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폐지’ 주역 男 생물학자… 과학으로 韓 가부장제에 일침

정진수 2024. 1. 26.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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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의 사회는 전혀 자연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다. 모름지기 번식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생물이라면 그 번식의 주체인 암컷이 삶의 중심이어야 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는 책에서 다윈의 성선택론이라는 과학 이론에서 시작해 여성성과 남성성의 이분법적 분리가 무지와 편견에서 비롯된 허상이라는 사실을 짚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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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에는 남자가 화장을 한다/최재천/이음/1만8000원

“남성 중심의 사회는 전혀 자연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다. 모름지기 번식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생물이라면 그 번식의 주체인 암컷이 삶의 중심이어야 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젠더 갈등’이 첨예한 요즘,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여성의 주장으로 들릴 법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남성 과학자가 무려 20년 전에 던진 화두다. 저자는 1999년 ‘개미제국의 발견’, 2001년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로 우리 사회에 진화론과 동물생물학을 손쉽게 풀어 과학 대중화의 포문을 연 최재천 교수다. 그는 2003년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를 통해 찰스 다윈의 성선택론을 무기로 호주제의 생물학적 모순과 남녀평등의 당위성을 논하며 가부장적 한국 사회에 일침을 가했다.
최재천/이음/1만8000원
그는 책에서 다윈의 성선택론이라는 과학 이론에서 시작해 여성성과 남성성의 이분법적 분리가 무지와 편견에서 비롯된 허상이라는 사실을 짚어 간다. 번식의 주도권을 쥔 여성이 아닌 남성 중심적으로 설정된 가부장 체제가 과학적으로 불합리한 형태라는 것이다.

저자는 호주제도의 전제인 부계 혈통주의의 과학적 근거 유무 및 호주제의 존폐에 관한 생물학적 의견서를 제출하고 이듬해 직접 헌법재판소 법정에 출두해 호주제 폐지에 반대하는 진영 변호인단의 신문에 답하기도 했다. 그리고 2년 후 헌법재판소는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됐다. 그가 남성 최초로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한 이유다.

20년이 지난 만큼 재출간된 책에는 변화가 있었다. 먼저 제목이 남자‘도’에서 남자‘가’로 변했다. 여성학자 정희진, 인류학자 박한선, 경제학자 이철희와 함께한 특별 좌담도 수록해 책이 출간된 이후 우리 사회 안팎에서 일어난 변화와 갈등 양상 등을 조명한다.

이런 주장이 불편하기 짝이 없을 일부 남성에게 최 교수는 말한다. “이 책은 여성들보다는 오히려 동료 남성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 진정한 여성성이 회복되는 날 정작 해방의 희열을 맛볼 이들은 바로 우리 남성들이기 때문이다. 천근만근 무겁기만 한 책임의 굴레를 벗고 정말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될 이들은 바로 우리 남정네들이다”라고.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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