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그림에서 형제 떠올린 그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반비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2018), 『나의 영국 인문 기행』(2019)에 이은 저자의 ‘나의 인문 기행’ 시리즈 세 번째 책이자 마지막 책이다. 저자는 맺음말을 쓴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18일 별세했다.
저자부터 소개하는 게 옳겠다. 책 소개를 갈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에겐 수식어 ‘디아스포라’가 붙는다. 그는 재일 조선인 2세다. 가족사는 저자와 책의 구성 및 내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그의 두 형 서승, 서준식은 1970년대 초 서울대 유학 중 이른바 ‘재일조선인 유학생 간첩단 조작 사건’으로 각각 19, 17년을 복역했다. 저자의 미국 방문은 두 차례다. 1980년대 첫 방문은 형들을 구명하기 위해 인권단체와 국무부 등을 찾은 여정이다. 다른 하나인 2016년은 지인 초청으로 코스타리카에 가던 도중의 방문이다.
기행(紀行)은 여행에서 경험한 것의 기록이다. 대개는 여정을 따라가지만, 이 책은 다른 방식을 택했다. 여행에서 만난 건물, 예술작품 등과 거기서 파생된 인물, 사건 얘기를 들려주는 식이다. 세상에 혼재된 선악을 대비시키며 보여주는데, 선악을 가른 기준에는 저자의 디아스포라적 관점이 담겨있다.
워싱턴DC 내셔널갤러리에서 본 조지 벨로스의 작품은 1970년대 인혁당사건과 1980년대 필리핀 야당 정치인 아키노 피살 사건을 회고하는 마중물이 된다. 디트로이트 미술관을 장식한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는 저자의 학창 시절과 매카시즘이 창궐하던 20세기 중반 미국 사회를 연상시키는 단서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고흐 작품과 벤 샨 작품이 저자에게 불러낸 공통 분모 ‘형제’는 무도했던 한국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연결고리가 된다. 뉴욕 컬럼비아대 ‘에드워드 사이드 기념실’은 또 한 명의 디아스포라 지식인의 삶과 노력으로 접근하는 입구가 된다.
저자가 미국을 마지막으로 다녀온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됐다. 그 당시 그가 방문한 기념실의 주인공 에드워드 사이드는 팔레스타인계 이민자 출신이다. 지금 우리는 트럼프의 대선 재도전과 참화 속에 고통받는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보고 있다. 저자가 맺음말에 썼듯 이 책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 세계 여기저기에서 하루하루 현실에 절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호소다.
장혜수 기자 hsc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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