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상대 정당 지지자와 결혼?···한국 50% 이상 “불편”, 미국 38% “속상”[중도, 그들은 누구인가]
정치적 이념, 지지 정당 혹은 정치인에 따라 갈라진 시민들이 다른 집단에 속한 이들을 미워하고 불신하는 현상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여러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주 관찰된다. 이런 현상은 ‘정치적 양극화’로 불리지만 경쟁하는 정당이나 유권자들의 이념적 성향을 분석해보면 그다지 양극단으로 갈리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정서적 양극화’에 가깝다는 진단도 나온다.
미국 정치학자 제임스 드럭먼과 매슈 레벤더스키는 2017년 여론조사업체 보비츠에 의뢰해 미국 유권자들이 상대 정당 지지자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조사한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아닌 상대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과 친구, 이웃으로 지내는 것이 어떤지를 물었다. 자녀가 상대 정당 지지자와 결혼을 한다면 어떤 감정이 들 것 같은지도 함께 물었다. 응답자의 16%는 상대 정당 지지자와 이웃으로 지내는 것이 불편하다고 답했다. 친구로 지내는 것은 19%가 불편하다고 했다. 자녀가 상대 정당 지지자와 결혼하는 것에 대해선 19%가 ‘속상할 것 같다’고 답했다.
2020년에도 미국에서 비슷한 조사가 있었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유고브에 의뢰해 진행한 조사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각각 38%가 자녀가 상대 정당 지지자와 결혼한다면 속상할 것 같다고 응답했다. 드럭먼·레벤더스키 조사와 이코노미스트 조사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3년 사이 자녀가 상대 정당 지지자와 결혼한다면 속상할 것 같다고 답한 미국인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런 현상이 관측되면서 미국 양대 정당 지지자 사이 정서적 양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자녀의 배우자와 관련한 1960년 조사에서 속상할 것 같다고 답한 미국인은 민주당 지지자 4%, 공화당 지지자 5%에 불과했다. 특히 극우적인 발언과 자신의 지지층만을 겨냥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기간 양당 지지자 사이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2021년 1월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연방의회 의사당 습격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에 비해서도 한국 유권자들의 정서적 양극화가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경향신문은 지난해 12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8세 이상 성인 남녀 1533명을 대상으로 벌인 웹 설문조사에 드럭먼·레벤더스키 조사와 유사한 문항을 포함시켰다. 이념 성향별로 각 정당 지지자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대체로 보수 응답자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에 대해, 진보 응답자는 국민의힘 지지자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냈다. 보수 응답자 38%는 ‘민주당 지지자와 직장 동료로 지내기 불편하다’고 답했다. 41%는 ‘절친한 친구로 지내기 불편하다’고 했고, ‘나 또는 자녀의 배우자가 되는 것이 불편하다’는 답변은 52%로 절반이 넘었다.
진보는 반감 수위가 더 높았다. 진보 응답자 48%가 ‘국민의힘 지지자와 직장 동료로 지내기 불편하다’고 했다. ‘절친한 친구로 지내기 불편하다’는 응답은 56%였다. ‘나 또는 자녀의 배우자가 되는 것이 불편하다’는 응답은 67%였다. 진보·보수에 상관없이 한국인 절반 이상이 자신의 이념에서 거리가 먼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나의 배우자 혹은 자녀의 배우자가 되는 게 불편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결과를 두고 허석재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한국 전반의 정당 불신과 유독 높은 ‘내집단’ 편향 등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정당 지지 의사를 밝히는 데 익숙한 나라다. 선거 기간이면 거대 기업이나 유명 연예인, 대형 언론사 등이 거리낌 없이 특정 정당과 후보를 공개 지지한다.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어느 당을 지지하는지 밝히기 꺼리고, 심지어는 정치인들조차 ‘탈정당’을 말한다. 좌우를 떠나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크다.
한국이 세계 다른 나라들에 비해 내집단 편향이 강한 사회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허 조사관은 “국제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이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한 신뢰는 굉장히 강한 편인 데 반해 다른 집단, 즉 외집단에 대한 신뢰는 상당히 약한 것으로 나온다”면서 “그런 내집단 편향이 다른 정당 지지자에 대한 낮은 수용성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정치권의 극한 대립과 갈등까지 더해지면서 지지자 간 감정의 골이 더 깊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 정치 체제가 공유하는 특징인 공고한 양당 구조가 이념 집단 간 갈등을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양당 구조만으로 모든 문제를 설명할 순 없다는 반박이 이어진다. 다당제에 기반한 의원내각제가 다수인 유럽에서도 각 정당 지지자 사이 정서적 양극화 현상이 적지 않다는 증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학자 토머스 티셸배커 등은 2021년 여론조사업체 라타나를 통해 미국과 유럽 9개국 유권자를 대상으로 상대 정당 지지자들에게 느끼는 감정을 조사한 논문을 발표했다. ‘가까운 가족’ ‘이웃’ ‘친구’ ‘직장 동료’ 등 선택지를 주고 상대 정당 지지자와 어디까지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는 물음을 던졌다. 미국 응답자 25%는 상대 정당 지지자를 가까운 가족으로까지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폴란드,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에서 이런 답변 비율은 10%가 되지 않았다. 상대 정당 지지자와 아무런 사회적 관계도 맺고 싶지 않다는 응답 비율은 미국에선 20% 미만이었지만, 프랑스와 스페인은 25%가 넘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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