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장욱진, 가장 진지한 고백
‘나는 심플하다’며 그림 그려내
작품 크기·구성 등 모든 것 소탈
가장 심플한 고백이 가장 진지
“착하면 안 돼요.” 화가 장욱진은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있던 시절 학생들에게 이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제자 이남규의 회고에 의하면 처음엔 착하게 살지 말라는 얘기인가 했는데, 불가에서 말하는 ‘불착(不着)’을 의미한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는 것이다. 불착, 어디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6년 만에 교수직을 그만두고 덕소의 작은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데만 매진한 장욱진이야말로 “새처럼 살다가 새처럼 떠나신 선생님”이라며 제자는 스승을 추모했다.
장욱진의 그림은 크기도 ‘심플’하다. 이번 회고전에는 유화뿐 아니라 먹그림, 판화, 표지화, 삽화, 도자기 등 다양한 종류의 작품이 270여점이나 망라되어 있지만, 대작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은 거의 없다. 2호에서 4호 사이의 크기가 대부분이고, 1호도 되지 않는 소품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캔버스는 왜소한 느낌이 들지 않고 여유롭고 역동적인 리듬감으로 충만하다. 그에게는 작품의 스케일에 대한 강박이 없었다. “그림의 크기가 도대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조형성의 구사는 작은 사이즈도 충분히 크다”고 말했던 그는 작은 그림이 오히려 친절하고 치밀하다고 여겼다. 전쟁 중에 그린 ‘자화상’(1951)도, 이번에 새로 발굴되어 공개된 ‘가족’(1955)도 실제로 보면 아주 작다.
‘장욱진 이야기’의 표지 사진에는 담뱃대를 들고 화실 방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맨발의 화가가 보인다. 그의 뒤로는 바닥에 세워진 작은 그림들과 물감통 등이 있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도 바닥에 종이를 놓고 쪼그리고 앉아 그렸다. 몸은 늙었지만 그 자세와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고 겸손하다. 나이가 들수록, 예술가로 성공할수록, 대부분의 사람은 소탈함이나 자유로움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의 ‘심플’에는 예술이 아닌 것은 모두 털어낸 자의 허허로움이 깃들어 있다.
장욱진의 ‘심플’은 후기로 갈수록 작품의 소재나 구성뿐 아니라 유화의 무거운 질감을 덜어내고 닦아내는 기법에서도 나타난다. 1980년대 대표작들인 ‘나무’ ‘산과 나무’ ‘시골’ ‘신선도’ ‘언덕풍경’ 등은 ‘수묵화적 유화’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투명하고 분방한 터치를 보여 준다. 자아의 무게를 줄여 나가면서 우주와 자연을 작은 화폭 속에 노닐게 한 후기작들은 비움의 극점을 경험하게 한다. 단순하면서도 내밀하고, 자유로우면서도 조형적 균형감을 잃지 않는 화면 구성 덕분에 계속 바라보고 있어도 물리지 않는다. 마치 그림이 한 잔의 맑은 물을 건네며 말을 걸어 오는 듯하다. 이 담백한 경지에 이르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욕망과 생각을 덜어내야 했을까. 장욱진의 그림은 말한다, 가장 심플한 고백이야말로 가장 진지한 고백이라고.
나희덕 시인·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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