이는 것이 맞다. 또 상속세가 향후 더 많은 중산층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상속세는 정부를 좀 더 부유하게 만들 순 있지만, 경제 전체는 훨씬 더 가난하게 만든다.”

Q : 한국은 상속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A : “그렇다고 본다. 기업이 자본의 절반을 상속세로 납부해야 한다는 건, 한국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자본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투자가 부족하면 기업이 번창할 수 없고, 주가가 내려갈 수밖에 없다. 과도한 법인세와 양도소득세도 마찬가지다. 어떤 투자가 옳을지 고민해야 한다.”

Q :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 방법은 없나.
A : “한국 경제는 자본 집약적 환경에서 창의적인 기업가를 위한 환경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컨대 자본이 대기업 한 곳이 아닌 더 많은 사람에게 분배될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한다. 적어도 높은 상속세율 때문에 많은 사람이 자본을 빼앗기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 스웨덴·노르웨이 폐지…미국은 상속세 공제액 늘려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은 2000년대 이후 상속세를 단계적 축소 혹은 폐지해 왔다. 대표적인 사회주의 국가인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각각 2005년과 2014년에, 체코는 2014년에 상속세를 전면 폐지했다. 한때 상속세율이 최고 70%에 달했던 스웨덴이 상속세를 전면 폐지한 건 상속세로 인해 기업의 기반이 위태로워졌기 때문이다.

1984년에는 과도한 상속세로 기업 승계를 포기한 스웨덴 기업 ‘아스트라’가 영국의 ‘제네카’에 인수돼 영국 기업 ‘아스트라제네카’로 합병됐고, 세계 최대 가구업체인 이케아는 상속세를 피해 네덜란드로 본사를 옮기기도 했다. 기업들이 줄줄이 해외로 떠나자 진보정당인 사민당이 나서서 상속세를 폐지했다.

공제 한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는 국가도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인데, 미국은 최고 40%의 상속세율을 유지하는 대신 상속세 공제액을 늘리는 방식으로 세제 혜택을 부여한다. 500만 달러(약 66억원) 수준이었던 상속·증여세 면세 한도는 2018년 연방정부가 개정세법(TCJA)을 제정하면서 두 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기준 상속세 면제 한도는 1292만 달러(약 172억원)에 달한다.

1985년 상속세를 폐지한 캐나다는 상속 시점에 부과하는 상속세 대신 물려받은 재산을 처분할 때 발생한 자본차익에 세금을 물리는 자본이득세를 부과한다. 상속 당시보다 상속 이후 차익에 대한 세금을 걷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중과세를 막을 수 있단 측면에서 한국이 참고할 만한 사례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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