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 위해 10년간 나치즘 외면한 독일의 민낯
약탈 등 생존 우선돼 학살 문제에 침묵
1945년 전범 24명 재판… 국민은 무관심
극히 일부만 처벌 받고 입법 통해 사면키도
되레 ‘나치즘에 희생됐다’며 자기합리화
역설적으로 서독 민주주의 심리적 토대돼
늑대의 시간/하랄트 얘너/박종대 옮김/위즈덤하우스/2만8000원
연합군은 독일 국경을 넘는 순간부터 물리적인 관리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독일인의 오만함을 몰아내고 12년 동안 그들에게 주입된 파시즘을 제거할지 구상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독일인들의 마음속 깊이 박혀 있던 파시즘은 마치 공기처럼 사라지고 과거를 아예 잊은 듯했다. 저자는 “전쟁이 끝난 지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신문에 ‘왜 세상 사람들이 독일인을 미워하느냐’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이 나올 정도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그동안 겪은 일을 말없이 견뎌내야 했던 위대한 침묵자로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저자는 “말을 삼가는 분위기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독일인들의 고통을 다른 민족의 어떤 고통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최상급으로 표현한 글은 언론과 소책자, 논문에 넘쳐나, 진정한 희생자들에 대한 일말의 고려도 없이 오직 자신들의 고통에만 빠져 허우적거린다”고 비판했다.
연합군은 전후 나치 저항자들이 주요 전범들을 응징하거나 보복 행위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고 국가가 나서지도 않았다.
결국 국제 군사재판소에서 1945년 11월부터 주요 전범 24명에 대한 재판이 진행됐다. 당시 20개국에서 취재기자들이 몰려왔지만, 정작 독일에선 무관심했다. 뉘른베르크 재판의 주요 전범들은 자살을 통해 실질적 책임을 면한 히틀러, 힘러, 괴벨스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우면서 자신들은 그들의 유혹에 넘어간 희생자인 척했다. 이들 중 12명만 사형 선고를 받았고, 강제수용소의 의사, 법률가, 주요 경제계 인사 등 나치 엘리트 185명에 대한 재판에서도 극히 일부 주범만 처벌을 받았다.
망각의 망토라도 뒤집어쓴 듯 연방의회 역시 첫 개원 직후 연방 사면, 탈나치화 종결 권고, 해고된 공무원 원대 복귀 등 연합군이 단행한 정치적 숙청을 무효화하려는 조치를 취했다. 1954년에는 ‘제2차 사면법’을 통해 가해자들이 명령에 따라 불가피하게 저지른 행동이라는 면죄부를 줬다.
전후 대다수 독일인이 스스로를 히틀러의 희생자로 여긴 집단적 자기 합리화는 학살당한 수백만 명에 대한 모독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독의 민주주의 확립을 위한 심리적 토대가 됐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 토대가 있었기에 늦게나마 끔찍한 과오를 꺼내 들고 피해자들 앞에 무릎 꿇을 용기도 생긴 것 아닐까.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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