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양승태 전 대법원장 전부 무죄[종합]

최기철 2024. 1. 26.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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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47개 혐의, 죄 안 되거나 증거 없어"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들도 무죄"
양 전 대법원장 "당연한 귀결…재판부에 경의"
초라한 성적표…검찰 "1심 분석 후 항소 결정"

[아이뉴스24 최기철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일명 '사법농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019년 구속기소된지 4년 11개월만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농단 혐의'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부장판사 이종민 임정택 민소영)는 26일 직권남용 등 47개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과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지난해 9월 15일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박 전 처장에게는 징역 5년, 고 전 처장에게는 징역 4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이 적용한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는 총 47건이다. 크게는 △재판개입 △대법원에 비판적인 법관들을 관리하기 위한 '사법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헌법재판소 견제 지시 △비자금 조성 등이다. 이 혐의들을 죄명으로 나열하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공전자기록위작 및 행사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이다.

일제 강제동원 배상 청구 사건과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통지 처분 사건 등 이른바 '재판 개입' 혐의는 양 전 대법원장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상고심제 도입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다. 공소장에는 양 전 대법원장이 박 전 처장이나 고 전 처장을 통해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시를 내리거나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했다고 적시했다. 검찰은 이 혐의에 주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적용했다.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농단 혐의'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러나 재판부는 검찰 주장을 모두 물리쳤다. 대부분 직무권한에 포함되지 않거나 일부 인정되더라도 실제로 직권행사를 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특히 세 사람의 공모관계는 단 한 건도 인정되지 않았다.

대내외적 비판세력을 탄압했다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역시 전부 무죄로 결론 났다. 재판부는 '물의 법관 인사조치 검토보고서' 작성 지시나 그에 따른 인사 조치는 일반적 직무권한에 포함된다고 봤다. 하지만 실제로는 직권을 행사하지 않았거나 했더라도 남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만, 법원 내 법관들에게 가장 공분을 샀던 '국제인권법 연구회 탄압 사건'의 경우 '전문분야 연구회 개선방안' 또는 '중복가입 전문분야연구회 탈퇴 지시'가 일부 법관의 '표현의 자유 및 연구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만, 그렇더라도 이 혐의들 역시 공모 단계에서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일부 법관들에게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탈퇴하라고 종용했다는 검찰 주장은 공소사실마저 특정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최고 사법부' 위상을 두고 대척 점에 있는 헌재를 견제하기 위해 '한정위헌 판단의 위험성' 등을 분석,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하거나 의견을 전달하게 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모두 정당한 직무 범위 내의 업무지시였다고 판시했다. 특히 정부가 통합진보당을 대상으로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한 사건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양 전 대법원장 지시를 받아 행정소송을 검토 보고하거나 언론동향을 살핀 것 역시 남용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또 양 전 대법원장 등이 기획재정부 담당 공무원들과 국회의원들을 기망해 정부예산안을 편성 받고 용도 외 사용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선고 직후 "당연한 귀결이라고 본다. 명쾌하게 판단 내려주신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사법농단 혐의'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이 지난 2020년 5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70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검찰은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했다. 전 대법원장 구속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언론에 보도된 양 전 대법원장이나 두 전 대법관, 관련 법관들과 법원에 대한 압수수색만도 21번이다. 증인으로 채택된 사람 200명 중 실제 출석한 전·현직 법관은 100명이 넘는다. 역대 최대 화력전을 펼친 검찰로서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든 셈이다.

재판도 역대급이었다. 5년 가까운 재판 기간도 그렇지만, 수사기록 20만 쪽에 공판준비기일을 포함해 총 290번의 공판이 열렸다. 주문과 판결이유를 낭독하는 선고공판도 2시간 넘게 진행되면서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휴정을 선언하기도 했다.

검찰은 "1심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판단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함께 기소돼 별도 재판을 받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의 선고도 주목된다. 임 전 처장 역시 양 전 대법원장 등과 같은 혐의를 받고 있다. 임 전 처장에 대한 1심 선고는 내달 5일 내려질 예정이다. 검찰이 임 전 처장에게 한 구형도 징역 7년이다.

/최기철 기자(lawch@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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