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이선균 죽음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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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드라마 PD를 꿈꾸던 내겐 인생 드라마가 몇 개 있다.
'기생충'으로 월드스타 반열에도 오른 그, 내게는 최도영과 박동훈으로 기억되는 배우 이선균씨다.
어느덧 우리 사회는 그의 죽음을 잊은 듯하지만, 내게 다가온 충격은 여전하다.
언젠가 하얀 거탑과 나의 아저씨를 다시 꺼내볼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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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드라마 PD를 꿈꾸던 내겐 인생 드라마가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군 생활 중이던 2007년 봤던 ‘하얀 거탑’이다. 정주행을 못해도 10번은 넘게 한 것 같은 이 드라마에는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눈물 버튼’이 있다. 실력 하나는 최고지만, 변변찮은 배경 때문에 온갖 암투를 치르고 난 뒤에야 꿈에 그리던 외과 과장에 오른 주인공 ‘장준혁’(김명민)은 의료 사고 송사 끝에 급성 담관암으로 사망한다. 실력은 친구인 장준혁에 비해 떨어지지만, 의사로서 원칙과 소신을 갖고 살아가는 의사 ‘최도영’이 절친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오열하는 장면이다.
고인의 죽음은 톱스타 연예인들의 몰락과 고통을 한낱 유희거리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천박한 민낯을 그대로 보여 줬다. 아울러 문득 내가 먹고사는 기자란 직업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느끼게 했다.
이씨의 마약 투여 혐의는 내사 단계부터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새해 벽두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습격한 가해자는 ‘범행의 중대성’, ‘공공의 이익’을 이유로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연예인 이름 석 자는 어찌 그리 쉽게 밝혀졌던 걸까.
첫 보도 이후 각종 망신 주기용 기사들이 쏟아졌다. 평소 고인의 친근하면서도 털털한, 사랑꾼 이미지는 독이 됐다. 첫 보도부터 그가 세상을 저버리기 하루 전인 지난달 26일까지 쏟아진 기사 수는 무려 1만여건. 클릭 수가 곧 실적이며 돈이 되는 언론에 그의 추락은 좋은 ‘먹잇감’이었다.
고인이 4차례의 마약 검사에서 3번은 ‘음성’ 1번은 ‘판독 불가’ 판정을 받았음에도 경찰과 언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룸살롱이니 유흥주점 실장이니 하는,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 사생활까지 적나라하게 보도됐다. 수신료를 받으며 공공재인 전파를 이용하는 공영방송마저 통화 녹취록을 보도하며 저질 유튜브 수준으로 전락했다.
그 과정에서 고인은 ‘공개 소환 조사를 그만해 달라’, ‘거짓말탐지기 조사라도 해 달라’고도 호소했지만, 경찰은 이를 거부했다. 저질 유튜버들은 고인의 빈소마저 막무가내로 침입해 소란을 빚었다. 그의 물리적 사인은 질식사였지만, 진짜 사인은 ‘사회적 살인’이었다.
동료 선후배 기자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내겐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나부터 먼저 돌아보는 것뿐. ‘나의 2∼3매 단신 기사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사람을 살리는 기사’를 더 쓰겠다고 다짐해 본다. 언젠가 하얀 거탑과 나의 아저씨를 다시 꺼내볼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남정훈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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