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법재판소, 이스라엘에 ‘가자지구 집단학살 방지’ 명령

손우성 기자 2024. 1. 26.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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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중단 명령은 내리지 않았지만
사실상 이스라엘 제노사이드 혐의 지적
남아공·팔레스타인은 환영 뜻 밝혀
강제 집행 방법 없다는 점은 한계
국제사법재판소(ICJ) 판사들이 26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중단을 명령해 달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임시 조치 요청에 대해 판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가 26일(현지시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중단을 명령해 달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청에 대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대량 학살 행위를 방지하는 조처를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ICJ는 휴전 명령을 직접적으로 내리진 않았지만, 이스라엘이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협약을 사실상 위반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책임을 물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ICJ는 이날 오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재판에서 “가자지구에서 발생하고 있는 대량 학살 행위를 막기 위해 이스라엘이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남아공은 지난달 29일 ICJ에 이스라엘을 제노사이드 혐의로 제소하면서 이와 별도로 “팔레스타인 주민의 권리가 더는 극심하고 회복 불가능하게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데 필요하다”며 전쟁 중지 임시 조치를 명령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조앤 도노휴 ICJ 소장은 이날 1시간 가까이 판결문을 낭독하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대량 학살을 선동하는 행위를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가자지구에 대해 ‘완전한 포위’를 명령하고, 이스라엘군에 ‘인간 동물’과 맞서 싸우라고 한 발언을 예시로 들었다. 이어 이스라엘이 집단학살 혐의 증거를 보전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또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허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남아공이 주장했던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군사 작전 즉각 중지는 명령하지 않았다. 알자지라는 “ICJ가 이스라엘에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노력하라고 요구했지만, 휴전 명령엔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남아공은 일단 ICJ 결정을 환영했다. 남아공 변호인단은 재판 직후 “이스라엘이 ICJ 명령을 방해하는 행위를 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이번 판결은 팔레스타인인을 위한 정의 추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성명을 내고 “어떤 국가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는 중요한 알림”이라고 평가했다.


☞ 제노사이드 ‘피해자’서 ‘가해자’로···76년 만에 국제법정 선 이스라엘
     https://www.khan.co.kr/world/mideast-africa/article/202401121901001

문제는 ICJ의 본안 판결과 마찬가지로 임시 조치 역시 이스라엘이 거부할 시 이를 강제 집행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이미 이스라엘은 지난 12일 열린 공개 심리에서부터 제노사이드 협약상 ICJ가 군사행동을 중단하라고 명령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인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시작한 군사작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ICJ 임시 조치 결정을 무시하고 지금까지 폭격을 이어가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ICJ 판결에 대해 “남아공 주장은 거짓”이라며 “품위 있는 사람들은 이를 거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스라엘은 국제법을 지키면서 계속해서 우리를 방어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일각에선 ICJ의 이날 판단이 강제성이 없더라도 휴전과 인질 석방 협상 재개를 요구하는 국제사회 압박에 무게감을 더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스라엘 바일란대 정치학과의 메나쳄 클라인 교수는 알자지라에 “네타냐후 총리는 결국 ICJ 판결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특히 미국의 압력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한편 뉴욕타임스(NYT) 등은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 혐의를 다루는 본안 결과는 3~4년 후에나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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