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저널] 김홍도와 스페인 화가 고야

2024. 1. 26.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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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비슷한 인생역정 보여
현지서 보니 여행 즐거움 더해

지난주에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코르도바, 세비야, 마드리드, 사라고사 등 주요 도시를 탐방하는 일정이었다. 삼면이 바다인 이베리아반도에 있는 스페인의 지리적 위치는 반도 국가인 우리나라와도 흡사하다. 면적은 우리보다 5배 정도 넓지만, 인구수는 5000만명인 점, 내전을 겪고 군부 정치 시대를 경험한 역사도 매우 비슷하다. 축구에 열광적인 모습마저 닮아 있다. 2002년 월드컵 8강전 한국이 승부차기 끝에 스페인을 물리치고 4강에 진출한 순간은 지금도 짜릿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는 엘 그레코, 벨라스케스, 보슈, 고야 등의 대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프란치스코 고야(1746∼1828)의 생애와 작품에 특히 눈길이 갔다. 무엇보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 김홍도(金弘道·1745∼1806)와 너무나 닮은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출생 연도와 활동 연도가 비슷하고, 궁정 화원으로 왕의 총애를 받은 점, 시대상을 닮은 작품을 다양하게 남겼다는 점에서도 유사성이 보인다. 김홍도가 서울 인근인 안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서울에 온 것처럼, 고야는 마드리드 인근 사라고사에서 성장하여, 수도 마드리드에서 주로 활동을 했다. 현재 경기 안산시에 ‘단원구’가 있는 것은 김홍도가 이곳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사라고사에는 고야의 동상과 미술관이 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스무 살 이전에 궁정 화원이 된 김홍도는 1773년(영조 49) 영조의 어진과 당시 세손으로 있던 정조의 초상화를 그리며, 정조와 큰 인연을 맺게 된다. 세손은 김홍도의 그림이 썩 마음에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뒷날 왕이 된 정조가 “김홍도는 그림에 공교로운 자로서 그 이름을 안 지가 오래이다. 30년 전에 초상화를 그렸는데, 이때부터 무릇 화사(畵事)에 속한 일은 김홍도로 하여금 주관하게 했다”는 기록에서 보듯 정조는 화원 김홍도의 최대 후원자가 되었다. 고야는 실력을 인정받아 왕의 초상화를 그렸다. 카를로스 3세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카를로스 3세와 4세의 궁정 화원이 되었다.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카를로스 4세의 가족’ 그림에는 왕과 왕비의 가족과 함께 그림을 그린 고야의 모습도 등장한다. 고야는 사라고사와 마드리드에 있는 성당의 벽화 작업에도 다수 참여했는데, 이것은 김홍도가 용주사의 후불탱화(後佛?畵) 작업을 한 것과 유사하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으로 모시며 현륭원을 조성할 때 원찰인 용주사를 세웠다. 김홍도는 정조의 명을 받아 탱화 제작에 참여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불화를 남겼던 것이다.

김홍도와 고야는 사회상을 담은 그림들도 남겼다. 1795년(정조 20)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단행한 화성 행차의 주요 장면을 8폭의 병풍 그림으로 남긴 ‘수원능행도(水原陵行圖)’는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김홍도는 씨름, 서당, 대장간, 시장 등을 주제로 한 백성의 삶을 담은 풍속화를 다수 남겼는데, 최근의 연구에서는 정조가 이들 그림을 국정 자료로 활용했음이 밝혀지기도 하였다. 고야의 ‘1808년 5월2일’과 ‘1808년 5월3일’ 두 연작 그림은 나폴레옹 집권 시기 프랑스가 스페인을 침공했을 때 이에 저항한 시민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것으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다.

두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고야는 20여점의 자화상을 남겼으며, 김홍도는 ‘포의풍류도’라는 그림에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책과 도자기, 붓과 벼루, 생황, 검(劒) 등을 배경으로 비파를 타고 있는 50대 선비가 김홍도 자신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 시기에 주춤했던 해외여행이 다시 붐을 이루고 있다. 우리와 외국이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이룩한 성과 중에서 서로 비슷한 점을 찾아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주지 않을까?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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