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B "미국이 에이즈 개발" 거짓 정보로 반미 여론 키워
[제3전선, 정보전쟁] ‘덴버 작전’으로 본 허위정보전
제3세계 정상들에 브로슈어 보내 여론전
패트리엇 매거진을 통해 허위정보전의 밑자락을 깔아 놓은 KGB는 불가리아 정보국과 공조해 허위정보 증폭 단계에 들어갔다. KGB는 소련의 유력지 리체라투르나야 가제타를 통해 패트리엇 기사가 좀 더 신빙성있게 보이도록 허위정보를 덧칠했다. 미국 과학자들이 에이즈 바이러스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와 남미를 방문했으며, 마약중독자와 동성애자를 임상실험 대상으로 삼았다고 그럴듯하게 포장했다. 이어 불가리아 정보국은 KGB가 밑자락을 깔아 놓은 이 신문들을 다시 인용해 개도국과 유럽으로 확산시켜 나갔다(1985년 9월 7일 KGB 비밀문서).
미국 정부와 서방 의학계의 비판이 잇따르자 이번에는 동독 슈타지와 과학적 공조 체제를 가동했다. 슈타지가 에이즈 발원지는 미국이라는 것을 믿게 할 과학적 연구와 증거를 만들고, KGB가 이를 전파하는 역할분담 방식이었다 (1986년 9월 3일 슈타지 문서). 슈타지는 바로 움직였다. 동독 훔볼트 대학의 제이콥 시걸 박사로 하여금 ‘에이즈 : 특성과 기원’이라는 53쪽 분량의 ‘시걸 보고서’를 발표토록 했다. 에이즈는 VISNA와 HTLV-1이라는 두 종류의 바이러스를 유전적으로 결합해 만들었으며, 과학기술 수준으로 볼 때 미국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것이 요지였다.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를 사용해 고도의 과학적 지식이 동원된 것처럼 꾸몄다. 에이즈의 미국 기원설을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 시걸 보고서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과학적으로 포장된 허위정보는 예상대로 서방언론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1986년 10월 26일 영국 선데이 익스프레스의 에이즈 의혹 보도는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다. 친소련 매체가 아니라 보수언론으로 분류되던 이 신문의 보도는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 들여졌다. 선데이 익스프레스가 보도한 후 일주일이 지나자 전세계 30개국의 언론이 미국의 에이즈 개발 의혹을 보도했다. 허위정보가 날개를 달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노력으로 에이즈의 미국 기원설은 1987년 80개국에서 보도될 정도로 예상외의 성과를 보였고 덩달아 반미정서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KGB는 더 욕심을 냈다. 1987년 동독과 불가리아 정보당국에 보낸 비밀전문을 통해, 에이즈는 미군을 통해 많이 전염된다는 허위여론을 유포해 미군의 해외 주둔을 축소시키자고 제안했다. 한발 더 나아가 에이즈 허위정보전을 벤치마킹해 미국의 전략방위구상(SDI)을 위축시킨다는 계획도 밝혔다. 과학자들을 동원해 컴퓨터로 작동되는 SDI 무기체계는 컴퓨터 실수로 우발적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고, 이는 에이즈처럼 지구적 재앙이 될 것이라는 공포를 증폭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통해 미국의 SDI 구상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결과적으로 이 구상들은 실현되지 못했다. 1980년대 말 소련이 붕괴 조짐을 보이자 덴버작전의 동력이 급속히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1992년 프리마코프 러시아 해외정보국(SVR) 국장이 이례적으로 에이즈 허위정보는 KGB의 공작이었음을 자인하면서 덴버작전은 막을 내렸다.
덴버작전은 에이즈 허위정보를 통해 미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것으로 KGB는 신문사, 출판사, 방송사는 물론 과학자와 우방국 정보기관까지 동원해 총력전을 펼쳤다. 그 결과 아프리카, 남미지역에서 반미정서가 확산되는 등 가시적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에이즈 감염 희생자를 많이 발생시켰다. 소련의 허위정보로 인해 제3세계권 국가들이 성접촉 자제 등 에이즈 예방대책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당시 남아공에서 무려 30만명 이상의 에이즈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정보조작으로 인한 인류의 정신적, 물리적 폐해도 가볍지 않다. 정보기관이 정책적, 전략적 차원에서 과잉정보을 유통시키는 경우가 있지만, 덴버작전과 같이 인류의 일상과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악의적 왜곡정보는 법적, 외교적, 윤리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
허위정보로 남아공서 30만명 에이즈 사망
이러한 허위정보의 유통구조에 대한 이해가 올해 더 주목되는 이유는 전 세계 70개국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해이기 때문이다. 여론이 분열되는 선거철에는 허위정보가 더 잘 유통되며 효과도 더 크다. 그래서 국가 간 허위정보전은 선거철에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 2018년 프랑스가 ‘정보조작근절법’을 제정한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작용했다.
4월 한국 총선에 이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국내 정국은 물론 동북아와 세계질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미 양국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세력과 이를 막으려는 세력간의 두뇌전과 정보전이 이미 느껴진다. 유권자인 국민의 감시가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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