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반성 철저한 독일, 그때는 전혀 달랐다
하랄트 얘너 지음
박종대 옮김
위즈덤하우스
암살자의 밤
하워드 블룸 지음
정지현 옮김
타인의사유
슈툰데 눌(Stunde Null). 독일어로 ‘제로(zero) 시간’이란 뜻으로, 나치 제3제국이 1945년 5월 8일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한 때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후 독일에는 전혀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독일은 라인강의 기적과 통일을 거쳐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과거사 사과와 청산에 앞장서는 역사 선진국가로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런 독일에도 2차 대전 종전 직후 한동안은 전환기의 대혼란이 지배했다. 그런데 이런 암흑의 시기는 그동안 어둠에 묻혀 잘 드러나지 않았다. 독일 저널리스트 하랄트 얘너가 펴낸 『늑대의 시간』은 1945년부터 10년 동안 독일인들이 처참한 잿더미 슈툰데 눌 상황에서 사회를 재건하는 과정에 나타난 도덕관념 붕괴와 유대인 학살 책임 회피 등 지금과는 사뭇 다른 내밀한 모습들을 심도 깊게 연구한 역사서다. ‘인간이 다른 모든 인간에게 늑대’가 되는 이른바 ‘늑대의 시간’을 파헤친 리얼 다큐멘터리다. 토마스 만, 한나 아렌트, 테오도르 아도르노, 카를 야스퍼스 등 저명한 작가와 철학자의 발언이나 기고는 물론이고 일반인들의 일기와 수기 그리고 신문, 잡지, 정부 문서 등 방대한 자료가 이 책의 저술에 다양하게 활용됐다.
사람들은 배고픔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으며 실향민이나 부랑자에 대한 불안감에서 칸트의 도덕률을 자기들 편한 대로 재구성했다. 작가 하인리히 뵐은 “얼어 죽지 않은 사람은 모두 도둑질을 했다. 모두가 도둑이라면 과연 서로를 도둑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라고 묘사했다.
이 책은 폐허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춤을 추며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밝은 모습도 조명한다. 이와 함께 점령 연합군 주도 독일 언론 재편과 탈나치화, 민주주의화 과정도 세밀하게 그렸다.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에 대한 독일의 반복적 사과는 적어도 전후 10년 동안은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모든 독일인의 지속적인 삶을 뒤흔들고 죄책감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최악의 범죄인 유대인 문제에 대해서는 다들 입을 다물었다.
여기엔 ‘희생양의 논리’가 작동한 듯했다. 독일인들 자신은 사람을 마비시키는 독과 같은 국가사회주의에 희생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히틀러가 ‘독일인의 열광 능력을 악용했다’는 것이다. 과거에 열렬히 히틀러를 숭배했던 사람들까지 스스로를 죄인이 아닌 기만당한 사람으로 느끼게 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는 서독의 새 민주주의를 위해 받아들여야 하는 불가피한 전제 조건이었을 수도 있다. 자신이 히틀러의 희생자라는 확신은 스스로를 불명예스럽고 비겁하고 기회주의적인 존재로 느끼지 않으면서, 파멸한 나치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심리적 토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46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이 끝나고도 과거사 청산은 오랫동안 질질 끌기만 했다. 마지막까지 가서 유죄 판결을 받은 국가사회주의자는 대략 2만5000명에 그쳤고 그중 1667명만 주요 범죄자로 분류됐다. 유대인 학살에 대한 독일 내 사회적 논쟁은 1963~68년 아우슈비츠 재판이 진행되면서야 비로소 시작됐다.
이 책은 자기 나라의 어두운 역사를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들춰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역사 왜곡이나 미화가 일반화된 세상에서 아픈 대목을 냉철하게 지적하고 반성의 소재로 삼는 독일인들의 태도와 용기가 돋보인다. 결국 이러한 정신들이 살아서 홀로코스트와 전쟁 범죄에 대한 지속적 사과와 보상으로 이어지고 독일이 국제사회에서 다시 신뢰를 얻게 된 밑거름이 된 것이 아닐까.
미국 저널리스트 하워드 블룸이 쓴 『암살자의 밤』은 슈툰데 눌에 가까웠던 2차 대전 말기에 패색이 짙었던 나치와 히틀러가 전황을 일거에 반전시키기 위해 연합국 빅3 지도자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을 한 자리에서 암살하려 한 ‘롱 점프 작전’의 비화를 다룬 책이다. 나치 국가보안본부 제6국장 발터 셸렌베르크와 루스벨트 대통령 경호원 마이크 라일리를 중심으로 영화 007시리즈보다 더 스펙터클한 스파이의 세계를 생생하게 그렸다.
한경환 자유기고가 khhan8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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