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양승태 핵심 혐의 '직권남용' 모두 무죄…이유는
"직권 있지만 남용 아냐…공모관계도 부정"
내달 5일 임종헌 선고 영향미칠까 관심도
[서울=뉴시스] 김진아 한재혁 기자 = 사법부를 뒤흔든 농단 의혹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수뇌부가 기소 후 5년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이 적시한 혐의만 47개에 달하지만 1심 법원은 양 전 대법관을 비롯한 이들에게 사법행정권이 없기에 직무상 권한 남용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는 법리를 내세웠다.
이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법관 중 대다수에게 무죄가 내려지며 내달 1심 선고를 앞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판결에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강제징용' 등 주요 재판 개입 혐의 모두 "직권남용 성립 안돼"
이 가운데 핵심은 직권남용 혐의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사법부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 도입, 법관 재외공관 파견 등 조직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청와대·외교부 지원을 얻기 위해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사건, 통합진보당 의원의 지위 확인 소송 등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의심했다.
이를 위해 법원행정처 관계자에게 관련 소송의 향방 등에 대한 문건을 작성하게 하는 등 직무상 권한을 남용했다는 게 공소사실 핵심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등이 헌법재판소를 견제하기 위해 파견 법관을 통해 내부 정보를 수집하도록 지시하고,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의 명부를 만들어 관리하는 과정에서도 직권을 남용했다고 의심했다.
하지만 2019년 2월 기소 이후 290여번의 재판을 거친 끝에 1심 법원은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앞서 이 의혹과 관련된 피고인들에게 적용한 직권남용 혐의 성립 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고수했다. 사법행정권자인 양 전 대법원장 등에게 재판에 개입할 직무상 권한이 없기에 이를 남용했다는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강제동원 사건 관련 양 전 대법원장 등의 혐의 모두 범죄 입증이 안됐다고 판단하며 일반적인 직무권한은 성립하지만 직권을 남용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관련 처분 효력을 검토하거나,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 사건에 대한 문서 작성을 지시했다는 의혹 역시 동일한 취지로 무죄로 판단했다.
파견 법관을 이용해 헌재 내부 정보를 파악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직권을 갖췄고 이를 행사했다고 봤지만, 양 전 대법원장 등의 공모 관계가 인정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물의야기' 법관 리스트 작성과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와해를 위한 보고서 작성 관련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는데, 범죄 혐의를 모두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유사한 근거를 들었다.
의혹 14명 중 2명만 유죄…임종헌 재판 귀추
임성근·신광렬·조의연·성창호·유해용·이태종 법관은 이미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과 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 역시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유일하게 재판개입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것은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다.
두 사람은 양 전 대법원장 당시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입장을 지닌 판사 모임을 해체시키려 했다며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돼 2021년 3월 각각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아 사법농단 의혹으로는 첫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2심에서는 형이 각각 벌금1500만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줄었고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까지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은 피고인은 임 전 차장으로, 그에 대한 선고는 내달 5일 내려진다.
임 전 차장은 사법농단의 핵심 인물로 여겨지는데, 이날 양 전 대법원장 등에게 무죄가 선고되면서 향후 그에 대한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 사건 피고인 대다수에게 무죄가 선고된 점을 감안하면 같은 판결이 내려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날 재판부 선고에 양 전 대법원장 등과 공모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임 전 차장에 대해 혐의가 인정되는 듯한 대목이 담기며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양 전 대법원장 등과 임 전 차장은 강제징용 사건 등 재판개입 혐의, 법관 블랙리스트 혐의, 정운호 게이트 관련 비위 축소·은폐 혐의 등에 공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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