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이고 때론 무모한 실험들의 업적
수지 시히 지음
노승영 옮김
까치
20세기 물리학자들은 ‘원자 안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빛의 성질은 무엇일까’ ‘우리 우주는 어떻게 진화했을까’ 등을 끊임없이 질문해왔다. 물리학자들은 숱한 노력 끝에 그 답을 얻어냈으며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알고 활용하는 방사능과 전자, 원자핵과 핵물리학에 대한 지식을 확보했다. 이는 양자역학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자연계의 기본을 이루는 양성자·중성자·쿼크 등 입자들과 그 상호작용으로 이뤄진 ‘표준모형’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강한 상호작용, 약한 상호작용, 전자기 상호작용의 세 가지가 그것이다.
인류의 ‘과학적 승리’라고 할 수 있는 업적이다. 입자물리학자인 지은이는 이러한 업적이 수학을 바탕으로 하는 관념적이고 이론적인 도약이 아닌, 창의적이면서 때로는 무모하기까지 한 직접적인 실험을 거쳐 얻어낸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20세기에 물질과 입자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면서 세상을 바꿔놓은 12가지 입자물리학 실험을 파헤친다.
이런 연구는 스위스·프랑스 국경지대에 1954년 설립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100억 달러의 예산을 들여 설치한 대형강입자충돌기(LHC)를 통한 힉스 보손 등의 연구까지 이어진다. 인류는 이를 통해 자연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동시에 넓혔다. 인류는 실험물리학을 통해 신비로웠던 우주입자를, 모래의 1조분의 1 크기에 지나지 않는 미립자의 세계를 알게 됐다.
실험물리학 연구는 실용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우리가 오늘날 병원에서 만나는 자기공명영상(MRI)·컴퓨터단층촬영(CT)·양전자단층촬영술(PET)은 바로 그러한 실험물리학에서 얻은 입자와 그 상호작용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진단의학에 응용한 것이다. 이제는 생활필수품이자 세계경제를 이끌고 미래를 만드는 주역이 되어버린 컴퓨터·인터넷·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세계를 연 월드와이드웹은 CERN에서의 방대한 연구결과를 전 세계 과학자들이 공유하려는 과정에서 등장하고 체계화됐다.
어디 그뿐인가. 인류는 우주에서 오는 고에너지 입자를 포착하고 이를 이용해 구조물을 파괴하지 않고도 피라미드 내부를 살펴보기에 이르렀다.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이를 확인하려는 과학자들이 발품을 아끼지 않고 실험한 결과가 20세기에 대거 축적된 결과다. 오늘날 순수과학과 응용과학,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서로 어우러지는 통섭의 시대가 열린 배경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실험물리학자들의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뢴트겐은 X-선을 특허 없이 모두에게 공개했다. 오늘날 병의원에서, 공항 검색대에서 만나는 X-선 기기를 볼 때마다 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빛이 광자로 이뤄졌으며 이를 통해 광전 효과가 일어난다는 주장을 펼쳤다. 미국 시카고대의 실험물리학자 로버트 밀리컨은 이 주장이 허구임을 확인하려고 12년에 걸쳐 진공 상태에서 금속에 빛을 비추는 실험을 끈질기게 한 결과 빛이 입자임을 확인했다. 집념의 실험을 통해 부정하려던 이론이 옳았음을 외려 확인한 것이다. 과학이 창의성과 진실확인을 위한 끈기, 열정으로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원제 The Matter of Everything: Twelve Experiments that Changed Our World.
채인택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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